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불가침조약 (문단 편집) == 역사 == [[베스트팔렌 조약]] 이후로부터 국가와 국가간의 협정은 1. '''[[적의 적은 나의 친구|힘을 합쳐]] [[공공의 적|적국]]을 때린다'''(동맹) 1. (당사국이 다른 나라와 싸우면) '''당사국의 편을 들어준다'''(상호원조) 1. '''그만 싸운다'''([[휴전]] 또는 종전) 정도로만 나타났다. 그 이유는 1. 강자와 약자가 뚜렷했다. - [[강대국]]이 [[약소국]]을 집어 삼키는 시대로써, 국가에게 아군 아니면 적국밖에 없던 시기였다. 1. 조약을 확인하고 조정할 [[국제기구]]가 없었다. - [[제1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연맹]]이 등장할 때 까지 이러한 국가간의 협정을 감시할 국제기구가 없었다. 1. 강대국끼리의 [[전쟁]]을 하는 것 보다, 비어있는 [[제국주의|식민지를 확보하는 것이 훨씬 이득이었다.]] 결과적으로 국가의 [[이익]]을 위해서만 움직이지, 그 이익이 상충되지 않는다면, 상대방에 대해서 크게 [[관심]]이 없었다는 것으로 풀이할 수 있다.[* 그래서 위의 3가지 협정 형태와 다르게 나타난 것도 [[파쇼다 사건]] 이후에, 맺어진 영프협정이다.] 하지만 이러한 이유들은 [[제1차 세계대전]] 이후로 무너진다. 1차 대전의 시발점은 [[사라예보 사건]]이지만, 그 뿌리에는 [[식민지]] 자체는 먹을 수 있는 만큼 다 먹어서 더 이상 식민지가 없는데, [[오스트리아 헝가리 제국|식민지를 풍족하게]] [[독일 제국|차지하지 못했던 국가]]와 [[영국|이미 풍족하게]] [[프랑스|차지한 국가]]간의 [[갈등]]이 이미 한계점을 넘어섰다는 것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유럽]]은 그 갈등의 대가를 피로 치렀다. 재발방지책이 필요하다 생각한 국가들은, [[베르사유 조약]] 이후에도 '비록 자신들의 이득과는 상충되지만,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서, '''잠재적 적대국과의 전쟁 가능성을 배제'''하는 안전보장 수단'을 만들어야 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것이 불가침조약이다. 그래서 불가침조약은 1920~[[30년대]] 시작되었고, 그 즈음에 약소국들을 중심으로 크게 성행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