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불로불사 (문단 편집) === 불로불사의 장점 === 죽지 않는 영원한 삶이 가져다주는 이점은 어마어마하게 많겠지만, 다른 장점들 이전에 불로불사가 주는 가장 중요한 장점은 자신이란 존재가 사라지지 않고 영원히 유지된다는 점 자체일 것이다. 인간은 딱히 무언가를 얻거나 남길 욕구가 없더라도 자신이 언젠가 사라진다는 사실 자체에 두려움을 느낀다. 현생이 아무리 고통스럽더라도 쉽사리 죽음을 택하지 않는 이유,[*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더라도 단지 관성으로 살아갈 뿐이거나, 자신의 죽음으로 타인이 고통받는 것을 원하지 않아 억지로라도 살아가는 경우도 있다.] [[자살|스스로 죽으려]] 했다가도 마지막 순간 포기하는 이유가 현생에서 희망이 보이지 않더라도 죽음은 그 이상으로 두렵기 때문이다. 불로불사가 실현된다면 이런 두려움에서 완전히 해방될 수 있다. [[의식주]] 문제의 완전한 해결도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의식주가 없으면 살 수 없는데, 불로불사인 사람은 근본적으로 이 문제에서 자유롭다. 물론 단순히 생존이 아닌, 인간다운 삶의 차원에서라면 불로불사인 인간도 의식주가 필요하겠지만, 필수에서 선택으로 바뀐다는 점에서 분명 어마어마한 메리트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인간이 평생 [[노동]]에 시달리며 고통받는 이유도 이 의식주 때문인데, 영원한 삶을 살게 되면 노동 역시 선택이 될 수 있다. 영속성의 보장 외의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불로불사의 최대 장점은 '''무한한 지식의 습득'''일 것이다. 일반적인 사람이 생전에 자신의 생계를 위한 직업 관련 또는 흥미 있는 분야에 지식이 한정되는 데 반하여 불로불사인 사람은 이러한 제한에서 해방된다. 자신이 원하는 때 원하는 지식을 습득할 수 있으므로 전 세계의 [[언어]], 심지어 변방 소수 민족의 언어까지 마스터한다거나 현존하는 모든 [[직업]]의 전문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가능하다. 이렇게 되면 그 사람은 존재만으로도 인류의 보고가 될 수 있다. 또 다른 장점으로 만약 불로불사인 자가 '''[[수집]]'''에 흥미가 있는 경우 그에게 불로불사는 큰 장점이 된다. 수집욕이 매우 강한 사람은 '완벽한 컬렉션'을 추구하기 때문에 특정한 브랜드의 모든 제품이나 특정인의 모든 작품 등을 수집하려 하는 경향이 있는데 시간적 제약이 없으므로 '언젠가는' 컬렉션을 완성할 수 있다. 시간이 무한하니 경제적으로도 문제 될 것이 없다. 그 전에 [[지구]]가 수명을 다하는 것이 문제 될 뿐. || {{{#!wiki style="margin: -5px -10px" [youtube(C25qzDhGLx8)]}}} || || '''Why Die?''' || 불로불사는 가능하며, 불로불사는 인간에게 득이 된다는 주장. 죽음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그저 죽음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인간의 '''[[스톡홀름 신드롬]]'''일 뿐이라는 견해이다. 불로불사를 긍정하는 사람들은 아래 문단에 열거된 "불로불사의 단점"이라는 것들을 불로불사라는 '''지고의 축복'''을 향유하지 못하는 인간의 질투심과 시기심, 막연한 불안감과 미지에 대한 공포가 오랜 세월에 걸쳐 투영되고 집적된 산물, 즉 '''[[여우와 포도|여우의 신포도]]'''로 간주한다. 