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청군 (문단 편집) == 역사 == [[원삼국시대]]에 [[옥저]]의 영역이었고, 이후 [[고구려]]에 복속되었다가 [[신라]]의 [[진흥왕]]이 인근의 [[리원군|이원군]]으로 진출하여 [[마운령 순수비]]를 세우기도 했다. [[남북국시대]]에는 [[발해]]의 남해부 소속이었는데 발해 5경인 [[남경남해부]]의 치소가 설치된 것으로 추정된다. [[북한]]의 학자들이 북청군 하호리의 청해토성을 발굴한 후 여기를 [[남경남해부]]라고 비정했는데, 남북 사이에 학자들의 교류가 힘들다보니 많은 [[대한민국]]의 학자들은 아직 이 결과를 회의적으로 여긴다.[* 사실 북한의 고고학계는 정치가 학문을 지배하는 경향이 있기에 신뢰도가 없는 수준이다. [[평양시|평양]]의 [[단군릉]], 동명왕릉을 구체적 근거도 없이 확정해버리고 동수의 묘임이 거의 확실한 안악 3호분을 '이 정도 규모면 왕릉이어야 한다' 따위 빈약한 근거로 고국원왕릉으로 일방적으로 서술하는 등, 역사를 북한 정권의 정통성을 강화하는 선전용 도구로나 쓰지 학문 그 자체를 탐구하려는 시선은 거의 없는 편이다. 북청의 청해토성 또한 '북한 측에서 토성 하나 발굴되었다고 확정적으로 몰아가는 것 아닌가' 하는 시선이 있다. 다만 남북 역사학계의 교류가 거의 없고 [[대한민국]]의 고고학자들의 북한 탐사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보니 [[남경남해부]] 연구에 진척이 없는 상황.] 하지만 국사 교과서에서도 [[남경남해부]]의 위치를 북청에 표시하는 등 어느 정도 수긍하기도 한다. 발해 멸망 후 [[거란]]이 함경도 일대의 발해인들을 오늘날의 중국 [[랴오닝성]] 일대로 강제 이주시켜버리는 바람에 [[고려시대]]에는 [[천리장성]] 이북이 [[여진족]]들의 소굴이 됐다.[* 발해 멸망 이전에도 발해-신라 국경에 [[말갈]] 소국들이 출몰해 중앙정부를 무시하고 통교를 시도했다는 기록을 봤을때 발해가 쇠락해 말갈에 대한 통제력이 약해져 이들이 꽤 남하해 있었거나 신라를 견제하기 위해 발해가 의도적으로 말갈인을 사민시킨 것으로 추정하기도 한다. 실제로 주민들을 몽땅 사민했다기엔 백두산 폭발과 [[발해부흥운동]]의 여파로 함경도 같은 변방에 대한 요나라의 통제력은 안정적이지 못했다. 다만 동북쪽 일대에서 여진족이 발흥했을 무렵에는 부흥운동이 실패하고 요동으로 사민당했다거나 아예 고려에 내투해버렸다거나 하는 식으로 이미 발해인들의 세가 크게 약해져 흔적이 별로 남지 않게 된 상황이었다.] [[윤관]]의 여진 정벌 때 이곳에 영주성을 축성함으로써 잠시 [[고려]]에 편입, 이후 [[여진족]]에 돌려줬다가 [[몽골 제국]] [[쌍성총관부]]의 관할이 되었고 [[공민왕]] 때인 1356년에 [[쌍성총관부]]를 혁파하고 수복하여, 삼살(三撒)로 불리던 이곳에 1372년 북청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조선]] 건국 이후 1398년에 청주부로 승격하였으나, [[충청도]] [[청주시|청주목]]과 발음이 같다는 이유로 1417년 [[북청부]]로 이름이 바뀌었다. 1427년 [[북청도호부]]로 승격되었고 1872년 [[북청부]], 1895년 북청군이 되었다. [[남북분단]] 이후 [[북한]] 치하에 놓였고, [[북한]]이 1952년 행정구역 개편을 하면서 북청군 북부 지역에 해당하는 상거서면, 하거서면, 이곡면, 성대면, 덕성면(13개 리)을 [[덕성군]]으로, 북청군 남부 지역에 해당하는 신창면, 거산면, 속후면(17개 리), 신북청면(8개 리)을 [[신창군]]으로, 북청군 남서부 끄트머리에 해당하는 신포면과 양화면을 신포군(현재의 [[신포시]])으로 분리 신설하여 면적이 대폭 축소되었다. 1974년 1월 신창군이 폐지되면서 신창군 동부 지역 1개 로동자구 17개 리를 돌려받아 현재의 ㄱ자 모양 군 형태가 되었다. 2015년 기준 로동자구는 신창로동자구, 신북청로동자구 두 개다. 리 경계까지 담고 있는 북한에서 제작한 지도는 [[https://www.joongang.co.kr/article/17382427#home|이 링크 참조]]. 21세기의 북한의 군 지도에서 리 경계까지 공개된 지도는 찾기가 대단히 힘들다. 1990년대는 그나마 조선지리전서에 몇 개 도에 속하는 시와 군 전역의 동과 리의 경계가 그려진 지도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