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키프로스 (문단 편집) == 정치 == [include(틀:서아시아의 정치)] 사실상 튀르키예가 세운 [[괴뢰 국가]] 취급을 받으며 국제적으로 인정을 받지 못하다 보니, 북키프로스와 튀르키예 권력층 내부에서는 아예 '''차라리 독립국가를 포기하고 튀르키예와 합병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심지어 튀르키예는 북키프로스를 합병하고, 그리스는 남키프로스와 병합을 시키자는 영토 분할안도 나올 정도. '''우리도 튀르키예와의 합병 추진해야 하지 않겠냐?''''는 의견들이 간간히 나오고 있다. [Include(틀:북키프로스 공화국의회의 원내 구성)] 그러나 현재 북키프로스의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정당들 중에는 에르도안의 [[정의개발당]]과 정반대의 노선을 취하고 있는 공화튀르크당(CTP)과 사회민주당(TDP) 등 세속주의·사회민주주의 성향의, 키프로스 통일을 우선시하는 세력의 존재감도 무시할 수는 없다. 당장 키프로스 통일 협상을 진행한 게 공화튀르크당과 사회민주당 정권 시절이었다. 그렇다고 다른 거대 정당인 국민통일당(UBP)이 에르도안의 정책이나 튀르키예와의 통일에 호의적인 것도 아니다. 북키프로스 양당의 정치 쟁점은 주로 남키프로스와의 통일 문제, 자유보수주의와 사민주의 사이의 노선 차이이지, 양당은 튀르키예와의 통일이나 이슬람주의에 일관되게 반대하며, 위와 같은 입장은 현재로서는 어디까지나 소수 의견에 그치고 있다.[* 남키프로스는 분단 이전부터 키프로스 섬에 거주했던 튀르크인과 그 후손들에게는 키프로스 시민권과 키프로스 여권을 신청할 수 있는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즉 본토 튀르키예인과는 다르게 '''EU 시민'''으로서의 권리를 갖는다는 것인데, 아무리 북키프로스가 튀르키예의 도움을 많이 받는다 한들 유럽연합을 버리고 튀르키예에 붙을 키프로스인은 없다.][* 한창 튀르키예 본토에서 종교 문제로 떠들썩하던 2013년 선거에서 여당 국민통일당은 에르도안에게 호의적인 제스처를 취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지지율이 '''20%대 중반'''까지 떨어지며 완전히 선거를 말아먹은 바 있다.] 또한 통일에 반대하는 북키프로스인들 중에도 자신들이 튀르크인이라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본토 [[튀르키예인]]과 동일하다는 데에는 동의하지 않고 그저 남키프로스와 별개의 독립국으로 인정받기를 원하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그리고 튀르키예 역시 북키프로스를 '자국의 일부'가 아닌 '주권 독립 국가'로 인정한다. 총선은 전체 의석을 비례대표로 선출, 봉쇄조항은 5%, 5년 임기를 가지고 있다. 대통령 선거는 [[결선투표제]]를 시행하고 있다. 정치적인 권리를 평가하는 지수에서는 오히려 튀르키예보다 평가가 좋은 편이다. 2020년 언론자유지수는 북키프로스가 77위, 튀르키예가 154위였고 프리덤 하우스가 펴내는 Freedom in the World에서도 북키프로스는 튀르키예와 달리 자유로운 국가로 평가받고 있다. 2000년대 들어 에르도안이 장기집권 중인 튀르키예와 달리 북키프로스에서는 정권교체가 계속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북키프로스 무장독립운동 지도자이자 독립 이후 초대 대통령을 역임한 라우프 뎅크타쉬(Rauf Denktaş)와 국민통일당 사이의 알력 다툼의 역사와 연관이 깊은데, 국민통일당은 에르도안 1인의 강력한 카리스마로 출발한 [[정의개발당]]과는 다르게 키프로스 무장 독립운동을 이끌던 여러 명의 지도자들이 모여 결성한 정당이기 때문에 당시 대통령이었던 뎅크타쉬는 당을 완전히 장악할 수 없었다. 시간이 지나 뎅크타쉬와 다른 지도자들 사이의 갈등이 커지자 그는 자기 아들 세르다르 뎅크타쉬(Serdar Denktaş)과 자신에게 충성하는 의원들을 출당시킨 뒤 민주당(DP)을 창당시켜서 1993년 선거에 참여시켰다. 만약 뎅크타쉬가 정치적 영향력이 압도적인 인물이었다면 이 선거에서 민주당이 과반 의석을 차지해 단독 정부를 수립한 뒤 북키프로스를 권위주의 체제로 이행했을 수도 있지만, 그는 그 정도까지 영향력 있는 인물은 아니었기 때문에 민주당은 29.2% 득표, 50석 중 16석 확보에 그친다. 결국 민주당은 제3당인 공화튀르크당과 연립정부를 구성할 수밖에 없었고, 이렇게 민주당-공화튀르크당 연립정부가 구성됨에 따라 뎅크타쉬는 일단 자기 말을 안 듣는 국민통일당을 야당으로 빼버리면서 반쪽짜리 성공을 거뒀다. 이렇게 자기 당을 길들이는 데에 성공한 그는 이후 민주당을 다시 국민통일당의 연정 파트너로 불러들였으나, 앞서 말했듯 뎅크타쉬가 북키프로스에서 딱히 크게 존경받는 인물도 아니고 개인의 카리스마도 없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만으로 굴러가는 민주당의 지지율은 점점 빠지게 되었고, 반대급부로 지지율이 오른 국민통일당 지도부는 점점 머리가 굵어지고 입김이 세지게 되었다. 결국 뎅크타쉬 대통령은 2003년 다시 민주당을 야당 공화튀르크당과 붙여서 국민통일당을 물먹이게 된다. 그 와중에 2005년 공화튀르크당이 조기총선을 실시해 민주당마저 버리고 자신들만의 정부를 세우자 뎅크타쉬 대통령의 입지는 완전히 바닥으로 떨어졌고, 결국 그는 2005년 대선에 불출마함으로써 22년의 대통령 임기를 마치고 정계에서 은퇴한다. 이런 그의 끊임없는 국민통일당 찍어누르기로 인하여 뎅크타쉬는 본의 아니게 공화튀르크당, 인민당, 민주당 등 야당이 성장할 수 있는 토양을 마련해 주었고, 독립 초창기에 전체 의석수의 75%를 장악하며 압도적인 힘을 자랑하던 국민통일당은 그 동안 계파 분열과 대통령의 압박으로 인해 현재는 독점적인 권력을 행사하지 못하고 견제와 감시를 받는 일반적인 민주국가의 정당으로 변모하였다. 당 지도부 또한 현재까지도 에르도안 1인의 카리스마에 의존하는 본토의 정의개발당과는 달리 이념으로 뭉친 복수의 인물들이 주축이 되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