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러관계 (문단 편집) === 김정일 시대 === ||[[파일:A120000728.png|width=100%]]||[[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220px-Vladimir_Putin_with_Kim_Jong-Il-2.jpg|width=100%]]|| [[2000년]]에 [[김정일]]을 만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이때 만남을 기념하기 위해 북한은 [[http://www.tongil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52787|우리 친선 영원하리]]라는 제목의 곡을 제작했다. 가사는 다음과 같다. >'''우리 친선 영원하리''' >---- >두만강 사이두고 펼쳐진 두나라 >오가는 친선의 정 깊고도 뜨겁다 >새 세기 평화친선 넓은 길 열어주신 >김정일 뿌찐 뿌찐 김정일 >김정일 뿌찐 뿌찐 김정일 >---- >평양과 모스크바 멀리에 있어도 >서로의 마음속엔 가까이 있어라 >친근한 상봉속에 손과 손 굳게 잡은 >김정일 뿌찐 뿌찐 김정일 >김정일 뿌찐 뿌찐 김정일 >---- >력사의 전통 이어 맺어진 우정은 >두나라 강산우에 영원히 꽃피리 >친선의 노래되여 그 이름 울려가는 >김정일 뿌찐 뿌찐 김정일 >김정일 뿌찐 뿌찐 김정일 러시아와 북한은 정식으로 수교한 상태이다. 애초에 [[소련]]의 외교관계를 러시아가 승계했으니. [[소비에트 연방]]이 무너진 뒤로는 [[보리스 옐친]]이 1996년에 [[김영삼]]과의 정상회담 끝에 조소동맹조약을 아예 파기해버렸는데, 2000년 이후, 북러관계는 점차 회복되긴 하지만[* 북한 내부에서는 권력의 공고화, 경제 개선이 이루어 졌고 외부로는 푸틴의 출현, 6.15 남북 공동선언 등 강경 노선을 변경할 계기가 이어졌다. 북한은 러시아와의 수교를 통해 일본, 미국과 관계를 개선하여 국제적 지원을 확보하고자 하였고, 러시아는 한반도에서 자신의 영향력을 유지하고자 하였다.] 북한의 핵개발, [[북한의 국채|북한이 소련에 진 큰 빚]] 등으로 소련때와 같은 관계가 되기는 한계가 있다.[* 양국이 서로에게 중요도가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군사경제적으로 러시아 단독의 지지와 협력은 충분치 않아, 북한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군사경제적 문제들을 해결하고자 하였다. 러시아는 이를 위한 통로일 뿐이었다. 러시아 역시 경제 협력을 통해 얻어갈 수 있는 것은 많지 않았으나 동북아시아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할 수단으로써 북한과의 우호적 관계를 유지하였다.] 북러관계의 약화는 러시아의 국제적 영향력 약화에 영향을 미치게 되었다. 따라서 러시아는 푸틴 집권 이후 북한과의 관계 복원을 통해 영향력을 회복하고자 하였다. 러시아의 대북정책은 특히 경제 협력과 북핵 6자회담에서 적극적이었으며, 경제와 안보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해 삼각경제협력에도 관심이 많았다. 철의 실크로드 사업의 경우 북한이 철도 여건의 열악함을 공개하고 싶지 않아 해서 진전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가스나 전기의 경우 2008년 한러정상회담에서 한국가스공사와 러시아 가즈프롬이 북한을 지나는 파이프라인 통해 러시아산 천연가스를 도입하는 협력 프로젝트를 추진한 바 있다. 2차 북핵위기 당시 러시아는 가장 적극적으로 중재에 나섰다. 2003년 1월 20일 알렉산드르 로슈코프 러시아 외무차관이 북한을 방문했다. 북핵문제의 해결을 위한 3가지 방안을 제안하고, 2.13 합의사항의 이행을 위해 마카오 은행 방코델타아시아에 있던 북한의 자금 이체 문제를 해결하였다. 다만 이것이 러시아가 북한의 핵 개발에 우호적이었다는 뜻은 아니다. 2006년 실험 발사한 미사일이 러시아 영해로 떨어지고 지속적으로 미사일 발사를 실험하자 이를 요격하기 위해 [[S-400]]을 극동지역에 배치하는 등 내부적으로는 군사적으로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http://news.kbs.co.kr/news/view.do?ncd=1835052|#]] 2009년 9월 11일에 평양에서 러시아 상품 전문상점이 생겼다.[[https://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001&aid=0002860276|#]] 2011년 김정일이 중국에게 전투기를 달라고 했다가 퇴짜맞았고 이번에는 러시아에게 요청했지만 실패하였다. [[http://news.chosun.com/site/data/html_dir/2011/08/29/2011082900092.html|뉴스]] 그러자 무기 밀수를 시도했으나 걸리는 바람에 북한 첩자들이 체포되고 무기는 압수되었다 [[https://news.kbs.co.kr/news/view.do?ncd=3756909|#]] [[반미]], [[반서방]] 외교 입장을 고수하면서 관계를 맺는다는 양상이다. 또 러시아는 경제적인 이유로 북한보다 한국에 더 관심이 많은 편이며 북한 핵개발에 대해서도 매우 부정적인 입장이다. 2009년 2차 핵실험을 공개적으로 비난하기도 했고 대북 경제제재에도 적극적으로 동참했다. 북한도 러시아보단 북한을 노골적으로 비호하고 있는 [[중국]]에 더 의존적이기도 하다. 결과적으로 북러관계는 계급적 동맹에서 실용적 의사동맹 관계로 바뀌었다. 이데올로기적 동질성을 기반으로 수직적 관계를 유지해왔으나 소련의 해체로 체제나 이데올로기적 동질성을 잃어 양국 관계는 일반적인 국가 간의 관계나 다를 바 없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