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불륜 (문단 편집) === 대한민국 가족 형태의 변화 === 대한민국의 가족은 [[6.25 전쟁]]을 겪으며 중대한 변화를 겪는데, [[집성촌]]의 상당수가 해체된 것이다. 정주민족의 국가는 집성촌을 형성하는 경우가 많았고, 대한민국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하지만 6.25 전쟁이 터지고 사람들은 살기 위해 피난길에 올랐다. 개전 초 [[전차]]를 앞세운 [[조선인민군]]의 공세에 [[대한민국 국군|국군]]은 처절하게 갈려나가며 낙동강까지 후퇴하였고, 많은 이들이 전화를 피해 남하하였다. 때문에 상당수 집성촌이 피난 과정에서 해체되었다. 이는 향토사회에서 가족이 가지는 구성원에 대한 지배력이 약화되었음을 의미한다. 그나마, 전쟁이 끝난 후에는 다시 고향으로 복귀하는 가족들이 많이 존재했다(물론, [[실향민/대한민국|실향민]]들은 그러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뒤에도 대한민국의 가정은 점차 규모가 줄어들며 파편화하는 양상을 띄게 되었는데, [[박정희]] 정권부터 가속화된 경제발전 때문이었다. 당시 [[개도국]] 중에서도 말석에 위치한 대한민국은 국토의 [[균형개발]] 따위는 꿈도 꾸지 못하였다. 미국에서 얻어온 경제적 지원, 외국에서 빌려온 차관은 언제나 부족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당시 박정희 정부는 [[한일기본조약]]을 통해 [[일제강점기]] 당시 [[강제징용]], [[위안부]], [[징병]] 등으로 피해를 입은 국민들의 돈까지 끌어다 쓸 상황이었다. 그렇다보니 개발은 자연히 최소비용 최대효율적 방향으로 실행되었고, 이는 특정 지방 대도시와 '''[[수도권(대한민국)|수도권]]'''의 개발을 극대화 하는 것으로 실현되었다. 그나마 박정희는 [[새마을운동]]을 통해 농촌의 체력 향상을 도모했지만, 농촌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그래봐야 농사일일 뿐이었다. 이들은 자연히 일자리가 있는 대도시, 특히 [[서울특별시]]를 위시한 수도권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으며, 특히 개발에서 도태된 [[전라도]] 젊은이들은 서울로 자연스럽게 이주하였다. [[2021년 재보궐선거]]를 두고, 당시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이었던 [[김종인]]이 ''''서울 인구 구성중 호남 출신이 가장 많다.''''라고 했으니[* [[https://www.hankyung.com/politics/article/2020101484147|한국경제 '김종인 "서울 인구구성 호남 출신 가장 많아보궐서 중요"']] 출처.] 그 이동의 규모가 어땠는지 상상해 보기 어렵지 않다.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발생한 [[이촌향도]]는 상상을 초월한다. 국가통계포털의 [[https://kosis.kr/statHtml/statHtml.do?orgId=101&tblId=DT_1B040A3&vw_cd=MT_ZTITLE&list_id=A_7&seqNo=&lang_mode=ko&language=kor&obj_var_id=&itm_id=&conn_path=MT_ZTITLE|주민등록인구현황:행정구역(시군구)별, 성별 인구수]]에 따르면 2021년 5월 기준, [[서울특별시|서울]]·[[경기도|경기]]·[[인천광역시|인천]]의 인구는 26,000,647명으로, 대한민국 총인구 51,683,025명 중 약 50.3%의 비중을 가지고 있다. 여기에 [[부산광역시|부산]], [[대구광역시|대구]], [[광주광역시|광주]], [[대전광역시|대전]], [[울산광역시|울산]], [[창원시|창원]][* 비수도권, 비경기권 인구수 1위. 2021년 5월 기준 1,034,130명(내국인). [[https://bigdata.changwon.go.kr/portal/statUse/stat/cwStat.do?menuDiv=02|창원시 빅데이터 포털 주민등록인구 통계]] 출처.], [[청주시|청주]][* 비수도권, 비경기권 인구수 2위. 2021년 5월 기준 845,534명(내국인). [[http://www.cheongju.go.kr/stat/selectBbsNttView.do?key=1682&bbsNo=538&nttNo=175057|청주시 통계정보시스템 4월인구통계분석]] 출처.]의 인구를 더하면 37,678,075명으로, 대한민국 51,683,025명 중 '''약 72.9%의 비중'''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대형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모두 시골에서 올라온 것은 물론 아니겠지만, 대도시 편중 현상이 어마어마하다는 것은 통계적으로 증명된 셈이다. 이촌향도 과정에서 전통적 대가족은 급속도로 찢어졌다. 이전에는 부모+자식 1+자식 2+자식 3+자식 4...+자식n이 1개의 집에 사는 대가족의 형태였다면, 이촌향도가 크게 발생한 시점에서는 부모, 자식 1, 자식 2, 자식 3, 자식 4... ,자식n이 n+1개의 집에 서로 각자 사는 핵가족화가 크게 진행되었다는 것이다. 이는 자식이 부모의 통제로부터 독립하고, 보다 수평적인 부모자식관계를 만드는 것에 기여했지만, '''가정의 통제력이 약화되는 것에도 영향을 미쳤다.''' 부모형제가 모두 모여 사는 가정에서는 배우자는 물론, 부모형제 모두에게 자신이 외도중이라는 사실을 숨겨야 한다. 부모만 모시고 살아도 속여야 하는 사람이 2명이 늘어나는 셈이고, 형제가 2, 심지어 그 형제가 결혼까지 했다면 4명이 더 늘어나 총 속여야 하는 사람이 6명이 된다. 애당초 부부 둘만 사는 가정에서도 배우자 하나 제대로 못 속여 불륜이 들통나는 경우가 허다한데, 6명이나 더 속이는 것은 정말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때문에 대가족 상황 아래에서는 자연히 불륜의 성공률이 낮아질 수 밖에 없기에 어설픈 불륜 따위는 안할 가능성이 높다. 핵가족화로 인해 불륜이 용이해지긴 했으나, 여기까지도 불륜을 쉽게 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1997년 외환 위기]] 이전까지만 해도 남자가 나가서 돈 벌고 여자는 집에 앉아 애를 보거나 [[가사노동]], 좀 알뜰한 여자라면 [[부업]]을 한다는 사고관념이 깔려있었다. 또한 시골은 물론, 도시에서도 공동체 의식이 어느정도 남아있던 시기였고, 다들 알음알음 인사 정도는 하면서 살던 시대였기 때문에 역시나 보는 눈이 많아 불륜을 하는 것이 참 까다로운 시대였다. 여자가 집 밖에 이유없이 들락날락하는 것 자체가 흉이 되거나 의심을 받던 시절이었기 때문에 정말 적극성있는 유부녀가 아니었다면 불륜이 극히 힘들었다. 요즘도 그렇지만, 당시 대다수의 불륜이 미혼여성과 기혼남성이 저지르는 형태로 이루어졌던 것 또한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가 크게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사회가 더욱 발전하고 [[맞벌이]]가 당연해진 사회가 오며 비로소 유부남 유부녀 모두가 불륜이 쉬워진(...)세상이 오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