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비틀즈 (문단 편집) === 비틀즈 관계자들 === ※ 위에서 조금밖에 언급되지 않은 서트클리프와 베스트, 매니저 엡스타인, 그리고 기타 인물들에 대해선 요약해서 여기에 적어주시기 바랍니다. * [[스튜어트 서트클리프]] - 비틀즈의 전 베이시스트. * 아스트리드 키르헤 - 스튜어트의 애인이자, 비틀즈의 초기 모습을 찍었던 사진가. * [[피트 베스트]] - 비틀즈의 전 드러머. * [[브라이언 엡스타인]] - [[1967년]]까지 비틀즈의 매니저. * [[앨런 클라인]] - 브라이언 엡스타인 사후 비틀즈의 매니저. 비틀즈의 해체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져있다. 보통 사람들은 [[오노 요코]]가 비틀즈 해체의 주요 원인으로 지목하나, 비틀즈의 팬들은 입을 모아 앨런 클라인을 가장 큰 이유라고 언급한다.[* 물론 이 외에도 많은 문제가 있었다. 폴 매카트니의 독재, 밴드 내 싸움으로 지친 링고 스타, 레논-매카트니에 밀려 자기 곡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던 조지, 점점 달라졌던 존과 폴의 음악 세계, 헤로인 중독에 빠진 존과 요코 등이 원인으로 꼽힌다. 그러나 그중 가장 큰 원인이 [[브라이언 엡스타인]]의 사망과 그로 인한 후임 매니저 선임 과정에 있다는 것은 대부분의 팬들이 부정하지 않는다.] 기존 매니저였던 [[브라이언 엡스타인]]이 사망한 이후, 돈을 제대로 만져본적도 없던 비틀즈 멤버들이 너무나도 많은 돈을 잃자, 새로 매니저를 선임해 재산 관리를 하게하자고 합의했다. 그런데 폴을 제외한 나머지 멤버들이 앨런 클라인을, 폴 매카트니가 리 이스트먼[* 폴의 아내인 [[린다 매카트니]]의 아버지, 즉 폴 매카트니의 장인이다.]을 새 매니저로 지지하면서 곯아있던 밴드 멤버간의 갈등이 폭발하였다. * [[오노 요코]] - 존 레논의 부인. 일본계 전위예술가. 비틀즈 말기 녹음까지 관연하고 존 레논과 함께 음반까지 발표. 존 레논이 밴드 활동보다는 좌파운동 등 정치적인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만드는데 영향을 미쳤고, 여기에 [[인종차별]]적인 편견이 덧붙여져 비틀즈 해체의 원흉으로 일컬어기도 하였다. 물론 어느 정도는 영향을 끼쳤겠지만, 그녀가 비틀즈 해체의 '''직접적인''' 원인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 [[패티 보이드]] - 모델. 조지 해리슨의 전 부인. [[에릭 클랩튼]]까지 포함된 3각관계가 유명. * [[린다 매카트니]] - 폴 매카트니의 아내로 비틀즈 해체 이후 매카트니와 함께 윙스의 멤버로 활동하였다. * [[조지 마틴]] - 프로듀서. Let It Be를 제외한 모든 비틀즈 음반을 프로듀스했다. * [[필 스펙터]] - 프로듀서. 'Let It Be' 음반에서 오케스트라 위주의 사운드를 만들었지만 폴 매카트니와 마찰이 심했다. 2000년대 들어서 폴 매카트니는 필 스펙터가 덧입힌 사운드를 모두 제거한 'Let It Be...Naked'라는 음반을 발매하였다. * [[빌리 프레스턴]] - Get Back 세션에 키보디스트로 참여했던 흑인 키보디스트. 원래 비틀즈 곡들의 키보드 연주 녹음은 주로 폴 매카트니가 맡았었지만, Get Back 세션에선 라이브 연주를 원했기 때문에 베이스기타를 연주해야 하는 폴 매카트니 대신 키보드를 연주할 세션맨이 필요해서 선택된 뮤지션이었다. 프레스턴의 키보드 연주에 만족한 비틀즈는 그를 세션맨 이상가는 대접을 해주어 싱글 Get back에서는 비틀즈와 함께 공동 뮤지션으로도 이름을 올려주었다. 이 뮤지션의 솔로 대표곡으로는 'Outa-Space', ‘Nothing from nothing’ 등이 있다. 