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블뤼허(순양함) (문단 편집) == 함생 == [[노르웨이]] 침공 당시 [[오슬로]] 점령을 위한 상륙작전의 공격전단의 [[기함]]으로, [[해군]][[중장]] 오스카 쿠메츠 [[제독]]이 지휘하에 [[도이칠란트급 장갑함]] [[뤼초]](Lützow)와 [[엠덴급 경순양함]] [[엠덴]]을 포함한 여러 척의 [[구축함]]들로 구성되었고 상륙작전을 맡기 위해 이들 함정들에 분승한 육군 산악부대원들과 함께 기동중이었다.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Senkingen_av_Bl%C3%BCcher_%285654566265%29.jp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German_soldiers_and_Bl%C3%BCcher_sinking.jpg]] 상륙군을 내리기 위해서 반격의 위험이 있는 협곡으로 접근하던 전단의 선두에 있던 엠덴이 기뢰로 피해를 입었고 지체되는 사이에 새벽 5시 21분에 블뤼허는 [[노르웨이 해군]]의 오스카보리 요새에서 발포한 280mm [[해안포]](크룹사 28 cm MRK L/35)[* '''1893년'''에 오스카보리 요새를 현대화하면서 '''독일제국'''으로부터 구입해 배치해두었던 것이다.]에 피탄되고, 요새의 어뢰발사대로부터 [[어뢰]] (당시로도 40년 묵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산 어뢰)두 발까지 피격당하며 2시간 정도 뒤인 7시 23분에 완전히 전복되어 취역 6개월 만에 침몰하고 말았다.[* 해안포대의 사거리 밖으로 벗어나는 것까지는 성공했으나, 화재를 진압하지 못하는 바람에 기관부에 인접해 있던 105mm 포탄 탄약고 중 하나가 폭발하며 기관부의 여러 격벽들을 파손시켰고, 또한 연료탱크에도 화재가 번지는 바람에 결국 퇴함 명령을 내려야 했다.] 이때의 거리가 육안으로도 관측 가능한 1.8km 정도에다가 벼랑위에 있었기에 충분한 공격이 가능했다. 하지만 해안포와 어뢰는 당시 기준으로도 1차 대전 수준으로 구식이었다. [* 위에도 있듯 19세기 말에 요새 현대화를 하면서 도입한 물건이었다.] 승조원 일부와 산악부대원 대다수가 배에서 난 화재로 탈출하지 못하고 타죽거나 익사했으며, 쿠메츠 제독 등 생존자들은 노르웨이가 항복할 때까지 포로가 되었다. 당연히 [[아돌프 히틀러]]는 이 사실을 듣곤 무척 화를 냈다고 한다. 이 격침은 노르웨이인들에게는 대단한 [[자부심]]으로 남아 있으며,[* 대한민국으로 따지자면 거의 [[용문산 전투]]나 [[백마고지 전투]]급의 위상이다.] 로이 칸이 노르웨이인인 파워메탈 밴드 [[카멜롯]]의 최신 앨범 Ghost Opera의 곡들 중 하나로 수록되었다. 블뤼허의 선체는 전쟁이 끝난 뒤에도 그대로 방치되었다. 1953년에 [[스크류]]를 철거했고 1963년에 항해의 안전을 위해 일부 구조물을 철거했다. 격침 당시 싣고 있던 연료가 그대로 남아 있어서 이것이 조금씩 새서 주변 환경을 오염시킬 위험이 있자 1994년 10월에 약 1000톤의 기름을 수거했다. 연료 수거 과정에서 함재기인 아라도 [[Ar 196]] [[정찰기]] 1대를 건졌으며 이는 [[솔라 스타방에르 공항]](Stavanger)에 있는 항공기 [[박물관]]인 Flyhistorisk Museum에 복원, 전시했다. 나머지 선체는 그대로 해저에 남겨둔 상태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