너무 걱정이 많기에 머뭇거리는 것이다.[* 만약 사람들이 영생하고 싶지 않다면, 자연사([[노환]]으로 인한 사망)도 하고 싶지 않아야 한다. 수명이 정해져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오래 사는 걸 택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고통은 [[안락사]]로 해결 가능한데도) 이를 볼 때 사람들은 최대한 오래 살길 원하고, 자연사보다 오래 살 수 있는 영생의 기회가 왔을 때 그걸 거부할 거라고 생각하긴 힘들다.] 많은 사람이 불로불사의 고통이 당연한 사실이라고 치부하곤 하는데, 이는 지나치게 한쪽 면만 강조하는 사고방식이다. 물론 단기적으로 심적인 고통이 있을 수는 있다. 하지만 아무도 불로불사가 되어 본 적이 없고 천년씩 사는 정도는 아니더라도 몇백년 정도 [[평균수명]]보다 한참 오래 살아본 사람조차 존재하지 않으니 어떤 느낌일지 아는 것은 불가능하다. 신화나 창작물 등 각종 매체에 등장하는 불로불사자들이 죽음을 갈구하는 이유로는 물론 '''[[정신병]]'''이 원인일 수도 있지만, 근본적인 원인은 다름 아닌 '''슬프고 괴로운 [[기억]]'''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인간은 특수한 경우가 아니라면 당시의 감정까지 생생하게 재생되는 완전 기억은 할 수 없으며, 부모나 친구, 연인을 상실한 [[사별]]의 아픔조차도 고작 몇 년만 지나면 아련한 추억으로 사그라드는 것이 보통이다. 다만 예외로 [[완전기억능력]]의 경우 제 아무리 슬프고 괴로운 기억도 전부 기억해서 떠오르게 된다. 그리고 인간의 기억은 여차하면 아주 상세한 가짜 기억을 날조하거나, 편리하게 조작하기도, 완전히 지워버리기까지 하는 등, 그다지 정확하지 않다. 학자 중에서 불로불사에 열광하는 사람이 매우 많은데, 이는 상술했듯이 죽지 않기 때문에 지식을 끊임없이 축적하고 탐구할 수 있으며 인간의 문명 발전에 공헌할 수 있는 시간이 더욱 많아지기 때문이다. 즉, '''[[케바케|불로불사의 가치는 개개인이 처한 환경이나 가치관, 그 사람의 직업에 따라 달라진다]]'''고 할 수 있겠다. 그 단적인 예시로 과거 동양에서 불로불사는 불행이 아니라 최고의 축복이었으며, 도교 신자들이 공통으로 추구하는 이상이자 '''궁극적인 도달점'''이었다. 도사들의 목표인 신선이 '''불로장생'''을 하며 앞에도 서술되어 있듯이 역사상 진시황이 직접 불로불사를 찾아 떠났다는 사실은 유명하다. 그뿐만 아니라 시간이 흐른 현재에 와서는 불로불사가 마냥 저주라는 서술은 오히려 찾기 힘들다. [[데드풀]], [[울버린(마블 코믹스)|울버린]], [[이라세오날]], [[완전생물]]이 된 [[카즈(죠죠의 기묘한 모험)|카즈]][* 의외일지 모르겠으나 [[완전생물]]이 된 [[카즈(죠죠의 기묘한 모험)|카즈]]야말로 불로불사의 장점을 극단적으로 설명해준다. 다만 최악의 상황에 부닥치고 보니 '''[[생각하는 것을 그만두었다|죽지 못한다는 단점이 생각보다 엄청났던 게 문제일 뿐.]]''' ~~불사를 달성하고 그냥 얌전히 살았으면 해결될 문제였지만.~~] 등. 이 문서의 그나마 약점이라 할만한 게 필멸자가 불로불사를 이루는 것이 목표로 주로 서술되어 있다. 반면 [[섀도우 더 헤지혹|태어날 때부터 불로불사여서 오히려 자부심 가지고 신경도 안 쓰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는 제작진이 수명물 같은 클리셰를 반영하는 장르가 아닌 경우라 묘사가 없지만 원작은 아니지만 섀도우는 아치코믹스에선 오히려 다 늙은 왕이던 소닉을 쳐내고 자기가 왕이되 천년만년 해 먹으려고 한다.] 