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빈공과 (문단 편집) == 중국의 빈공과 == [[당나라]]의 빈공과가 잘 알려져 있다. 당시 [[통일신라]]와 [[발해]]에는 과거제도가 없었다. 신라의 경우 [[원성왕]]대에 [[독서삼품과]]라는 시험이 시행되었지만 본격적인 과거 제도는 아니었고 출세의 한계가 명확했기에 당나라 유학을 택하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6두품]] 이하의 신라인은 [[골품제]]에 막혀 일정 이상의 출세가 불가능했으며 국제교류도 [[동아시아]]에서 유례없이 활발했던 시대였기 때문에 굉장히 많은 [[유학]]생이 [[황해]]를 건넜고, 일종의 [[코리아타운]]인 [[신라방]]의 주요 계층 중 하나가 유학생과 거기 딸려온 인력이었다. 빈공과에 급제해도 관직은 주어지지 않았다. 당나라 사람도 과거를 거치고 또 여러 면접을 거쳐야 비로소 관직을 받을까 말까였는데 외국인에게 줄 관직따위는 당연히 없었다. 대신 운이 좋다면 작위정도는 받을 수 있었고 빈공에 급제했다는 사실을 [[스펙]]으로 [[절도사]]나 지방관의 [[비서]]로 임용되거나 고향으로 돌아와서 대우를 받을 수 있었다. 한편 발해인이 당나라 빈공과에 응시한 사실은 [[동북공정]]의 반박자료로서의 가치도 있다. 발해인이 '외국인' 자격으로 시험을 보았다는 사실이 당나라와 다른 뿌리라는 근거이기 때문. 합격자의 약 80%가 신라인으로, [[신라]] 출신 급제자가 가장 많았다. 그 뒤를 발해, [[페르시아]] 등이 따랐다. [[최치원]]의 일화에서도 볼 수 있듯 발해 출신 유학생과 신라 출신 유학생간의 알력도 상당했다. 저 최치원은 신라 출신의 이동(李同)이 발해 출신의 [[오소도]](烏炤度)에게 수석을 뺏기자 국제망신이자 나라가 망할 징조라며 깠다. 한번은 발해에서 수석을 차지하자 신라에서 한 때 맞선 국가에 수석을 내주는 게 옳냐고 당나라에 따지기도 했다. 위 경쟁에는 후일담도 있다. 906년, 오소도의 아들 [[오광찬]](烏光贊)이 당나라의 빈공과에 합격하였으나, 석차가 신라의 [[최언위]](崔彦撝)보다 밑이었다. 마침 오소도가 당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이 사실을 알고 전에 자신이 이동보다 위였음을 상기시키면서 아들 오광찬이 최언위보다 위 석차에 놓이도록 요청하였다. 그러나 당나라 조정은 최언위의 재주와 학식이 오광찬보다 빼어남을 들어 허락하지 않았다. 앞에서 언급된 최언위와 함께 '[[신라3최]]'로 이름을 날렸던 [[최치원]], [[최승우]] 또한 당나라에서 시행한 빈공과 급제자 출신이다. 물론 모든 신라 유학생들이 전부 빈공과에 합격하는 건 아니었다. 합격하면 당나라에서 관리를 하면서 학문을 더 쌓고 당나라 각지를 돌아다니며 많은 경험을 할 수 있었지만, 당연히 시험에 합격하는 인원은 소수일수밖에 없는 만큼 대부분은 공부만 하다가 합격은 못하고 수업연한 10년이 지난 뒤 신라로 돌아와야만 했다. [[문성왕]] 때는 10년이 지날 동안 합격하지 못한 학생 105명이 한꺼번에 강제 귀국당하기도 했다. 다만 빈공과 합격자 출신은 말할 것도 없고 합격하지 못한 사람들도 단지 당에서 공부하고 왔다는 사실만으로도 우대를 받았다. [[원성왕]] 때 자옥(子玉)이라는 사람은 당나라에서 공부하고 왔다는 것만 가지고 양근현(楊根縣, 지금의 [[양평군]])의 관리가 되었다. [[송나라]], [[원나라]]대에도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시험은 '제과(制科)'로 이름은 바뀌었지만 계속 존재했다. 이 때는 신라나 발해와 달리, [[고려]] 광종 이후로 과거시험이 시행되기 시작했지만, 큰 나라에서 입신양명하고 싶어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존재했고, 결과적으로 제과도 주로 고려 사람들이 많이 응시했다. 대표적인 급제자로 [[이색(고려)|이색]], [[이인복]] 등이 있다. 특히 이색은 1, 2, 3차 시험에 각각 1, 1, 2등을 차지할 정도였다. 원나라 시대의 반동으로 고립주의적인 성향이 강해진 [[명나라]] 시대부터는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시험은 중단되어 [[조선시대]]부터는 과거를 보기 위해 공부하는 학생들의 목표가 중국 유학보다는 국내 과거시험 위주가 되었다. [[분류:동아시아사]][[분류:시험]][[분류:아시아의 구법]]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