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한/역사 (문단 편집) == 개요 == 1910년 [[경술국치]]로 [[대한제국]]이 멸망하고 [[일본]]에게 35년간 주권을 빼앗겼던 [[한반도]]는 1945년 8월 15일 일제 패망 이후 해방을 맞았다. 그러나 일본으로부터의 해방이 곧 독립국가의 건설을 의미하는건 아니었으며, 연합국의 핵심 축인 [[미국]]과 [[소련]]을 중심으로 세계의 질서가 재편되는 과정 속에서 연합국의 점령지였던 한반도는 끝내 남과 북으로 분단되어 엇갈린 운명의 길을 걷게 되었다. [[대한민국 제1공화국]]과 [[북한]]의 지도자들은 각자 해방 직후 혼란한 정국 속에서 비록 방도와 강도는 다르지만 정적들을 숙청하고 반대세력을 탄압함으로써 정권을 안정시켰다. 자연환경, 노동력, 판매 가능 시장 구매력에서 북한보다 열위에 있던 [[대한민국]]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제1세계|자본주의 진영]]의 원조를 받아 경제 발전의 토양을 마련하였고 [[대한민국 제3공화국]] 이후 [[경제 개발 5개년 계획]]과 [[새마을운동]]을 비롯한 산업화 정책을 통해 북한의 경제력을 추월하기 시작하였다. 경제의 발전으로 민주의식이 태동되기 시작한 1980년대에 이르러서는 [[6월 항쟁]]을 거쳐 27년 간 이어진 군사독재를 몰아내고 문민정권의 시대를 열었다. 결과적으로 북한의 체재 경쟁 대상인 대한민국은 격동의 20세기 속에서 산업화와 민주화를 동시에 이룩하였고, 개발도상국 지위에서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자 [[선진국]]으로 변신하는 기적을 달성하였다. 반면 일제가 공업지대로 개발했던 북한 지역은 그러한 태생적 이점과 소련의 막대한 지원을 안고 해방 직후 대한민국보다 경제력에 있어서 크게 우위에 있었다. 그러나 1960년대 후반을 기점으로 군사력에 예산을 과도하게 편성하기 시작하면서 경제성장률은 떨어지기 시작했고, 결국 1980년대 들어서는 경제성장률이 3% 안팍에 그치는 저성장 국면에 들어서게 되었다. 1980년대 탈냉전 기류 속에서 적응하지 못한 북한은 시대에 뒤떨어진 [[스탈린주의]]만을 고집하며 [[김일성]]의 뒤를 이어 그의 아들인 [[김정일]]에게도 대를 이어 절대적인 충성을 할 것을 인민들에게 강요하였다. 이미 세계적으로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었던 개방정책을 거부하고 체제 안정만을 목적으로 부자 세습이라는 시대에 역행하는 길을 선택한 북한은 [[북한/경제/역사/1980년대의 대규모 정책 실패|80년대 3대 실정]] 이후 사실상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하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는 소련을 비롯한 사회주의 공산권이 연이어 붕괴하면서 북한은 국제적으로 고립되었고 결정적으로 [[고난의 행군|북한 인구 수백만 명을 아사시킨 최악의 자연재해까지 겹치면서]] 세계 최빈국으로 전락하게 된다. [[일제강점기]]를 경험한 북한 주민이 차라리 왜정(일제강점기) 때가 훨씬 나았다는 말까지 공공연히 할 정도로 현 북한의 경제상태는 파국에 가까운 수준이다. 북한의 반체제 인물들은 일제강점기의 [[불령선인]]보다 더욱 가혹한 취급을 받고 있으며 산간오지에 있는 [[정치범수용소/북한|정치범수용소]]에 수용되어 갖은 고문과 노동에 신음하고 있다. 일반적인 북한 주민조차 일제강점기에도 있었던 거주 이전과 여행의 자유를 심각하게 제약 받으며, 북한 남성들은 약 10년의 반강제적인 [[병역]] 의무를 강요받는다. 이러한 상황은 일제 식민통치 35년을 2배나 초과하는 기간인 70여 년의 세월 동안 지속되고 있고, 명목상 대한민국의 국민인 이북지역의 주민들은 김씨 일가와 조선로동당의 폭압정치 속에 놓여있는 게 현 북한의 실정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