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빙점 (문단 편집) == 기타 == 작가 미우라 아야코의 혼인 전 성은 호리타이다. 16세에 교사가 되었고 [[아사히카와시]]의 소학교로 전근을 갔으나 패전 후에 국가의 기만성과 [[군국주의]]의 교육이 잘못됨을 깨닫고 7년 만에 교원을 그만둔다.[* [[일본 문화]] 유입이 제도적으로 차단되고, 대중적 시각도 매우 차갑고 비판적이던 시절에도 한국에서 널리 퍼지고 인기를 얻은 데에는, 이렇듯 작가가 걸어온 길도 한몫했다. 자전소설 '돌멩이의 노래'는 군국 시대의 어린 소녀가 교사가 되어 군국주의적 교육을 해오다 패망한 후 불신에 빠지며 요양하는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http://kamuimintara.net/detail.php?rskey=14198605t03|#]] ] 얼마 안 되어 폐결핵에 걸려 13년 동안 투병생활을 하던 중에 30세에 기독교 세례를 받고 37세에 기독교도인 미우라 미쓰요와 결혼한다. 미우라 아야코는 남편과 잡화상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친절하고 성실한 운영 덕분에 가게의 매출은 금방 크게 늘었다. 하지만 이 부부는 '우리만 너무 잘 되면 주변의 다른 잡화상들은 그만큼 힘들어지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물건의 종류를 조금 줄이고 고객들 중 일부에게는 주변의 다른 잡화상에 가보도록 정중히 제안하는 방식으로 가게 운영 시간을 단축했다고 한다. 그러다보니 시간이 조금 남았고, 이 남는 시간을 이용하여 썼던 소설이 바로 빙점이었다고. 참고로 그 잡화상은 그녀의 사망 후에 그녀의 팬들이 모금을 해서 외형을 보존한 채 미우라 아야코 기념관으로 유지하고 있다고 한다. 기념관은 [[아사히카와역]]의 인근에 있다. 이 곳에는 당시의 번역본도 보존되어 있는데 주제와 관련되어 신앙소설이라는 문구가 붙어있다. 오랫동안 [[결핵]]에 걸려 요양생활을 했던 작가의 경험이 투영되어 있기도 하다. 무라이 선생이 결핵에 걸려 병원 일을 그만 두는 장면이라든가, 게이조가 자신의 학창 시절 선배였던 '마에카와 다다시'[* 미우라 아야코의 소꿉친구였고, [[첫사랑]]이자 [[약혼자]]였다. 또한 그녀와 마찬가지로 결핵에 걸려 고생하고 있었다. 다다시는 아야코가 자학적인 병상 생활 끝에 자살을 기도하자 자신의 발등을 돌로 쳐 피범벅을 만든 뒤 “신앙이 부족한 나는 아무리 애를 써도 너를 구원할 수가 없다. 그런 한심한 나를 벌하기 위해 발등을 내리친다”고 말해 눈물바다를 만들었다. 그 후 술과 담배를 끊은 아야코는 신앙인이 됐지만, 다다시는 1954년 폐결핵 수술 후유증으로 아야코보다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상심한 그녀의 앞에 우연히 '미우라 미쓰요'라는 인물이 나타났는데, 죽은 다다시와 꼭 닮아서 아야코는 굉장히 놀랐다고 한다. 그리고 결국 그는 그녀의 남편이 되었다.]가 지은 [[하이쿠]]를 떠올리는 장면 등등. [[분류:일본 소설]][[분류:1964년 소설]][[분류:830 일본문학]]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