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명 (문단 편집) == 기록 == >上道有一人 身長九尺許 面白而目有光 拜王曰 臣是'''北溟'''人怪由 竊聞大王北伐扶餘 臣請從行 取扶餘王頭 王悅許之 >길을 떠나려 할 때 한 사람이 나타났다. 그의 키는 9척[* 약 2m 7cm] 가량이었으며, 얼굴이 희고 눈에서 광채가 났다. 그는 임금에게 절을 하며 말하였다. "저는 '''북명(北溟)''' 사람 [[괴유]](怪由)입니다. 대왕께서 북쪽으로 부여를 정벌하신다는 말을 들었사오니 제가 따라가서 부여왕의 머리를 베어 오도록 허락하여 주십시오." 임금은 기뻐하며 이를 허락하였다. >---- > 《[[삼국사기]]》 [[대무신왕]] 4년 기사 ---- >冬十月 怪由卒 初疾革 王親臨存問 怪由言 臣'''北溟'''微賤之人 屢蒙厚恩 雖死猶生 不敢忘報 王善其言 又以有大功勞 葬於北溟山陽 命有司以時祀之 >겨울 10월, 괴유가 죽었다. 앞서 그의 병이 위독했을 때 임금이 직접 가서 문병을 하였다. 그때 괴유가 말하였다. "저는 '''북명'''의 미천한 사람으로서 임금의 두터운 은혜를 여러 번 입었습니다. 비록 죽더라도 산 것과 같사오니 은혜에 보답할 것을 감히 잊지 않겠습니다." 임금이 그 말을 훌륭하다고 생각하였다. 게다가 그에게 큰 공로가 있었기 때문에 북명산(北溟山) 남쪽에 장사 지내고, 담당 관리를 시켜 철따라 제사 지내게 하였다. >---- > 《[[삼국사기]]》 대무신왕 5년 기사 ---- >十六年 春二月 '''北溟'''人耕田 得濊王印 獻之 >16년(서기 19) 봄 2월, '''북명(北溟)''' 사람이 밭을 갈다가 예왕(濊王)의 도장을 주워서 바쳤다. >---- > 《[[삼국사기]]》 [[남해 차차웅]] 기사 ---- >天授四年【卽長壽二年】癸巳暮春之月 領徒遊金蘭 到'''北溟'''之境 被狄賊所掠而去 >천수 4년【장수(長壽) 2년이다.】 계사(서기 693) 3월에 [[부례랑]]은 무리들을 거느리고 [[통천군|금란(金蘭)]]으로 놀러갔는데, '''북명(北溟)'''의 경계에 이르렀다가 [[말갈]]에게 잡혀 갔다. >---- >《[[삼국유사]]》-백률사(栢栗寺)- 편 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