훗날 링고 스타의 백밴드인 올스타밴드의 일원으로 링고 스타의 순회 공연에 자주 참여하기도 했다. * 글린 존스 - 프로듀서. 필 스펙터가 프로듀싱을 하기 전에 발매를 거부당했던 'Get Back'(Let It Be) 앨범의 프로듀싱을 맡았다. * 알란 파슨스 - 페퍼 상사 앨범의 사운드 엔지니어였다. 앨범에 표기는 안돼있지만 'White Album'과 'Abbey Road' 음반에도 참여하였다. 이런 중요한 명반들의 작업에서 얻는 노하우와 실력을 바탕으로 [[핑크 플로이드]]의 [[The Dark Side of the Moon]]에서 혁신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었고, [[알란 파슨스 프로젝트]]라는 독자적인 프로젝트 음악 활동도 하였다. * [[에릭 클랩튼]] - 조지 해리슨과 친구였다. 조지 해리슨이 작곡한 While My Guitar Gently Weeps에서 기타를 치기도 하였으며 Here Comes the Sun의 작곡의 동기부여를 하기도 했다. 그러나 패티 보이드라는 여자를 두고 개막장 사랑싸움을 벌인 적이 있다. * [[롤링 스톤즈]] - 비틀즈와 함께 60년대 락음악계의 쌍두마차. 언론에 의해 라이벌 관계가 부각됐었고 실제로도 서로 라이벌 의식도 어느 정도는 있었던 걸로 알려졌으나, 사적으론 꽤 친한 사이였다. 롤링스톤즈의 첫 [[히트곡]]인 [[I Wanna Be Your Man]]은 레논-매카트니가 써 준 곡이고, 그 후로도 서로의 레코딩에 게스트로 우정 참여하기도 했었다. * [[밥 딜런]] - 밥 딜런과 비틀즈는 서로 창조적인 영향을 주고 받은 사이였다. 원래는 어쿠스틱 포크 뮤지션이었던 밥 딜런은 비틀즈의 로큰롤 음악이 가진 활력에 매료되어 기존의 포크에 락을 접목시킨 포크락으로 음악 인생을 전환하게 된다. 비틀즈도 밥 딜런에 자극을 받아 자의식이 강하고 보다 깊이 있는 가사를 쓰기 시작한다. 마리화나도 밥 딜런이 선물로 준걸 계기로 접하게 된다. * [[브라이언 윌슨]] - [[비치 보이스]] 역시 비틀즈와 서로 창조적인 영향을 주고 받은 관계다. 특히 폴 매카트니와 [[브라이언 윌슨]]이 그러한 관계였다. 초창기엔 서프음악 전문이었던 비치 보이스는 비틀즈의 러버소울 앨범을 듣고 그 완성도와 예술성에 감명과 자극을 받아 자신들도 단순한 [[서프]]음악을 넘어선 그러한 명작을 만들어 보겠다고 작정하고 만든게 바로 명반 [[Pet Sounds]] 앨범이다. 이 앨범은 다시 비틀즈에 영향을 줘서, 폴 매카트니가 주도한 앨범인 Sgt. Pepper앨범의 사운드에 많은 영향을 주게 된다. 또한 비치 보이스의 불운의 명작 [[SMiLE]]에 관한 사연도 비틀즈와 얽힌 것이 많다. * 마하리시 - 비틀즈가 인도 여행을 하면서 만난 인물. 비틀즈는 명상을 통해 새로운 영감을 얻고 싶어 했지만, 마하리시는 이를 만족시키지 못했다. [[The Beatles]] 앨범의 Sexy Sadie는 마하라시를 까는 곡이다. 마하라시는 [[UV]]의 뮤직비디오에 나왔던 요기 다니엘의 스승이기도 했다. * 클라우스 부어만 - 함부르크 시절 만난 동료 뮤지션. [[Revolver]] 앨범 표지 드로잉이 이 사람의 그림이다. 비틀즈 해체 이후 존, 조지, 링고의 솔로 작업에도 참여했다. * 빌 해리 - 존 레논의 예술학교 친구로 'Mersey Beat'란 음악 잡지를 만들었다. 비틀즈에 대한 기사를 쓰기 위해 만든 잡지였고, 이걸 읽은 브라이언 엡스타인과 연결되어 비틀즈와의 만남을 주선했다. 비틀즈의 탄생과 해체를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모두 지켜본 증언자로서 비틀즈 관련 다큐멘터리나 영상에서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살아 있는 비틀즈 사전이다. 학교서 남들과 전혀 다른 차림새와 행동거지로 다니던 존 레논이 마음에 들어 친해졌다고 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