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날론 (문단 편집) === 대 흑역사 -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 그렇게 북한 높으신 분의 지시에 따라 기존 함흥에 있던 [[2.8 비날론연합기업소]]의 2배 규모나 되는 [[평안남도]] [[순천시(평안남도)|순천시]]의 [[순천화학연합기업소|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를 1983년 4월부터 건설하면서 경제성 없는 양산화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북한 정부는 이 공장이 완공되면 400여 가지 화학제품 생산이 가능해 [[경공업]] 발전의 토대가 되어 [[이밥에 고깃국]]을 먹을 수 있다는 기대를 하고 있었지만 [[현실은 시궁창]]이었으니 경제사정악화와 전력난, 자재부족문제로 이 공장은 결국 1989년 1단계 공사를 끝낸 뒤에 건설이 중단되면서 거대한 고철더미로 전락하였다. 김일성이 승인했다는 이유로 겨우 실험실 규모에서만 성공시킨 산소열법의 공법을 수많은 과학자의 반대를 묵살하면서까지 무리하게 대형 공업화한 것이 대실패의 원인이게 되었다. 하지만 이미 매몰비용만으로도 3대 흑역사 가운데 가장 큰 100억 달러를 소비하였으며 아무리 경제성보다 사상을 앞세우는 북한이라고 할지라도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는 타격이었다. 노동집약적증산을 위해서 산을 무리하게 개간하면서 전력난과 연료난으로 역시 산을 무분별하게 벌목하는 바람에 1990년대 들어서는 [[민둥산]]에 대홍수가 끊이지 않게 되자 그나마 돌아가던 기존 비날론 생산도 연이은 대홍수로 석탄 가격을 감당하지 못해 1994년에 이르면 모두 중지되었을 정도이며 건설이 중단된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 안의 설비들은 1990년대 [[고난의 행군]] 기간부터 중국에 고철로 몰래 판매가 되었다.(…). 리승기 박사는 상당히 오랜 시간이 흐른 1996년 2월 8일에 사망하였으며 향년 90세이다.[* 정말 비참한 것이, 자신의 가장 큰 업적이었던 비날론이 북한을 대차게 말아먹는 것(...)에 크게 일조한 것과 자신이 등진 남한이 북한과는 [[한강의 기적|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성장한 것]]까지 전부 보고 죽은 것이다. 게다가 리승기 본인은 비날론 공장의 대규모 건설을 반대하는 입장이었다는 탈북 과학자의 증언도 있으며 더욱 안습이다. 또한 리승기는 석탄화학뿐만 아니라 석유화학의 중요성도 제기하였지만 주체과학 때문에 묻히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