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데 (문단 편집) == 역사 == 비데의 어원은 15세기 처음 등장하며 비데(bidet)라는 말은 당시 [[프랑스어]]([[고어]])로 [[조랑말]]을 가리키는 단어였다.[* 고대 그리스어로 '여성이 뒷물하다'를 뜻하는 단어에서 왔다는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7060910223225837|설]]도 있다.] 위생용품으로써의 비데는 17세기 말엽에 정착한 것으로 보이며 안장 모양의 물양동이에 올라탄 모습이 조랑말에 올라탄 모습과 같다고 비데라는 단어를 [[https://news.mt.co.kr/mtview.php?no=2017060910223225837|차용]]한 것으로 보인다. 비데의 기원에 대해선 학자들간에 의견이 분분한데 크게 11~13세기 [[치질]]에 시달리던 십자군이 원정에서 돌아오면서 발생했다는 설과, 18세기 초 [[프랑스]] 왕가 ([[루이 14세]])에서 신개념의 위생용품을 발주하면서 발생했다는 두 가지 설로 나뉘고 있다. 십자군이 말을 타고 장거리 이동을 하며 치질이 많이 발생해 고생을 했는데 [[치질]] 환자들이 뒤 닦는 고통을 완화하기 위해 물을 사용했을 거라는 가정이다. (이 아이디어 탄생에는 중동의 물사용 문화의 영향도 받았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 왕가가 개발의뢰 하면서 발생했다 설은 제작인 부분에서 묘연한데 크리스토퍼 로시어스(Christophe Des Rosiers)라는 왕실납품업자에게 의뢰해 1710년 발주했다는 설을 지지할때 해당 자료 보충이 필요하다. 최초 개발자가 정확히 누구인지는 불분명하나 이 시기 프랑스를 통해 유럽에 퍼지기 시작한것은 학계에서 공통으로 인정된 상태며, 귀족문화로써 자연전파 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외 루이 14세 시절 부터 왕궁을 드나들던 생 시몽의 회고록에도 언급된다고 하는데 확인 요망) 좀더 구체적으로 언급되는것은 이후 1726년 마리아 카롤리나 폰 외스터라이히(Maria Carolina d'Asburgo-Lorena) 왕비가 발주한 자료이며 두 사건의 간격으로 보아 비데가 상류층에 빠르게 퍼저 정착된걸 짐작할 수 있다. [[https://cdn.theatlantic.com/thumbor/JR260vLLrRXcjqavsZyNfjF_kSE=/439x0:1564x1125/540x540/media/img/mt/2018/03/bidetgraphic/original.jpg|과거 비데의 사용 예시. 이 그림은 18세기 후반~19세기 초반 그려진 그림이다.]] 1750년대 중반 핸드 비데(bidet à seringue) 라고 불리는 저압 핸드 펌프식 미니 비데가 있었다는 언급이 있으나 실물은 없다. [[https://ae01.alicdn.com/kf/Hb8adc43400fe43c4aa90ae98ac95d9b4v/Wethings-Douche-anale-ampoule-lava-Portable-Bidet-buse-de-saucisse-seringue-Bidet-Douche-Shattaf-Ducha-Douche.jpg_Q90.jpg_.webp| 이것과 비슷한 물건이였을거라 예상되는데 침실에서 쓰는 성위생 전용 물건으로 짐작된다.]] 초기 비데는 침실이나 일반실에 주로 설치 되었으며 대변 후 세척전용보단 포괄적 개인 위생세면 도구로써 손세척, 부인병 예방, 피임 목적의 음부 세척, 항문세척 등 1가지 목적 이상으로 두루 쓰인걸로 보인다. 이후의 좀더 자세한 기록들을 보면 비데는 특히 귀족 부인들의 에티켓 용도로 대활약 했으며 여러 용도로 쓰인게 확인된다. 