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불교 (문단 편집) === 이타심 === 이타심은, '나'와 '남'이라는 양극단을 하나로 이해하는 공(空) 개념에서 비롯되었다. 서로가 서로에게 인과로 의존하므로 '나의 이익은 남을 이롭게 하는 데서 나오게 된다'는 자리이타(自利利他)의 개념이 만들어졌고, 여기에서 다시 자비(慈悲)라는 개념이 생겼다. 이타심을 강조하는 것은 상좌부불교와는 차별되는 대승불교의 특징인데, 물론 상좌부불교 내에서도 이타심을 강조하는 부분이 많지만, 대승불교는 유독 이 이타심을 상좌부불교와는 다른 차별점이라고 특정지었다. 비교하자면, 상좌부불교에서는 '개인'의 올바른 수행을 강조하는 팔정도가 주된 가르침이지만, 대승불교에서는 '나'의 깨달음을 추구하면서도 '남'을 적극적으로 이해하고 공감하려는 수행을 하자는 '자비'가 주된 가르침이 된다.[* 한 때 이런 관점에서 상좌부불교를 '소승 불교'라고도 불렀지만, 이는 대승과 비교하여 비하적 단어로 여겨져서 최근에는 쓰여지고 있지 않다. 자세한 것은 [[상좌부 불교]] 참조.] 이러한 이타심의 수행방법은 대체적으로,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집중하지 않고 '내가 남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만 집중한다. 왜냐하면 '남이 나를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에 집중하는 순간, '남의 반응'에 맞춰서 대응하는 '나'를 생각할 수 밖에 없고, 이는 '나'와 '남'을 구별하게 하는 '분별심'을 유발시키기 때문이다. 이것을 더 쉽게 말하자면, 남이 나를 싫어하면 나는 그러한 남을 싫어하고, 남이 나를 좋아하면 나는 그러한 남을 좋아하게 된다면, 이것은 '너는 너, 나는 나'를 더 명확하게 구분짓는 사고방식에 지나지 않으므로, 이는 서로 다른 양극단을 하나로 이해하는 '공(空) 개념'과 일치하지 않게 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대승불교에서는 앞서 말했던 '내가 남을 어떻게 대할 것인가'에 대해서만 초점을 맞춰야 된다고 강조한다.[* '남'과 '나'를 구분짓는 마음은 '나'라는 존재를 더 부각시켜서 '무아'의 가르침에 위배되고 '나'는 괴로움에 빠진다. 따라서 내가 괴로움에서 벗어나자 한다면, '남의 반응과 상관없이' 남을 도와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이를 간략하게 말하면, "'''무아(無我)를 하고 싶다면 이타(利他)를 해야된다'''"는 것.] 이러한 점은 대승불교의 대표적인 수행법인 '바라밀'과 '사무량심'에서도 나타난다. 바라밀에서는, '남을 아무런 조건없이 도와주는 보시'와 '남의 모욕적인 반응에도 평정심을 가지는 인욕'을 통해, '남의 반응과 상관없이 남을 대하는 나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는 '이타심'의 특징을 확인할 수 있다.[* 바라밀의 나머지 부분인, 지계(持戒)·정진(精進)·선정(禪定)·지혜(智慧)는 '개인의 깨달음'이나 '계율'을 강조한 팔정도와 비슷하다. 대승불교에서 유독 '보시'와 '인욕'을 강조하는 것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법이다.] 또한 '4가지 측정할 수 없이 큰 마음가짐'을 뜻하는 사무량심은 자(慈), 비(悲), 희(喜), 사(捨)의 4가지 수행법이 있다. 자(慈)는 친절한 얼굴로 상대방에게 즐거움을 주고자 하는 마음을 뜻하고, 비(悲)는 상대방의 불행에 같이 슬퍼하는 마음을 뜻하며, 희(喜)는 상대방의 성공에 같이 기뻐하는 마음을 뜻하고[* 불경에서는 자비희사 중 가장 수행하기 힘든 것이 '희(喜)'라고 말하였다.], 사(捨)는 상대에게 이러한 마음을 되돌려받지 못하거나 이러한 나를 남들이 어리석다고 비난해도 평정심을 가지는 것을 말한다. 즉 '''상대방에게 열린 마음으로 다가서서, 상대의 아픔에 같이 슬퍼하고, 상대의 성공을 같이 기뻐하며, 내가 준 마음을 남이 나에게 되돌려주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평정심을 가지는''', '공감'의 이타심을 말하는 것이다. 여기서도 '남의 반응과 상관없이 남을 대하는 나의 자세'를 강조하고 있음을 알 수 있는데, 이것이야말로 '자비'로운 마음이라 할 수 있으며, 이러한 마음을 가지는 것은 대승불교의 '공(空)사상'을 몸으로 직접 실천하는 것이 된다. 이를 통해 '나'의 괴로움을 잊는 것 뿐만아니라 나에게 영향을 주는 '사회'의 괴로움마저 돌보아, 이 공통의 괴로움을 아우르고 거기서 평정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또한 이 개념에서 발전하여 세상 모든 것은 그물처럼 얽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화엄'사상이 생겨났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