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간 (문단 편집) == 개요 == '''比干''' > 微子去之, 箕子爲之奴, 比干諫而死. 孔子曰 "殷有三仁焉" > 은나라 말에 [[미자계|미자]]는 떠나고 [[기자(중국)|기자]]는 종이 되고 비간은 간하다가 죽었다. [[공자]]께서는 (그들을 두고) 말씀하셨다. "'''은나라(말기)에 사람다웠던 자(仁)가 세 명이 있었지.'''" > ----- > [[논어]] 미자편1장 [[상나라]]의 신하로 상의 27대 왕인 [[문정(상)|문정]]의 아들이며, 상의 마지막 군주인 [[제신|주왕]]에게는 숙부뻘이 된다. 주왕의 폭정을 보다 못해 간언하며 물러서지 않았고, 폭군 주왕에게 살해 위협을 받으면서도 계속 잘못을 간하다가 "'''규범을 무시하시고 아녀자 말만 들으시니 재앙이 올 것입니다.'''"라는 말에 짜증이 난 주왕이 "'''듣자 듣자 하니까 성인의 심장엔 7개의 구멍이 뚫려 있다던데 한 번 확인 좀 해보자'''"[* 7개는 정상보다 하나가 적은 심장이다. 정상인은 폐정맥 4개, 폐동맥 1개, 대동맥 1개, 대정맥 2개로 8개이며, 만약 폐정맥 2개가 서로 붙어 있는 경우에 구멍이 7개이다.]며 그 자리에서 가슴을 갈라 [[심장]]을 뽑아내는 참혹한 형벌로 죽였다. 이를 옆에서 [[달기]]가 부추겼다고도 한다. '[[충신]]'이라는 단어가 호칭처럼 불릴 정도며 항목 내에서도 시기상 가장 빠른 인물. [[주무왕]]이 상을 멸망시킨 뒤 비간(比干)의 무덤에 흙을 더 쌓아 봉분 높이를 높여주었다고 한다. [[구당서]]에 따르면 [[당중종]]이 복위한 뒤인 신룡(神龍) 2년([[706년]]) 3월에 무당현승(武當縣丞) 주경(周憬)이 [[위황후]]와 간통하던 무삼사를 죽이려는 부마 왕동교(王同晈)의 모의에 가담했다가 실패하고, 비간의 사당으로 달아나서 "비간은 충신이다. 그의 영혼이 내가 충을 위해 죽는다는 것을 증명해 줄 것이다."라며 사당 안에서 자결했다고 한다. [[원나라]] 시기 인현충렬공(仁顯忠烈公)에 추봉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