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날론 (문단 편집) === 부활? === [[파일:external/blog.donga.com/201003091413270.jpg]] --뱀 허물-- 리승기가 사망하기 직전인 90년대 비날론은 북한에서도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었다. 김일성의 경제 브레인으로 김정일의 눈엣가시였던 부총리이자 국가계획위원회 위원장 [[김달현]]의 운명은 비날론의 역사에서 상징성이 있다. 그는 이미 김일성 생전인 1993년 국가계획위원장에서 해임되고 김일성 사후엔 부총리에서까지 밀려나 2.8비날론연합기업소 지배인으로 좌천되었다. 한동안은 복권설이 돌았으나, 죽기 전까지 함경남도 인민위원회 참사로 머물렀다. 그것도 모자라 자력갱생 정책의 추진자인 [[연형묵]][* 사실 연형묵 역시 권력이 김정일에게로 넘어간 1993년 총리에서 해임되어 자강도당 책임비서로 격하되었으나 [[선군정치]]와 군수공장으로 부활해 90년대 후반에는 노력영웅으로 복권했다.]을 검열단장으로 보냈는데, 김달현이 2000년에 죽은 것은 그를 두려워해 자살했다는 말 까지 있었다.[* 국정원까지 파악한 원인은 지병인 심장병이었다.] 비날론 공장의 최고 책임자가 이런 형편이니 비날론공장 역시 제대로 돌아갈 리 없었고, 김달현이 죽은 2000년에 공장은 가동을 중단한다. 2007년에는 [[김정일]]이 비날론 재건을 지시해 2010년 2·8비날론연합기업소가 2000년 이후 10년 만에 '''재가동에 들어갔다.''' 선전에 따르면 김정일은 인민들 입을 걱정이 없어졌다고 눈물을 흘렸다고 하며(...) "새로운 [[원자탄]]을 쏜 것과 같은 특대형 사변[* 사변이란 부정적 의미의 단어지만 북한에서는 60년대 이후로 긍정적 의미로 쓰이기도 한다. [[사변]] 참조.]이고 사회주의의 대승리"(...)라고 한다. 2010년대인 지금도 "주체섬유"란 이름으로 [[CNC]] 등과 북한 공업의 핵심으로 주장되고 있다(...). 비날론은 김정일이 주도한 실패작이다. 결국 이런 지시는 실제로 경제 개발이나 인민의 삶에 생각이 있기보다는 "변화는 없다. 개방은 없다."라는 상징적인 태도라는 것이다. 이를 이어받은 [[김정은]] 역시 마찬가지. 물론 순천비날론연합기업소는 손도 못 대고, 결국 고철 상태로 방치 되다가 철거된 것으로 추정된다. [[파일:external/www.rfa.org/Sunchon_vinalon_section1_305.jpg]] [[http://www.rfa.org/korean/weekly_program/radio-world/radioworld-06102011153933.html|2009년 5월, 인공위성이 촬영한 '순천 비날론연합기업소'의 사진을 2004년에 촬영한 모습과 비교해보면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철거하는데만 20년 가깝게 걸렸다.-- 그런데 북한 정권은 여전히 비날론에 미련을 못버려서(...) 석탄가스화를 통해 에틸렌을 직접 수급 할 수 있게 되면서 새로운 지평이 열렸다고 우기고 있다. 기존의 연료먹는 하마였던 무연탄과 석회석에서 카바이드를 얻는 공정을 생략하고 에틸렌→아세트알데히드→아세트산→아세트산비닐→폴리아세트산비닐→폴리비닐알콜→비날론 의 과정을 거쳐 비날론을 합성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북한 매체는 이와 같은 에너지 절약형 공법으로 비날론 공업부문에서 사용되던 전력을 9만8천kW에서 1만3천kW로 끌어 내리는데 성공하여, 약 70%까지 절약하는데 성공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출처: 탄소하나화학공업과 인민생활] 하지만 애당초 실용성이 없던 비날론을, 각종 제재로 위기에 놓인 북한에서 에너지 절약 공법으로 생산을 한들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