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블라디미르-수즈달 (문단 편집) == 건국과 발전 ==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의 기원은 1108년, 키예프 대공 프세볼로트 1세 의 아들이자 나중에 키예프의 대공이 될 페레야슬라프의 공작인 블라디미르 모노마흐가 아들 유리 돌고루키에게 [[로스토프 벨리키|로스토프]]와 그 인근 영지를 주면서 시작되었다. 그는 1121년, 그가 받은 영지의 수도를 수즈달로 옮겼고 로스토프-수즈달로 불리게 된다. 당시 [[키예프 대공국]]은 [[류리크 왕조]] 일원에게 분할상속 된 여러 [[루스]] 공국을 휘하에 거느리고 있는 대공국이었다. 키예프의 대공은 다른 공국들의 공작들 위에 군림하는 존재여서 키예프의 대공이 되기 위해서 다른 루스 공국의 공작들은 키예프를 점령하여 키예프의 대공이 되었고 그 키예프를 다른 공작이 점령하여 키에프의 대공 자리를 뺏는 식이 되었다. 유리 돌고루키도 키예프를 점령해 키에프의 대공이 되었다. [[1157년]], 유리의 아들인 안드레이 1세는 로스토프-수즈달 공국의 공작이 되었고 수도를 [[블라디미르]]로 옮겼고 이것을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의 시작으로 본다. 그는 군사적으로 키예프를 점령해 키예프의 대공이 되었다. 안드레이 1세의 동생인 브세볼로트 3세(Всеволод Юрьевич Большое Гнездо)는 자식을 많이 낳아 대둥지(The Big Nest)라는 별명으로 불린 공작이었다. 그도 키예프의 대공이 되었고 공국의 영역을 넓히고 발전시켰다. [[1212년]] 브세볼로트가 죽자 그의 아들 중 한 명인 유리 2세(Ю́рий–II)가 대공직을 계승하게 된다. 당시 [[키예프 대공국]]은 위에서 본 류리크 가문 친척 공작끼리 뺏고 빼앗는 대공 자리 때문에 휘하 공국에 대한 키예프의 통제력이 약해져 원래 분할상속 된 [[랴잔]], [[노브고로드 공국]], [[스몰렌스크]] 등 여러 공국들로 분열되고 있었는데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도 그중 하나였다. [[1235년]] [[몽골 제국]]이 러시아 동북지역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였다. 공국의 예상과는 다르게 [[불가르 칸국|볼가 불가르]][* 당시 서남쪽으로 이동하지 않고 볼가강 유역에 남아있던 불가르족 유목민.]가 몽골에게 허무하게 함락당하고 [[1237년]]에는 라쟌 공국마저 손에 넣게 되었다. 이후 몽골군이 블라디미르-수즈달 공국에 침입하자 유리 2세는 신하들과 함께 맹렬히 싸웠으나 [[1238년]] 시트 강 전투에서 전사하였다. 유리 사후 대공직은 그의 동생인 야로슬라프 2세(Ярослав Всеволодович)가 맡게 되었다. 공작에 즉위한 그는 몽골 제국의 신하를 자처함으로써 공국의 안전을 도모하였다. 그는 블라디미르를 재건하기 위해 노력하였으나 몽골군의 잦은 침입으로 불가능하였고 러시아 지역의 주도권은 상대적으로 피해가 적었던 모스크바와 노브고로드가 쥐게 되었다. [[1240년]]에는 키예프가 몽골에게 크게 함락되었고 이로써 몽골은 러시아 동북지역을 종속시키는 데 성공하였으며 블라디미르-수즈달을 포함한 루스 공국들은 몽골의 속국이나 다를 바 없게 되어 몽골에 공물을 바치는 처지가 되었다. [[1252년]] 야로슬라프의 아들인 [[알렉산드르 넵스키]](Александр Ярославич Невский)가 블라디미르의 대공이 되었다. 그는 이미 노브고로드와 키예프의 대공이었고 블라디미르 대공 즉위 이전인 [[1240년]]에는 네바 강에서 스웨덴을 격파하고 [[페이푸스 호]]에서 [[튜튼 기사단]]을 상대로 승리를 거두고[* 네바 강 전투에서의 승리로 그는 넵스키(Невский)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고 러시아의 국민적인 영웅이 되었다.] 대공 즉위 이후에는 러시아 공국들의 종주국인 몽골과 유화 정책을 펴 공국을 안정시켰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