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리티시컬럼비아 (문단 편집) == 역사 == [[영국]]과 [[스페인]]이 오리건, 워싱턴과 함께 영유권을 주장하던 곳이다. 1790년 [[영국]]과 [[밴쿠버 섬]]을 두고 누트카 해협 위기(Nootka Crisis)로 전쟁 발발 직전까지 간 적도 있었다. 결국 양국은 공동 영유권을 행사하여 타국의 통상과 항해의 자유를 보장하기로 하였다. [[1818년]], [[미국]] - [[영국]] 조약을 통해 브리티시컬럼비아의 남부는 오리건 컨트리[* Oregon Country, 현재의 오리건 주가 아닌 북위 42도~54도 40분 사이 영토를 포함한 더 넓은 명칭이다.]로 편입되었고, [[1819년]] 애덤스 - 오니스 조약을 통해 [[스페인]]은 북위 42도 이북 지역[* 현재의 [[캘리포니아]] - [[오리건]] 경계.]에 대한 영유권을 포기하였다. 한편 이 지역의 북부 역시, 북위 61도[* 현 알래스카와 [[유콘]] 남부]까지 [[스페인]]이 영유권을 주장했는데, 이후 애덤스 - 오니스 조약으로 [[스페인]]은 브리티시컬럼비아, [[유콘]]과 [[알래스카]] 남부 영유권을 포기하고 모든 권리를 [[미국]]에 승계했다. 이 지역은 이후로도 [[미국]] - [[영국]] 간 영유권 분쟁이 계속 일어나다 [[1846년]]에 오리건 조약을 통해 북위 49도를 경계로 북쪽은 [[캐나다|영국령 캐나다]]로, 남쪽은 미국령 [[워싱턴 주|워싱턴]], [[오리건]]으로 편입되어 오랜 국경분쟁의 막을 내리고, 현재의 [[미국]] - [[캐나다]] 국경으로 확정되었다. 한편 [[러시아]]와도 영유권 갈등이 있었다. [[미국]]은 [[1824년]] 러시아와의 조약으로 북위 54도 40분 이북 지역의 [[러시아]]의 독점적 모피거래권을 보장해서 사실상 54도 이북의 영유권 다툼에서 발을 뺐다. [[러시아]]는 [[미국]]과의 조약 이후 [[1825년]] [[영국]]과도 상트페테르부르크 조약을 통해 영국령 캐나다와 [[러시아령 알래스카]] 경계를 북위 56, 서경 141도로 정했지만 어디까지나 원론적인 협약으로, 북서 해안지역 영유권은 애매하게 남았기에, [[영국]]은 계속해서 토지를 임차해 잠식하고 자유롭게 항해를 할 수 있었다. 그렇게 하여 브리티시컬럼비아 대륙부와 밴쿠버 섬은 [[영국]] 식민지가 되었다. 본래 둘은 서로 다른 영국 식민지였는데, 1866년에 밴쿠버 섬 식민지 정부가 재정위기를 겪는 바람에 둘이 합쳐졌다. 브리티시컬럼비아라 이름이 붙은 것도 이 시기의 일이었다. 이 당시 [[빅토리아(캐나다)|빅토리아]]로 주도의 이름을 지은 것은 당시 [[영국 국왕]]인 [[빅토리아 여왕]]의 이름을 차용했기 때문이다. 이후 [[캐나다 자치령]] 정부에서 브리티시컬럼비아 식민지 정부의 막대한 부채를 캐나다 자치령이 짊어지고 캐나다 대륙횡단 철도를 건설해준다는 떡밥을 던졌고 이 외에 브리티시컬럼비아에 있는 영국 해군의 태평양 본거지를 그대로 유지시키고 주의 모든 주민들에게 보상금을 지급하겠다는 공약까지 내걸었다. 캐나다 자치령이 이런 파격적인 제안을 한 것에는 당시 [[캐나다]]는 [[태평양]] 접근을 하기 위한 거점이 필요했고, [[캐나다]]의 모토가 '''바다에서 바다까지'''였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시 브리티시컬럼비아가 [[미국]]에 붙어버리면 [[북아메리카]] 서해안 전역이 미국 영토가 되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미국을 견제하던 [[영국]]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은 일이었고, 고로 당연히 브리티시컬럼비아가 미국보단 캐나다 영토가 되는 것을 선호했다.[* 캐나다 자치령이 설립된 동기 중 하나가 미국의 알래스카 구입이나 미멕전쟁 등 공격적 영토 확장에 있던 것을 생각해보면 그것을 뛰어넘는 위협이다.] 그래서 [[영국 정부]]는 브리티시컬럼비아 [[빅토리아(캐나다)|빅토리아]]에 해군 기지를 건설하고, [[영국 해군]]의 태평양 함대를 배치하는 것, 브리티시컬럼비아와 캐나다 타 지역 간 철도를 건설하는 것, 브리티시컬럼비아의 부채를 전액 탕감하는 것을 내걸고 브리티시컬럼비아를 [[1871년]]에 캐나다의 6번째 주로 가입하는데 성공했다. 그렇지만 당시 캐나다 대륙횡단 철도 공사는 현실적인 공사 자금 조달 문제 등으로 한참 연기되어 [[1885년]]에 완공되었다. 브리티시컬럼비아 측에 약속한 바에 의하면 가입 후 10년 내로 완공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완공된건 가입 14년 후였다. 때문에 당시엔 한동안 브리티시컬럼비아에서 캐나다 연방 탈퇴 떡밥이 돌기도 했다. [include(틀:문서 가져옴, title=누에바에스파냐, version=38, paragraph=2)]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