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군자 (문단 편집) === [[매화]] === > '''이른 봄눈이 채 녹기도 전에 추위를 무릅쓰고 제일 먼저 꽃을 피우는 식물''' 매화나무('''梅'''). 서리와 눈을 두려워하지 않고 언 땅 위에 고운 꽃을 피워 맑은 향기를 뿜어내는 꽃으로써 이 매화는 백화가 미처 피기 전에 제일 먼저 피어나므로 ‘화형’ 또는 ‘화괴’라는 별칭으로 불려져 왔다. 또한 봄을 가장 먼저 전해 준다고 하여 일지춘색, 철간선춘, 한향철간이라 하였고, 춘한 속에서 홀로 핀 매화의 고고한 자태는 선비의 곧은 지조와 절개로 즐겨 비유되고 있다. 이처럼 맑은 향기와 아울러 눈 속에서 꽃을 피우는 것이 매화의 특징이다. 선비들은 매화의 곧고 맑은 성품을 노래한 글을 지어 일편단심으로 사무하는 임에게 자신의 간절한 심정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 때 임은 나라 또는 임금일 수도 있고 자신의 굳은 뜻일 수도 있다. 특히 청초한 자태와 향기로 인해 매화는 '''아름다운 여인'''에 즐겨 비유되었다. 옛 기생들의 이름에 유독 매화 ‘매’자가 많이 사용된 것은 이 때문이다. 그리고 매화가 아름다움과 함께 정절을 상징하였으므로, 여인들은 매화와 대나무를 함께 시문한 [[비녀]]인 '매죽잠'을 즐겨 착용하였다. 이와 같은 매화의 상징성으로 인해 눈이 덮인 매화나무 가지에 처음 피는 꽃을 찾아 나서는 심매가 문인과 풍류객들의 연중행사로 정착되기도 하였다. [[https://en.wikipedia.org/wiki/Fan_Chengda|범석호]]는 「매보」에서 천하에 으뜸가는 꽃이라 칭송하였고, [[소동파]]는 얼음 같은 맑은 혼과 구슬처럼 깨끗한 골격이라 평하였다. [[강희안]]은 「양화소록」의 화목9등품론에서 국화, 대나무, 연꽃과 함께 1등으로 분류하면서 높고 뛰어난 운치를 취할만하다고 하였으며, 같은 책의 화품평론에서 강산의 정신이 깃들고 태고의 모습이 드러난 꽃이라 표현하였다. 우리나라의 고시조에 나타나고 있는 꽃 중에서 매화는 도화[* 복숭아꽃]와 함께 가장 많이 등장하는 소재로 알려져 있다. 시조에서 나타나고 있는매화는 우리 선인들의 드높은 기개와 굽힐 줄 모르는 지조의 상징으로 애창되어 왔고, 다 썩은 고목에서도 봄기운이 돌면 어김없이 맑은 꽃을 피우는 신의의 벗으로 노래되어 왔다. >白雪이 ᄌᆞ자진 골에 구룸이 머흐레라 >반가온 梅花ᄂᆞᆫ 어ᄂᆡ 곳에 퓌엿ᄂᆞᆫ고 >夕陽에 호을노 셔셔 갈 곳 몰라 ᄒᆞ노라 >----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물어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서 갈 곳 몰라 하노라. >---- >'''백설이 잦아진 골에 / 이색(李穡, 1328~1396)''' [[이색(고려)|이색]]의 이 시에서는 추이하는 계절과 더불어 걷잡지 못할 애상에 잠긴 마음으로 매화를 찾는 지사의 심정을 노래하고 있다. 또한 매화는 [[달]]과 함께 자주 등장하고 있다. 고고한 달빛 아래 청초한 자태와 맑은 향기를 내뿜는 매화의 모습은 상상만으로도 자연적인 조화와 운치를 한껏 느낄 수 있는 풍경이 아닐 수 없다. 일생을 독신으로 매화와 더불어 은거생활을 한 송나라 시인 [[https://en.wikipedia.org/wiki/Lin_Bu|임포]] 이후로 매화와 달의 짝으로 더욱 애호되고 있다. 실로 달과 매화는 예로부터 은일처사들의 아낌을 받아 온 고아함의 화신이요, 정절의 상징인 자연이었다. 달을 벗한 매화는 그림에서도 자주 등장하고 있다. [[윤리문자도]]에는 '수양매월 이제청절(首陽梅月 夷濟淸節)'이라는 은나라의 [[은일처사]] [[백이]]와[[숙제]]가 수양산에서 달과 매화를 벗삼아 은둔의 일생을 보냈다는 고사가 상징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한편 우리나라의 매화 그림, 묵매화에 나타나는 공통적인 특징은 매화의 꽃송이가 중국의 그림처럼 '''많지 않다는 것'''이다. 문화재 전문위원 [[허영환]] 선생은 이러한 현상에 대해 ‘아마 우리나라 사람이 성긴 것, 어리숙한 것, 완벽하지 않은 것, 기교를 부리지 않은 것 등을 좋아한 성격 탓’인것 같기도 하고, ‘한국미술의 바탕을 흐르는 자연주의의 발로’인 것 같기도 하다고 보았다. 이에 반하여 중국의 민족성은 빽빽한 것, 완전무결한것, 아주 예쁜 것, 되도록 큰 것을 좋아한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중국의 묵매화가들이 어지럽게 줄기와 가지를 그리고 수십, 수백 꽃송이를 화면 가득히 그리면서 웅장, 완벽, 섬세를 추구할 때, 우리나라의 묵매화가들은 그러한 화법과 화풍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스럽고 자연스럽게, 무기교의 기교라는 한국미술의 기조를 지키면서 여백의 미와 단순의 미를 추구하였던 것이다. 이는 비록 묵매화가 사군자의 하나로 중국에서 건너온 것이기는 하지만, 우리의 민족성에 맞게 완전히 소화, 재창조되어 한 단계 높은 미적 수준을 나타낸 것이라 볼 수 있을 것이다. 대만의 국화이기도 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