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한/역사 (문단 편집) == [[고난의 행군]] == [[김일성]], [[김정일]]의 공동통치 시기 북한의 경제는 그야말로 급속도로 악화되고 있었다. 일단 [[동유럽 혁명]]과 [[소련 해체]]로 인해 공산권이 무너져 원조는 물론이고, 물물교환 및 사회주의 우호가격으로 공급받던 원유 등의 원자재를 달러로 사와야 하는 상황에 놓였으며, 설상가상으로 94년, 김일성이 사망하면서 수해 등의 자연재해뿐 아니라 대외환경의 불확실성이 계속해서 북한을 덮쳤다. 공산주의 국가들이 대부분 그렇듯 북한도 이런 대처 능력이 상당히 뒤떨어지는 나라였다. 특히, 1995년 쏟아진 폭우로 인해 식량난은 최악으로 치달았다. 96년, 하루 300g씩 지급하던 식량 배급량도 절반 이하로 떨어졌으며, 이마저도 제대로 배급하지 못해 일부 지역에서는 아사자가 속출하였다. 당시, 북한은 '하루 두끼 먹기 캠페인'을 벌였고, 배고픔에 농장을 습격하는 주민들을 막기 위해 공장, 농장 등의 산업 현장에 군대가 투입되기 시작하였다. 본격적인 선군정치의 시작이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김정일]]은 '''[[심화조 사건]]'''이라는 희대의 대숙청을 자행해 정치적인 불만을 무마시키고 경제적인 문제는 '''우리는 이러한 어려운 상황을 ~~[[근성]]~~[[고난의 행군]] 정신으로 극복하자!!'''라는 선전 구호를 내세우며 대대적인 사회 운동을 벌이면서 특히 문화 예술에서는 고난의 행군을 선전하는 내용 말고는 찾을 수 없을 정도로 대대적인 선전을 벌였다. 또한 김정일은 [[선군정치]]를 표방하여 기존의 당 위주의 정치에서 군 위주의 정치를 통해 정권에 위협이 될 수 있는 [[조선인민군|군부]]를 어르고 달래면서 통제하였다. 기존의 국가주석 직책은 죽은 김일성을 영원한 주석으로 추대하면서 공식적으로 폐지하였고 1998년 헌법 개정을 통하여 최고인민회의 상설회의와 정무원을 다시 상임위원회와 내각으로 복원함과 동시에 본인의 직책인 국방위원회 위원장직을 선군사상에 따라 '''국가 무력 전반을 통솔하는 초월적 직책'''으로 만들었다. 물론 겉으로 보기엔 외교권은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에게 위임하고 경제관리는 내각 총리가 담당하는 등 집단지도 체제처럼 보이게 했지만 이들은 그저 얼굴마담이나 허수아비일 뿐이고 실상은 모든 정책이 김정일의 지도 아래 돌아가게 되었다. 그러나 [[현실은 시궁창]]. [[2000년]]에 북한이 고난의 행군 시기가 끝났다고 선언할 때까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북한의 모든 시도는 실패로 끝났고 이 과정에서 '''40만이 넘는 주민들이 [[아사]]했다'''고 추정된다.(...) 이 시기 김일성이 죽기 전 김영삼 대통령과의 [[남북정상회담]] 시도나 김대중 대통령의 평양 방문에 대해 합의해 준 일은 더 이상 버티기 힘들었던 북한이 어떻게든 살려고 발버둥 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2000년대 초중반, 정확히 말하면 [[2002년]]부터 [[2005년]]까지가 북한의 짧은 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른바 "7.1 경제관리 개선조치"가 발표되면서 본격적인 경제개방 정책이 실행되었던 것, 하지만 김정일의 지지를 받았던 이 정책은 핵을 포기하지 않고 보유하겠다는 전제 아래 나온 정책이라 ~~당연히~~ 북핵을 불인정하는 미국의 [[조지 W. 부시]] 행정부의 봉쇄정책 속에 큰 효과를 발휘하지 못했고, [[조선로동당]]과 [[군부]]의 반발에 부딪치게 되면서 결국 개혁개방 시도는 물거품이 되고 말았다. 북한은 [[2003년]]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는데 봉쇄정책이 큰 이유였다. 그리고 [[북한의 핵개발]]이 시작된다. 어려운 시기를 지나고도 북한은 여전히 변하지 않고 다시 고립주의로 나가기 시작했다. [[2007년]] 부시 행정부 말에 다시 한 번 기회가 왔지만, 핵실험 및 기타 사건을 일으키며 스스로 기회를 날려버렸으며 남한도 정권이 바뀌고 그동안의 북한의 행보에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 북한에 부정적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결국 봉쇄는 그치지 않았고, [[2008년]]에 전 세계적 경제위기([[대침체|미국발 금융위기]])가 오자 북한도 타격을 받았고 화폐개혁 등으로 발버둥을 쳤으나 다시 경제가 무너지기 시작했으며, [[2009년]], [[2010년]] 들어서는 2차 핵실험, [[대청해전]]과 [[연평도 포격전|연평도 포격사건]]을 일으키는 등 막나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이 시기 쯤 [[뇌졸중]]을 일으킨 김정일은 자신이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체감하고 그 즈음부터 [[김정은]] 후계 체제를 가동시키게 된다. 그런 현실에서 김정일은 [[2011년]] [[12월]]에 죽었고, 김정은이 ~~왕위~~ 권력을 이어받았다. 일단 표면상으로는 빠르고 효과적으로 권력 승계가 완료되었고, 지금까지 이어져 오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