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비렌드라 (문단 편집) == 평가 == 아이러니하게도 비렌드라는 네팔 샤 왕조의 개창자인 [[프리트비 나라얀]] 이후로 '''가장 유능한 왕'''이었다. 부친 마헨드라 국왕이 절대왕정 독재를 수립하고 불러일으킨 네팔 정국의 혼란을 수습하고 나름 안정적인 정치체제를 구축했으며 시대의 흐름을 읽고 절대왕정을 포기할 줄도 아는 왕이었다. 그러나 '''아들''' 디펜드라의 폭주로 비렌드라는 사망했고 결국 네팔 샤 왕조는 무너지고 말았다. 나름 안정적으로 굴러가고 있던 네팔 정국도 비렌드라 사후 '''동생''' 갸넨드라가 시대를 거스르는 절대왕정으로 회귀하면서 왕조가 폐지되는 사태가 되어버렸던 것이다. '''네팔 최고의 명군이었지만 아들과 동생을 잘못 두었다.''' 군주제가 폐지된 현재에도 비렌드라에 대한 평은 매우 좋고 그리움의 대상이 되고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에 대한 부정적 시선도 존재한다. 일설에는 그가 말기에 이르러 민간정부가 무능하고 왕실 내에서 자신의 권위가 위축되는 가운데 마오이스트 반군들이 크게 세를 떨치게 되자 이를 기회로 다당제를 정지하고 전제군주정으로 회귀하려 한 게 아니냐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 주장에 따르면 마오이스트 반군을 제압하면서 동시에 무능한 민간정부도 타도하고 비렌드라 자신이 직접 국가를 통치하려 했던 게 아니었냐는 것. 물론 비렌드라가 샤 왕조 내에서는 가장 민주주의에 우호적인 인물이었지만 아이러니 하게도 비렌드라 말고는 민주주의에 우호적인 왕실 사람들이 없었기 때문에[* 어머니 인드라도 남편 마헨드라의 절대왕정 체제를 수호하기를 바랬고 부인은 물론 남동생까지도 왕권을 이양하는 것에 부정적이었다고 한다.] 자칫 잘못하면 왕위를 찬탈당할수도 있어서 이런 생각을 품고 있지 않았냐는 의혹을 제기하는 시선도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