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북한/외교 (문단 편집) === 외교관의 직위 및 실태 === 의외로 관계를 맺어도 이득도 없어보이는(반미국가들과는 여러 협력이 이루어지지만) 막장국가인데도 수교국이 제법 있는 편이다. 하지만 이 경우, 특히 서방세계 선진국인 경우에는 무언가 이득이 있어서 수교를 맺었다기보다는, 대부분은 북한과 수교를 맺어서 그것으로 북한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북한의 만행에 압력을 가하고자 하는 배경에서 관계를 맺은 경향이 크다. 대사관에 있는 북한 외교관의 서열은 보통 ''' 대사(외무성)''' > '''정치부 비서 (로동당 지도요원)''' > '''참사(보위부 파견) ''' > '''서기관 등 나머지'''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국가보위부가 워낙 힘이 있는 권력 기관이다보니 공식 서열을 무시하고 참사가 도리어 실세거나, 대사와 정치부가 서로 편을 갈라 파벌을 만들어 헐뜯고 난장판이 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강석주가 제 1 부상시절 김정일에게 요청하여 참사들의 권한을 대거 줄여놓고 상당수를 철수 시켰다곤 한다. 북한 외교관들의 주재국에서의 생활은 열악한 수준인 것으로 드러났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8625861|#]][[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8627643|#]] [[태영호]] 전 공사에 따르면 월급은 대사는 '''1,100달러(약 131만원), 공사는 700~900달러''' 수준밖에 못 받으며, 월급만으로 생활하기 어렵다고 한다. 실제로 주 이탈리아 김춘국 북한 대사가 간암으로 사망한 이유도 돈이 없어서다.[[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hm&sid1=100&oid=001&aid=0008943198|#]] 이미 고난의 행군도 훨씬 이전인 80년대 후반부터 외교관 운영비가 끊겼으며, 월급을 제외한 모든 비용은 외교관들이 자력으로 충당해야 한다. 심지어 북한에서 파견을 나오거나 드나들 때도 돈이 없어 중남미처럼 비행기로밖에 갈 수 없는 지역이 아닌 이상[* 이런 경우 육로로 베이징에 위치한 북한 대사관을 들렀다 멕시코나 캐나다 등을 경유해서 간다고 한다.] 대부분 육로를 이용한다고 한다. [[태영호]] 공사 역시 비용 문제로 인해 영국과 북한을 드나들 때 장거리 [[국제열차]]를 주로 이용했다. 한때 120여개 국가에 대사관이나 대표부를 두었으나 핵 제재와 생활고에 시달린 외교관들의 범죄를 이용한 달러벌이 무기 밀매 등으로 추방되고 폐쇄되어 현재에는 약 40개 국가로 축소되었으며 5개국 정도를 제외하면 대사를 포함하여 3명 내외로 운영하는 실정이라고 한다. '''태영호 공사도 영국 대사관 시절 [[영국]]과 [[베네룩스]] 3국, [[벨기에]]에 있는 [[유럽연합]] 대표부를 혼자 담당해서 격무에 시달렸다고 한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0&aid=0002997190|유럽에 있는 북한 외교관의 실태]], [[http://smartincome.tistory.com/1103|북한 대사관의 모습.]] 북한 외교관들이 가장 선호하는 지역은 한국과 정반대라고 한다. 내전이 일어나는 [[이라크]], [[시리아]], [[리비아]],,,([[現]] 한국 기준 여행 금지 국가),,, 같은 곳에 배치 되기를 희망해서 뇌물을 대량으로 써서 온다고 하는데 죽을 위험도 있지만 무법천지이기 때문에 무기 밀매나 [[밀수]] 등으로 크게 한탕 해먹을 수 있는 곳이라서이고, 상대적으로 유럽 지역은 기피 지역이라고 한다. 왜냐하면 북한 외교관들은 90년대 이후 핵제재로 깡패국가로 취급받은데다가 온갖 밀수나 마약, [[위조화폐]] 유통 정도는 보통이고, 테러단체에게 무기를 팔까봐 서유럽에선 경찰이나 정보기관이 북한 외교관을 줄줄 따라다니며 대놓고 감시하는 터라 활동하기 어려워서라고.. 동유럽도 얄짤 없다고 한다. 최악은 미국 뉴욕의 북한 UN 대표부인데 미수교국에 미국의 적성국인지라 UN 대표부 반경 25마일(40킬로미터)를 벗어날 수 없고 이동 동선에 항상 제약이 붙으며, 물가가 비싸서 북한 외교관 월급으로 먹고살기에는 막막한 곳이라서 유엔 대표부 경력으로 '''승진해서 위로 올라가고 싶은 야심있는 사람만 지원'''하는 곳이라고 한다. 좀 드문 경우지만, 가끔 북한 내의 권력 투쟁에서 밀려난 인물들이 외교관으로 전직하는 경우도 있다. 김정일과 벌인 권력 투쟁에서 자신의 지지 세력을 모두 잃고 패배한 [[김평일]]이 그 예인데, 1979년에 [[유고슬라비아]] 주재 북한 대사관의 부무관으로 임명된 뒤 30년 넘게 [[헝가리]], [[불가리아]], [[폴란드]], [[체코]] 등 [[동유럽]] 지역의 대사를 전전하며 귀국하지 못했다. 기껏 한 번 귀국한 것도 1994년에 7월에 아버지 김일성이 죽었을 때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고, 장례식이 끝나자마자 다시 쫓겨나듯 유럽으로 돌아가야 했다. 그러다가 2019년이 되어서야 [[김정은]]의 승인 하에 귀국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