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사 (문단 편집) == 편찬 과정 == 사실, 북사의 편찬은 이미 이연수의 아버지 이대사(李大師)에 의해 진행되고 있었다. 그 당시 위수(魏收)의 『위서』, 심약(沈約)의 『송서』등 단대사가 널리 보급되어 있었다. 이에 이대가는 『오월춘추(吳越春秋)』의 체제에 입각한 남북조의 역사를 [[편년체]]로 엮어 펀찬 사업을 추진했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사망했다. 이연수가 북사를 편찬한 것은 바로 아버지의 유업을 이어가기 위한 것이었다. 이연수는 남사와 북사를 편찬하게된 이유를 서전에서 밝혔다. 그는 왕조 교체에 있어서 전대의 사실에 대해 극히 부정적이거나 소략하다는 한계점을 지적하였다. 이연수는 아버지의 장례를 치루고 3년 뒤에 각각 남사, 북사의 편수 작업을 이행하였고, 편년체 대신 기전체로 방식을 바꾸었다. 또한, 위수의 『위서』와는 다르게 불필요한 내용을 축소하거나 삭제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