물론 태생이 불로불사여도 사는 게 괴로워서가 아닌 남들이 죽으니까 죽어보고 싶어서 죽으려는 좀 특이한 경우도 있다. 미국 만화 [[THE SANDMAN]]에는 불로불사 캐릭터에 대한 기존의 음울한 클리셰를 완전히 비꼬아 풍자한 로버트 개들링이라는 불로불사 캐릭터가 등장한다. 평범한 인간이었던 로버트 개들링이 죽음은 무의미한 일이며 자신은 죽기를 원치 않는다고 떠벌리자, 이에 흥미를 느낀 [[죽음(THE SANDMAN)|죽음]]이 그를 불로불사의 몸으로 만들어준 뒤 백 년마다 그 앞에 나타나 아직도 죽고 싶지 않은지 물어본다. 이후 개들링은 흔한 불사 캐릭터들처럼 온갖 비참한 경험과 연인을 잃는 비극을 연거푸 겪게 되는데[*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불사가 되고 200년이 지나 16세기경에 해운업으로 큰돈을 벌어 [[엘리자베스 1세]]가 집에 묵고 갈 만큼 성공해 가슴에 바람이 잔뜩 들어갔지만 17세기에 [[꿈(THE SANDMAN)|모르페우스]]를 만났을 땐 아내가 아이를 낳다 죽고 아들이 패싸움에 휘말려 사망, 자신도 사람들의 의심을 살 때까지 한곳에 너무 오래 산 데다 청교도 혁명에서 왕당파로 싸우는 등 실책을 저질러 인생이 밑바닥으로 떨어져 버린다. 이때는 지난 수십 년의 모든 순간이 증오스러웠다고 말하지만, [[꿈(THE SANDMAN)|모르페우스]]가 의기양양하게 그렇다면 이제 죽음을 원하냐고 묻자 단호히 거부하고 18세기가 되어선 노예무역 손을 빌리긴 했지만 다시 번듯하게 재기했다. 결국 19세기에 와서는 지난 세상을 회고하면서도 앞으로 죽음을 원하지 않을 것 같다고 말하는 등, 여러모로 다른 불로불사 캐릭터와는 행보도 사고방식도 매우 이질적이다.], 그런데도 매번 [[꿈(THE SANDMAN)|모르페우스]]와 [[죽음(THE SANDMAN)|죽음]]이 죽고 싶지 않냐고 물어볼 때마다 대답은 '''"미친 소리. 가끔은 고통스럽기도 하지만 살 이유가 얼마나 많은데 내가 왜 죽음을 바라겠는가?"'''였다. 결국 최초의 생명체가 탄생하기 전에 태어나 아득한 세월을 살아온 [[꿈(THE SANDMAN)|모르페우스]]가 죽은 뒤에도 생존하는 위업을 달성한다.~~ 저런 일을 수도 없이 겪고도 저런 대답이 나오는 걸 보면 정신력이 평범해 보이지 않는다.~~[* 작중에서도 다른 불로불사 인물들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온갖 풍파를 겪어보고 인생이 롤러코스터를 타기도 했지만 18세기 이후로는 미치지도 않고 번듯하게 사는 로버트가 불사의 삶을 잘 살아가는 축인 것은 맞는 것 같다. 600년을 살았는데 보통 사람과 비교하면 대단한 정신력을 가졌어도 크게 이상한 것은 없기도 하다.] 종합하자면 불로불사 단점에 대한 서술은 '그럴 수도 있다'는 것일 뿐 '반드시 그렇다'는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인간은 적응의 생물이다.''' 끊임없이 지속되는 육체적, 심적 고통에도 쉽사리 적응하는데, 페널티도 아니고 전무후무한 어드밴티지인 늙지 않는 삶에 적응하지 못할 이유가 없다. 불로불사여서 누릴 수 있는 행복이 '''그 반대급부를 아득히 상회하거나 압도'''하는 것은 충분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다만 위에 나와 있는 대로 시기를 제대로 잡고 일정 수준 이상의 권력과 돈을 지니고 있지 않다면, 저소득층은 고소득층보다 기술 공유를 누리지 못하고 정상적인 생활을 누리지 못한 채 살아갈 확률이 크다는 것은 위험 요소다. 