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북송 (문단 편집) === 근시안 외교 정책 === 부실한 국방력에 가려진 송나라의 본질적인 문제. 부실한 국방력을 메꾸기 위해 문인들이 외교로 사태를 수습하려고 했다. 이러한 방법은 한참 잘못되었다. 그래서 '''외교책이랍시고 수를 내놓을 때마다 나라를 절반씩 말아먹었다.'''[* 특히 여요전쟁 때 요나라의 침략을 당한 고려가 송나라에 군사적 지원을 요청했으나 거절당했다. 하다못해 고려는 송에 물자지원이라도 해달라고 요청했으나 송나라가 그것마저 거절했던 것이다. 당연히 고려에서는 이 일로 인해 송나라를 신뢰할 수 없는 국가로 보게 되었다. 나중에 송나라는 고려를 돕지 않은 대가를 제대로 치루는데, 금나라에 국토의 절반을 빼앗겨 남송으로 전락했을 때 고려에 지원을 요청했지만, 바로 거절당했다.] 처음에는 연운 16주를 차지한 [[요나라]]를 해결하기 위해 [[금나라]]에 구원을 요청했다. 이 사실을 안 [[고려]]에서는 사신을 보내 여진은 믿을만한 족속이 아니라고 설득했지만 송은 듣지 않았다. 그리고 송금 연합군이 요를 무너뜨렸을 때, 양국간의 이해 문제와 외교적 불협화음이 심화되었다. 송은 약속한대로 요를 공격했지만, 요의 잔당에게 패전했다. 결국 송은 자신들이 차지하기로 한 연운 지역의 공략을 금군에게 '의뢰'하고 그 대가로 물자와 재화를 제공하기로 했다. 금은 의뢰를 성실히 이행해주었지만, 점령지의 인력과 물자를 죄다 챙겨가고 송에게는 빈 껍데기만 가져다 주었다. 그리고 송에게 외교적인 양보를 강요하고 장난질을 쳤으며 계속해서 물자를 내놓으라고 요구했다. 반대로 송은 금의 행위에 분노하여 요와 비밀리에 접촉하고 금에 반기를 든 요의 잔여 세력을 수용하는 등의 행위를 하여 금의 수뇌부를 불편하게 했다. 이렇게 양국은 서로 신의 없는 외교를 지속했고, 결국 금이 선제 공격을 가했다. 송이 요나라 잔당을 제압하지 못하는것에서 송의 군사적 약세를 확인한 금군은 하북을 유린했고 끝내는 개봉을 함락시켰다. 송은 [[정강의 변|수도가 함락되고 황제는 포로가 되는]] 치욕을 당하며 나라 반쪽을 잃었다. 그러나 송은 멸망하지 않고 남천하여 회수와 사천 일대를 사수했다. 그런데, 그 전략을 [[남송]] 때 썼다가 이번엔 아예 멸망까지 당했다. 다만 이 경우는 참작의 여지가 있는 것이, 남송 문서에서도 보듯 '''금나라가 먼저 남송을 공략해 몽골에 대항하려 했다.''' 즉, 남송으로서는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초기에는 금나라에 세폐를 끊는 정도에서 대응하던 남송은 결국 금의 멸망이 분명해지자 몽골에 대항하기 위해서라도 금나라를 공격하기로 마음먹었고, 그 전략으로 벌충한 시간을 통해 [[양양]] 공방을 우주방어로 30년간 지연하며 막을 수 있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