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불국사 (문단 편집) == 특징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external/s4.postimg.org/untitled.png|width=100%]]}}} || || 요네다 미요지의 평면 분석 || 불국사의 평면 구성에 [[수학]]적인 의미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처음 한 사람은 [[일제강점기]] 때의 요네다 미요시였다. 요네다의 안은 현대에 와서는 실측이 부족하였다는 점 등으로 인해 많이 까이기도 하지만, 어쨌든 불국사가 [[석굴암]]과 같이 수학적으로 구성되었을 것이라는 데에 주목했다는 점에 의의가 있다. 다만 이는 서구 건축물들이 즐겨 사용한 방법이므로, 동양 건축물에 이를 적용하는 것은 너무 서구 중심적인 사고라는 비판도 존재한다. 아무튼 불국사는 평면 배치뿐만이 아니라 형태적, 시각적으로도 상당히 의미 있는 구성을 취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석탑들의 관계인데,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은 완벽한 비례[* 한국 탑의 높이와 폭의 비율 '''기준'''으로 꼽히는 것이 바로 석가탑이다.]와 기하학적인 직선미를 선보이고 있으며, 바로 옆에 있는 화려한 다보탑은 층 구조를 버린 자유롭고도 독특한 형식이어서 석가탑과 짝을 지으면 대칭되면서도 강렬한 대비를 느낄 수 있는 절묘한 구성을 갖추고 있다. 이러한 대비되는 구성은 탑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금당에서 바라본다면 화려한 다보탑 뒤의 단순한 경루와 단아한 석가탑 뒤의 화려한 종루(수미범종각)를 통해 반복되었다고 한다. 다만 이 경루와 화려한 종루는 제대로 복원되지 않아서 아쉬운 점으로 꼽히고 있다. 이는 통일신라시대의 정확한 양식을 알기 어려움도 있지만, 통일신라시대의 불국사와 조선시대의 불국사 구조가 다르기 때문이기도 하다. 원래 불국사에는 좌경루와 우경루가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 복원된 형태는 다보탑 쪽이 좌경루, 석가탑 쪽에 범영루가 있고 이것이 우경루가 되고 있다. 그러나 통일신라시대의 종루(수미범종각)와 우경루가 사실 다른 건물이며, 서쪽의 극락전 쪽에 우경루가 있었을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범영루는 1612년, 1688년에 중건하고 1708년에 [[단청]]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러나 1973년의 복원 공사 때 다시 중건되었다. 청운교와 백운교 또한 선의 미려함을 느낄 수 있으며,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는 청운교와 백운교 바로 밑에는 구품연지라는 큰 연못이 있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그러나 1970년대 당시 복원 공사 책임자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http://www.hani.co.kr/arti/culture/music/567537.html|관광객의 동선을 방해]]한다는 등의 이유로 복원하지 않기로 했다고 한다. 불국사가 있는 [[토함산]] 근처에는 당시의 기하학을 총동원해 석굴을 지었고, 무뚝뚝하고 근엄한 느낌의 [[부처]] 조각상을 품은 [[석굴암]]도 존재한다. 불국사에서 매년 열리는 '신라불교문화영산대제'에서 [[법흥왕]], [[이차돈]], [[표훈대덕]], [[원효]], [[김대성]], 월산과 함께 [[박정희]] 영정이 걸려 있는데, 논란이 있지만 불국사를 재건하는데 큰 역할을 한 인물이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경주국립공원]] 토함산지구에 있다. 그래서 사찰 내부에서 [[토함산]]으로 올라 갈 수 있는 등산로가 있다. 불국사 밑에는 큰 규모의 [[여관]] 및 [[유스호스텔]]들이 위치해 있다. [[수학여행]] 등 단체 여행객들은 보통 이곳 아니면 [[보문관광단지]]의 [[콘도]] 등에 숙소를 마련하는 편이다. [[불국사 3층 석탑|석가탑]]에서는 1966년 [[도굴꾼|도굴범]]이 훼손한 부분을 수리하는 과정에서 세계 최초(最初)의 목판 인쇄물로 추정되는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발견되었다.--???:오히려 좋아-- 도굴범들은 석가탑의 사리구를 도굴하려고 하였으나 찾지 못했고, 수리하다가 다른 층에서 발견되었다. 참고로 이 도굴범들은 검거되었으며 [[황룡사]]지를 털었던 도굴범들이란 점이 수사 중에 밝혀졌다. 이 수리 과정에서 전문가도 아닌 인부들이 나무 전봇대를 기중기 삼아 엉성하게 복원하다가 전봇대가 부러지는 바람에 석가탑의 일부를 깨먹었다. 그 당시 한국의 엉성한 문화재 관리 의식을 보여주는 것으로, 전국적으로 상당한 비난을 받았던 부분이다. 이는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도 자세하게 나온다. [[파일:attachment/60.jpg|width=600]] [[1960년대]]에 촬영된 것으로 추정되는 사진이 있다. 수많은 여학생이 저런 [[교복]]을 입던 시절이니 정황상 [[8.15 광복]] 이후일 테고, 1970년대에는 불국사가 복원되어 회랑이 생기기 때문. [[파일:attachment/대한민국 원/10000wonsample.jpg]] [[만원권|만 원권 지폐]]가 처음 나올 당시에는 지금의 [[세종대왕]]이 아닌 불국사가 [[석굴암]]과 함께 인쇄되어 나올 예정이었고 사진 속의 시제품에 [[박정희]] 대통령의 재가를 뜻하는 사인까지 적혔다. 하지만 기독교계는 [[불교|특정 종교]] 편향이라고 반대했고 [[불교]]계조차도 세속의 상징인 돈에 부처님을 새긴다고 반발이 있어서 세종대왕 도안으로 변경되어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진을 보면 지금과는 다른데, 이때는 아직 복원 공사를 하기 전이었다. 극락전 앞에 가면 하도 사람들이 만져서 반질거리는 [[https://www.yna.co.kr/view/AKR20190103114300053?input=1195m|돼지 동상]]이 있는데 극락전 글자가 한자로 써 있는 편액 뒤에 있는 [[돼지]]가 원본이다. [[무한도전]]에서 돼지 찾기 미션이 나온 뒤 유명해졌다. [[2007년]] 정해년 황금돼지해를 맞아 동상을 만들었고 [[중국인]] 단체 관광객 등이 불국사를 찾을 때 이 돼지를 소개해 준다. 불국사 대웅전은 2011년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1120517338242154|해체]]되어 2014년 복원되었다. 2013년 5월 17일 [[부처님오신날]] 새벽에 불국사 경내 성보박물관 뒤편에 위치한 연리목 중 [[느티나무]]의 뿌리 밑둥이 잘려나가는 사태가 벌어졌다. 누가 이렇게 했는지는 아직 알려지지는 않았다. [[2016년 경주 지진]]의 여파로 다보탑의 일부가 무너지고 대웅전의 기와가 떨어지는 [[http://naver.me/5KedZlQI|피해]]를 입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