오늘날 비데가 대변후 항문 세척용으로만 주로 사용하는 것과는 많이 다른걸 알수 있는데 여성들에게 유독 사랑받는 제품이라는 점은 예나 지금이나 같았다는게 재미있다. 다만 대활약했다고 해도 어디까지나 상류층에게만 해당하는 이야기로 그래도 비데는 귀족들의 상류 에티켓으로 머물고 있었는데, 하인을 두는 화장실 문화, 침실 물세정 여건 등이 당시 상류층만 가능했으므로 비데 또한 동류로써 귀속되어 향유 된 것. 시간이 흐를수록 귀족의 입맛에 맞춘 비데의 고급화는 혀를 내두를 정도가 된다. 화려한 수입자기로 만든 비데는 물론이고 황금 비데도 있을 정도였고 나폴레옹도 은박을 씌운 전용 비데를 즐겨 썼다. 수세기간 구조적으론 길죽한 물양동이 혹은 물양동이가 결합된 의자에 불과했던 원시 비데가 변화를 맞이한 건 19세기에 들어서다. 수도 배관의 전국 시설과 함께 배관 비데가 등장하게 된다. 이제 일일이 물을 떠나를 필요가 없이 집안까지 연결된 수도로 물을 받을 수 있게 된 것. 다만 그 뿐으로 다른 부분은 기존과 똑같다. 1908년엔 최초로 수동식 고수압 비데가 등장한다. 아코디언처럼 생긴 물주머니를 손으로 압착하면 수동으로 물줄기가 뿜어져 나오는 수압을 이용하는 첫 형태였지만 사용이 불편하고 비싸서 대중 시장에 정착하지 못했다. 비슷한 시기 주사기가 결합된 의료용 피임 비데인 일리게이터(Irrigator)도 등장했는데 물주사기를 질 안에 쏘아 정액을 닦는 피임목적의 유사 의료기기였다. 물론 피임 효과는 전무했다. 일리게이터 같은 제품이 나온 이유는 비데들은 하체 세정보단 피임의 용도로써 이미지가 더 강해 부인용품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인데 비데의 주 수요 중 하나를 극대화한 게 일리게이터였던 것. 이런 비데의 이미지 덕분에 서구의 일부 지식, 문학, 종교계 사이에서 수시로 비난의 표적이 되었다. 당시에 콘돔 등의 본격 피임 도구들이 두루 있었음에도 유독 비데가 비난을 받은 것은 여성 피임용으로써 이미지가 강했고, 여성에게 특히 바른 몸가짐을 요구하던 사회적 분위기가 영향을 많이 미친것으로 보인다. 미국인 하비 몰로치는 비데가 [[프랑스]]를 쾌락과 섹슈얼주의로 더럽혔다라고 논평했을 정도인데 이때가 아주 옛날도 아니고 불과 1936년이였다. 이후 유럽 시장을 장악하는 새로운 형태의 근대 기계식 비데가 유럽에서 등장한다. 벽에 연결된 수도관에 1자형 수도꼭지를 설치해 여기에 [[볼기|엉덩이]]를 들이대거나 손으로 물을 적셔 닦고 오염된 물은 따로 버릴 필요 없이 하수도에 바로 연결해 내리기만 하면 되는 형태로 시공이 단순하고 저렴한데다 사용도 편해 소득 구분없이 대중화에 성공한다. 이때 [[항문]] 세척 용도로써 쓰임새가 완전히 정착되기 시작하였으며, 설치 공간도 [[욕실]]에서 [[화장실]]로 옮겨가 [[변기]] 옆에 나란히 만드는 방식으로 정석화 되며 훗날 유럽식 (기계)비데로 불리게 된다. [[https://cdnweb01.wikitree.co.kr/webdata/editor/201809/18/img_20180918190553_8fabe2e5.jpg|관련 사진(후방주의)]] 그 외에 비데 열풍에 힘입어 수도꼭지를 바닥에 설치해 분수 처럼 뿜는 등 다양한 제품들이 쏟아졌지만 설치 여건과 비용 때문에 인기는 그다지 없었고 위의 언급된 독보적인 모델에 밀려서 시장장악은 실패했다. 1928년 미국 의사이자 발명가인 존 하비 켈로그가 물을 노즐로 분사하는 비데에 대한 특허를 신청했다. 하지만 이때에도 여전히 주류제품들은 변기와 비데는 분리된 형태였는데 1960년 미국에서 '아메리칸 시츠배스'(American Sitzbath)라는 일체형 비데가 나오며 최초로 변기와 결합된다. 이 제품은 온풍을 같이 쏘아서 물을 건조시키는 기능도 있었다. 