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브리티시컬럼비아 (문단 편집) === 역사 === BC주는 원래 초기만 해도 [[캐나다/정치|캐나다 정치]]에 그렇게 호의적인 지역은 아니었는데, 왜냐하면 캐나다 정치가 오랜 기간 인구가 몰려있는 동부의 [[온타리오주|온타리오]] 및 [[퀘벡주|퀘벡]]의 입김에 의해 사실상 좌지우지되는 경향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인지 BC주는 온타리오나 퀘벡주에 묘한 라이벌 의식도 가지고 있다. 정확하게는 동부의 두 주가 대체로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 대해 관심이 별로 없는 데 비해(...) BC주에서는 특히 온타리오 주에 대한 묘한 경쟁심리가 있으며, 퀘벡과는 거리감을 느끼는 편이다.] 특히, 21세기 기준으로는 연방정부의 이중국어 정책에 불만 여론이 있다. 주 정부 이하 모든 공적 기구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불어]]를 혼용하는 [[온타리오]] 주와 비교하여 BC 주에서는 연방정부 수준에서만 이중국어가 사용되고 실생활에서는 일부 공무원, [[승무원]], [[프랑스어]] 교사나 호텔 등 관광지 외에서는 잘 쓰지 않는다.[* 연방정부 공무원으로 임용되려면 [[프랑스어|불어]]도 어느정도 할 줄 알아야 된다. 그래서 아이들의 프랑스어 교육 역시 의무적이지만(모든 학교가 강제적으로 하는지 여부는 확인 필요), 한국의 [[영어 교육]]마냥 실생활에선 잘 쓰이지 않는 편이다. --오히려 밴쿠버에서는 [[광동어]]가 더 많이 들린다.-- 다만 그럼에도 프랑스어가 캐나다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점은 상당수 BC주 사람들도 인정하고 있다.[[http://www.koreadaily.com/news/read.asp?art_id=3879533|#]]] 허나 BC 주가 동부 지역에 그렇게 호의적으로 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캐나다 보수당|보수당]]에도 냉담한 성향이 생기게 된 이유 중 하나엔 역사적인 맥락도 존재한다. 일단 캐나다 연방은 [[온타리오주|온타리오]]와 [[퀘벡주|퀘벡]]을 기점으로 시작되었고 연방정치 대부분이 동부의 사정에 치중되어 왔으며, 이런 가운데 당연히 BC주는 연방 정치에 큰 목소리를 낼 수 없었다. 그런데 1900년대 보수 야당이었던 [[캐나다 진보보수당]]이 당시 집권 여당인 [[캐나다 자유당|자유당]]이 [[영국]]과 멀어지고 [[미국]], [[프랑스]]에 신경을 쓴다고 문제를 제기하면서 브리티시컬럼비아 주에서는 불만을 갖게 된다. [[20세기]] 초반 브리티시컬럼비아는 [[미국]] [[워싱턴주|워싱턴 주]]와의 무역에 의존해 왔는데 당시 진보보수당은 [[친영]] 정책을 펼치고 있었고, 캐나다에 위협이 된다고 본 [[미국]]과는 거리를 두고 있었다. 반면 자유당 [[윌프리드 로리에|로리에]] 정부는 [[캐나다]]가 [[영국]]과 가까워야 한다는 것은 인정하지만 [[미국]]과의 무역에 친화적인 입장이었고, 캐나다 자체의 자립 정책을 지지했다. 그리고 BC 주 역시 이런 로리에 정부 경제 정책의 덕을 입고 있었기에, 당시 진보보수당의 [[친영]] 정책보다는 로리에의 [[친미]] 혹은 [[자립]] 정책을 더 선호했다. 그러다보니 이후 진보보수당이 [[윌프리드 로리에]]로부터 정권을 탈환하고 [[친영]] 정치인인 로버트 보든을 내세운 이후부터, BC주에서 [[캐나다 보수당|보수당]]은 점차 세를 잃어가게 되었다. [[1900년대]]에는 BC 보수당이 다수당이 된 적도 있었지만 1910년대부턴 세가 줄어들기 시작해 특히 1950년대부턴 최대 4석 수준으로 거의 씨가 말라버리고, 1979년 선거부터는 그마저도 아예 없어지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