그러나 이러한 사회문제는 불로불사 의학 기술이 세상에 처음 등장하여 획기적인 기술의 혜택이 이제 막 대중화가 되어 기술 공유를 누리기 시작한 초창기 시절에나 가능한 일이지, 각국 정부에서 사전대책을 세워놓고 즉각 올바르게 대처하고 변화하면 그만이다. 평범한 사람 입장에서는 '''단 한 번뿐인 인생으로도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재미와 즐거움과 쾌락을 끝없이 영위할 수 있으며, 필연적인 죽음의 공포로부터 자유로워질 수 있다'''는 것이 불로불사의 제일 큰 장점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니 전 인류의 불로불사를 연구하는 학자와 같이 원대한 목표나 포부를 가지고 불로불사를 추구하는 것도 분명 보람 있는 일일 것이다. 다만 영생으로서 무료하고 따분할 수 있다는 사실은 '''어떤 사람이 어떻게 사느냐에 따라서 다르다.''' 일부 반론으로 불로불사를 하게 되면 삶에 질려서 즐거움이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세상 모든 인간은 망각을 한다. [[기억력]]이 아무리 좋더라도 모든 것을 완벽하게 기억할 수는 없다. 뇌를 개조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살면서 많은 것들을 잊으며, 또한 많은 것을 배우며 산다. [[노인]]이 [[젊은이]]보다 더 지혜로울지언정 더 지식이 많다고 단언할 수는 없다. 잊기 때문이다. 망각의 축복이 인간과 함께하는 한, 무언가에 질릴 걱정은 없다는 의견이 많다. 그것을 즐겼던 기억이 잊힐 때쯤 다시 즐기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만약 기억이 절대적이라면 모든 사람은 한번 클리어한 [[게임]]이나 한번 본 [[영화]]를 두 번 봐야 할 유인이 전혀 없다. 특히 스포츠 같은 건 매번 할 때마다 변수가 매우 다양하게 나오지만 게임이나 영화 같은 건 스토리도 다 알고 진행 방식도 알기 때문. 그런데도 사람들은 즐거움을 느꼈던 장소에 또 방문하고, 훌륭한 작품들을 수십, 수백 번씩 돌려본다. 이미 해봐서 재미없다는 개념은 단기간 내에 똑같은 행동을 수십 번 반복했을 때 나올 수 있는 이야기인데 심지어 본인이 불로불사라면 자기가 미디어를 소화하는 속도보다 발매하는 속도가 더 빠를 수 있다.[* 예컨대 동네 [[도서관]] 같은데도 매달 신작 도서가 수십 권씩 들어오는데 이걸 다 읽는다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 영화나 게임 같은 것도 세계적으로 보면 하루에 수백, 수천 개가 쏟아져 나오며 스포츠 경기 같은 건 변수가 워낙 많아 볼 때마다 거의 다른 상황이 나온다. 즉 질리는 거 자체가 불가능하게 짜여 있다.] 오히려 불로불사를 겪어본 사람이 없다 보니 "오래 살면 질리겠지." 하는 게 결국 유한한 삶을 산 사람의 상상력의 한계라고 할 수도 있는 것이다. 기억력의 한계로 인해 과거를 기억하지 못하게 되거나 주기적으로 기억포맷을 한다면 결국에는 기억의 관점만 보면 원래의 나와 다른존재가 되는게 아니냐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는데 이건 그냥 사람의 정체성을 이루는데 직접 관련있는 핵심적인 기억이랑 경험과 사람의 기본적인 정보를 담고 있는 기억만 따로 저장하면 해결되는 문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