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아프리카 (문단 편집) === 중세 === 서로마 제국의 멸망 후에도 유럽과 북아프리카 간의 통상로는 유지되었고, 원주민인 베르베르인들은 일부는 [[기독교]], 일부는 [[유대교]], 일부는 토속 신앙을 믿는 구성이었다. 500년대 중반 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대제]]가 벌인 고토 회복 전쟁을 통해 북아프리카는 다시금 로마(동로마)의 손에 들어오게 된다. 7세기 [[이라클리오스]] 황제 시대에는 북아프리카로 천도를 고려했을 정도로 알짜배기 땅이었다. 640년에 북아프리카에서도 무슬림의 "이슬람 정복"이 시작된다. 동로마는 이슬람의 침략을 막아내기는 했지만 북아프리카와 중동의 대부분의 영토를 빼앗겨 670년에는 대부분의 북아프리카가 무슬림들의 지배하에 들어가고, 이후 북아프리카의 번성했던 문명은 농업을 경시한 아랍인들로 인해 기존의 경작지들과 관개 시설이 방치되 사막화로 쇠퇴했다는 오해가 인터넷에 널리 퍼져 있으나 사실이 아니다. 아랍인의 대정복시대의 아랍측의 인적 자원의 중심 핵이던 헤자즈 지방[* [[메카]], [[메디나]]가 위치한 곳.]은 농업 따윈 모르는 사람들이 아닌 매우 열악한 환경에서도 오아시스 농업으로 아득바득 생계를 이어 오아시스 도시들을 건설했던 사람들이 거주하던 곳이었다. 오히려 아랍인들은 방치되었던 동로마-페르시아의 낙후된 관개 시설을 보수하고, 기존의 원시적인 기술로 기후나 중력에나 의존하던 동로마의 관개 시설을 신기술로 만든 새로 발명된 기계 장치들로 광활한 이슬람 신문명권 지역의 농업에 혁신을 불러왔다. 기존에 방치되었던 강, 시내, 오아시스, 하천, 지하 깊숙이 자리 잡은 지하수 등등 이용되지 않던 수원이 없어질 정도였다. 더군다나 기존에 재배되지 않거나 일부 지역에서나 재배되던 [[쌀]], [[수수]], 경질소맥, [[사탕수수]], [[수박]], [[시금치]], 겅퀴, [[토란]], 광귤, [[레몬]], [[목화]], [[가지]], 코코스 야자, [[망고]], 플랜테인, [[바나나]], [[라임]]에 더불어서 섬유식물, [[약초]], [[조미료]], [[미용]], [[의약]], [[염료]], [[조경]] 작물들이 아랍인들의 통합한 [[대서양]]부터 [[인더스강]]까지 널리 퍼졌다.[* 이 작물들 상당수가 이 시기에 유럽으로 전파되었다.] 이와 같은 농업적 혁명은 수원 부족으로 방치된 농업 가능 토지들을 개간해 빼곡히 경작지가 들어섰으며, 심지어 기존에 농업 자체가 불가능하다고 여겨졌던 [[황무지]] 사막들조차 개간해 신 작물을 재배해서 놀랄 정도의 수확량을 기록했다. 애초에 로마인들은 농업에서는 정복지의 기존의 기술을 섞어서 이용해 대규모의 인프라를 건설했을 뿐, 딱히 농업에 위업을 떨치던 사람들이 아니었다. 반 사막지대의 농업에 대한 이해와 기술의 혁신 없이 과거와 똑같이 그대로 농업을 하니 시간이 지날수록 북아프리카 -이집트-레반트 지역은 토지 염화와 지력 쇠퇴로 나날이 수확량이 감소해 나가, 버려지고 방치되어 유적으로 밖에 남지 않은 도시 폐허들이 속속히 생기던 때가 로마 지배하의 시기였다.[* 특히 리비아의 도시들과 [[시리아]] 내륙 도시들이 유달리 심했다. 덕분에 로마 시대 양식이 고스란히 남아있는 관광지로 이름이 높다.] 아랍인들은 이를 역전시켜 수확량 폭등을 바탕으로 영광이 빛에 바란 기존의 로마 도시들을 능가하는 번영을 가구하는 도시들이 속속들이 생겨났다. [[튀니스]], [[제르바|졔르바]], [[알제]], [[트리폴리]] 등 지금까지 각 나라의 수도나 주요 도시들도 이 때를 기점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카이르완]], [[마라케시]], [[페즈]] 같은 도시들의 옛 영화의 흔적을 보면 농사 지을 줄 모르는 아랍인들이 로마 시대의 관개 시설을 박살내어 사막화가 되었다는 주장이 당장 역사적 사실과 어긋남을 볼 수 있다. 북아프리카의 농업의 쇠퇴와 사막화의 원인은 후에 11세기 [[파티마 왕조]] 시기이다. [[수니파]] 반란으로 이탈한 북아프리카 지역에 종교적인 광신으로 인해 분노한 파티마 왕조가 매우 극단적인 이스마일 [[시아파]] 광신도로 악명이 높았던 베두인인 바누 하이랄, 바누 수랍 부족을 반란지인 북아프리카 동부로 이주시켜서 보복으로 마그레브의 거주지와 농경지를 철저하게 파괴하라고 명령했고, 이들은 심지어 마그레브에서 가장 중요한 도시인 카이르완까지 점령했다. 이들 베두인으로 인해 아포칼립스가 펼쳐지게 된다. 철저하게 농경지와 관개 시설을 황폐화 시키고 박살내고 지나가다 보이는 족족 대학살을 해 기층민 교체마저 이루었다. 그들이야말로 순수 유목민으로, 농업을 멸시해서 황폐화 시킨 도심과 농경지들은 목축지로 사용하고, 뒤이어 다른 베두인 부족들이 물 밀려오듯이 들어왔다. 북아프리카 동부 지역인 리비아와 튀니지의 살아남은 베르베르인들은 서쪽과 남쪽의 산지로 도망쳐 베두인에게 물갈이 돼서 오지에서나 볼 수가 있게 되었고, 이제부터 이들 지역은 베두인이 물려받게 된다. 뿐만 아니라 이 이후로 근세로 넘어가며 북아프리카는 [[스페인]]을 필두로 하는 지중해 [[가톨릭]] 세계와 [[오스만 제국]]의 각축장이 되면서 고대, 중세 초기의 영화를 재건하며 독자적인 발전을 추구할 여건이 안 되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800px-Courtyard_of_the_Great_Mosque_of_Kairouan.jpg|width=600]] 튀니지의 우크바 모스크. 670년 아랍에 의해 건설된 모스크로서 북아프리카에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모스크다. 출처: [[http://en.wikipedia.org/wiki/File:Courtyard_of_the_Great_Mosque_of_Kairouan.jpg|위키백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