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한/역사 (문단 편집) == [anchor(소련의 위성국)]초기 == [include(틀:소련의 위성국)] [[파일:/20151103_92/1446523479567j7ifK_JPEG/%BA%CF%C7%D1.jpg]] [[1945년]] [[제2차 세계대전]] 직후 [[소련군]]이 북한에 [[소련군정|군정을 실시했다]]. 이때 소련군과 같이 남하한 [[김일성]]이 북한 건국의 중심이 된다. 소련군이 입성했을 시기 북한에서도 고당 조만식을 중심으로 건국준비위원회가 활동했었고, 이들 또한 소련군정과 김일성 측에 협력했지만, [[신의주 반공학생사건]]과 1945년 12월에 모스크바 삼상회의 문제가 대두되면서 갈등을 겪게 된다. [[1946년]]에는 군정이 종식되고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가 수립되었다. [[1947년]]에는 [[북조선인민위원회]]로 개칭되고, [[1948년]]에 북한 정부가 수립된다. 그러나 국가 건설 초기에는 [[김일성]] 독재 체제가 이뤄질 수가 없었는데 이는 공산주의자 내부에도 다양한 파벌이 존재했기 때문이다. [[소련]]의 직계 라인인 소련파와 중공군과 함께 하다가 49년 중화인민공화국의 건설 이후 국내로 유입된 연안파([[중국]]파), 그리고 국내에서 활동하는 남로당파와 김일성 측근의 주변에서 항일 [[빨치산]] 활동을 도왔던 갑산파, 그리고 김일성파(빨치산파)들이 연합하는 형태의 국가 체계가 이루어졌다. 그러나 실상은 [[8월 종파사건]] 이전까지는 소련의 영향력이 강한 [[위성국]]에 가까웠고, 소련에 상당히 종속된 모습을 보여 주었다. 건국초기 김일성과 조선로동당은 무상몰수-무상분배를 주장한 [[토지개혁]]을 강행하고 그 와중에 저항하는 지주, 유산가들을 닥치는대로 탄압했다. 이후 반공주의자, 기독교도 등이 [[월남]]하거나 정리되었다. 그러나 한국과는 다르게 국가정상화는 빨리 진행되었고 이 때문에 경제력에서 우위에 서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경제력을 활용하여 전쟁준비에 착수했다. 곧이어 1950년 전격적으로 남침을 하여 [[6.25 전쟁]]을 일으킨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