미국에서 병원을 상대로 수백개의 납품을 하는 등 초기에 선방했으나 이 제품 태생이 치질 환자를 위한 병원 설치를 목적으로 한 의료기기였으므로 값이 비싸고 마케팅이 어려웠으며 설치가 불편한데다 시장도 작고 설상가상으로 우리가 아는 비데와 많이 달라 환자들의 이용도 쉽지 않은 등 어려모로 난관에 봉착했다. 이런 이유로 미국에서 대실패를 하고 일본의 동양도기([[토토#s-3|TOTO]])에게 해당 제품의 라이센스를 포함해 권리 일체를 넘기게 된다. TOTO는 이 제품을 1964년 인수해 일본에서 'Wash Air Seat'로 이름을 바꾸고 마케팅을 활발하게 했으나 역시 제품의 한계 때문에 똑같이 손해를 겪고 사업을 접게 된다. 당시 TOTO는 위생도기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유통 및 시공까지 하고 있었으므로 판촉이나 기타 문제보단 제품의 자체의 낮은 완성도가 사업실패의 원인으로 해석된다. 비슷한 시기 라이벌 회사였던 이나제도(伊那製陶)[* 1985년 '이낙스'(inax)로 사명을 변경했다가 2011년 창호 제조 회사인 TOSTEM 등과 합병하여 LIXIL이 되었다.]에서 미투 제품을 만들었으나 역시 실패했다. 그러나 TOTO는 전자식 비데 사업이 언젠가는 성공할 것이란 확신을 완전히 접지 않았고, 1980년 '워시렛'을 선보여 대중화에 마침내 성공했다.([[https://www.toto.com/en/washlethistory/|관련 사진]]) 오랜 세월 연구한 만큼 그냥 대충 전자식만 결합해 출시 한게 아니라 다기능 가변 노즐, 자동청소, 기존 변기에 올리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설치와 대폭 낮아진 가격, 각종 편의 기능, 온수 기능, 건식/습식 양쪽 환경에 맞게 개발하는 등 오늘날의 전자식 비데의 완성형을 첫 출시 제품에서 부터 구현해 대히트를 친다. 완성도가 어느정도냐면 40년전 당시 제품과 오늘날 신제품의 하드웨어적 기능 차이가 크게 없다. 또한 [[토가와 준]]을 모델로 선보인 파격적인 TV 광고도 성공 요인으로 작용했다. 이후 이나제도, 나쇼날(現 파나소닉) 등에서도 비슷한 상품을 출시하며 10년도 채 되지 않아 일본 내에서 전자식 비데가 전국적으로 보급됐다. 특히 생활위생제품으로써 새 패러다임을 구축하고 고급화에 성공하여 항문 세정에 대해 비판적이거나 항문 세척 개념이 없던 잠재 소비자들에게 어필, 이들을 신규 고객으로 끌어들임으로써 시장 자체의 규모를 폭발적으로 성장시키는 등 혼자서 북치고 장구치며 세계 시장을 장악하게 된다.(출시부터 2021년 기준 연속 세계 1위) 1990년대 말~ 2000년 즈음해서 핸드 비데 혹은 비데 샤워(Bidet shower)로 불리는 요상한 물건이 등장했는데 언제부터 누가 만든건지 알 수는 없지만. 미국에 거주하는 태국인이 싱크대에 달려 있는 채소 세척기를 개조해 변기에 다는 작업을 하면서 제품화 된것으로 추정된다. 특허도 없는지 전세계로 금방 퍼졌으며 간편한 시공과 초저가 가격 덕에 특히 중동과 동남아시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 [[https://aecnewstoday.com/2018/and-now-a-movie-about-the-humble-bum-gun|추정 자료]]. 여러 대륙에 퍼진 상황으로 지역에 따라서 hand bidet, Hand-Held Bidet Sprayers, shattaf, portable bidet 등 다양하게 부르지만 노즐, 부가 기능, 변기에 붙었냐 샤워기에 붙었냐 차이 일뿐 원리는 대동소이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