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한/경제 (문단 편집) ==== 외형적 발전 시도의 실패 ==== >어떤 어리석은 부자가 있었다. 그는 다른 부잣집에 높고 웅장한 3층 누각이 있는 것을 보고 부러워 죽을 지경이었다. 그가 가진 것은 돈뿐이었으므로 곧 목수를 불러 똑같은 모양으로 3층 누각을 지어 달라고 했다. > >목수는 기초를 다지고 벽돌을 쌓아 1층부터 지었다. 그것을 바라보다 의심이 생긴 부자가 달려가 목수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집이오?" > >목수가 대답했다. "당신의 분부에 따라 짓는 3층 누각이 아니오?" > >그는 급히 목수를 제지하며 말했다. "내게 집을 지어 주려면 내 생각에 따라야 하오. 나는 1층이나 2층 같은 건 필요 없소. 3층만 있으면 되니 3층을 지어주시오." > >알고 보니 부자가 부러워했던 집은 집의 가장 위층인 3층뿐이었고, 그가 지으려는 것도 그것뿐이었다.[* 여기서 다른 '부잣집=기존 선진국들', '어리석은 부자=북한(내지는 김일성)', '3층 누각=중화학공업 / 1층이나 2층=1차산업과 경공업'이라 보면 얼추 들어맞는다.] >----- >백유경(百喩經) 중 북한은 중화학공업을 중심으로 한 경제 개발 정책을 실시하였는데, "어? 대한민국도 중화학공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펼치지 않았었나? 그런데 한국은 최소한으로 따져도 누구나 인정하는 선진국에 올랐는데 북한은 왜 이 모양이지?"하는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이 문단에서는 한국과의 차이가 벌어진 이유를 남북 간 비교를 통해 살펴보기로 한다. 요약하면, 한국은 자본주의 체제 하에서 세계 시장에 진입하기 위해 스스로 적극적인 노력을 한 반면 북한은 경직된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소련과 중국의 지원만 받아가며 살았기에 국가를 운영할 방법도 제대로 배우지 못했고, 경제적으로 자립해 자본주의를 도입할 필요성을 크게 못 느끼다가 소련 해체 이후 망한 거라고 볼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는 다음과 같다. 흔히 한국은 [[경제계획(대한민국)|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하 5개년 계획)을 통해 경제발전을 이루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중공업 중심의 경제계획을 실시한 것은 '''3차''' 5개년 계획 시절의 일이다. 그 이전 2번의 5개년 계획에서는 1차산업 및 경공업 수출에 주력하였다. [[텅스텐]]부터 시작해서 [[오징어]], 실, 가발, 심지어 돼지 털이나 쥐 가죽(!) 같은 것까지 수출할 수 있는 건 최대한 다 수출하던 눈물겨운 이야기가 바로 저 시절의 것. 위 교훈에 비추어 보면 한국은 1층부터 차례차례 쌓아 올려 3층 누각을 만든 데 비해, 북한은 처음부터 3층만 지으려고 시도한 것이라 볼 수 있다. 반면에 북한은 세계 시장에서 경쟁력 있는 상품이 거의 없고 내수로 살기엔 내수시장이 너무나 작다. 전 세계에 전자제품, 반도체, 자동차, 선박, 철강, 석유제품 등등을 수출해서 먹고사는 한국과의 차이가 바로 이것이며, 폐쇄된 공산주의 체제 하에서 소련과 중국의 지원만을 먹고살아온 북한이 현재 수출할 것이라고는 1960년대의 한국처럼 '''광물, 수산물, 단순 노동력이 전부'''인 것이 현실이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300px-Korea_electricity.png]] 1980년대부터 2010년까지의 북한과 대한민국의 전기 사용 그래프. 당연하겠지만 청색이 대한민국이고 붉은색이 북한이다. 1991년까지는 북한의 전기 사용은 그럭저럭 많았지만 그 이후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공업 대비 중공업 집중 육성의 사례는 [[이오시프 스탈린|스탈린]] 치하의 [[소련]]에서도 있었던 일이다.[* 다만 북한과는 달리 큰 성공을 거두어 나치의 침공을 격퇴하는데 큰 성과를 거두었다.] [[경공업]]은 생산하는 품목만 보면 경제적인 가치도 크지 않고 하찮아 보이지만 그 품목들은 국민들이 일상생활에서 쓰는 소비재들이 대부분이라서 매우 중요한 산업이다. 그러니 국민들의 생활의 질과도 연관성이 크다. 러시아가 현재까지도 [[초코파이|한국산]] [[꽃게랑|과자]]나 [[팔도 도시락|즉석식품]] 등을 선호하며 수입하는 것도 그 당시의 경공업 미비가 현재까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특히 초코파이의 경우 2010년에 있었던 G20 정상회담 당시에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러시아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여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회담을 한 적이 있는데, '''메드베데프 본인을 포함해서''' 방한한 러시아 측 인원들이 초코파이를 워낙 잘 먹는 바람에 미리 구비해 놨던 초코파이 3박스가 순식간에 떨어져서 청와대 관계자들이 부랴부랴 인근 마트에서 필요한 양을 공수해야 했다.] 보기와는 달리 경공업도 우습게 볼 것만은 아닌 셈이다.[* 물론 소련이나 러시아도 바보는 아니라 경공업이 나름대로 육성되어 있는데, 예시로 한국 관광객들에게도 가성비 과자로 유명한 '야쉬키노(Яшикно)'가 있다.] 선진국들의 사례를 보면 대부분이 경공업적 기반부터 갖춘 상태에서 [[중공업]]을 육성했다. 경공업을 통해 공업에 대한 경험과 노하우를 쌓고 중공업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거친 것이다. 대한민국의 경우는 그 과정을 압축해서 이뤄낸 것이고, 북한의 경우는 아예 건너뛰려고 시도했다가 실패한 셈이다. 또한 계획과는 별개로 정부 자체의 역량 차이도 성공과 실패를 가르는 요소중 하나였다. 황무지에서 산업을 일궈낸 주역으로 꼽히는 박정희와, 북한 나름의 황금기를 만들었다는 김일성이지만 실제 국가경제 운영의 역량은 크게 차이났다. 비록 현재의 관점에서는 장기독재에, 친기업적이며 강압적인 경제 정책과 인권탄압을 펼쳐서 비난받는 박정희 정권이지만, 당시 시점에서는 (유신 이전까지는) 납득할만한 정치적 정당성을 갖추고, 본인 스스로도 경제의 흐름을 이해하고 있었고, 측근들을 적소에 잘 기용하여 경제 기반을 건실하게 쌓아올렸기에 장기적인 경제발전이 가능하였다. 반면 김일성은 당시 공산주의 국가들에 널리 퍼져있던 경제진흥책을 가져다 적용시킨 것 까지는 좋았으나, 최소한의 여론은 살피던 박정희 정권과는 달리 당 내에서의 독선적 의견으로 국가를 운영했으며, 권력을 다지기 위해 수없이 많은 인원을 숙청해 스스로 국가 경쟁력을 낮추어버렸고, 군수산업에 과도한 투자 및 불투명한 자금 운용 등으로 잠재적인 성장여지를 큰 폭으로 깎아버리는데에 일조했다. 1980~90년대 이후 공산권 국가들의 중공업 우선 정책의 실패는 드문 일이 아니었으나, 북한만큼의 비참한 경제 붕괴는 없었다는 것이 이런 북한의 내적 역량 부족을 제대로 보여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