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단(군대) (문단 편집) == 개요 == {{{+1 '''사단'''([[師]][[團]] / Division)}}} [[군단]]보다 작고 [[여단]] 및 [[연대(군대)|연대]]보다 큰 [[군대]] 조직상의 편성 단위. 3,000[* 이론상. 단독 장기작전에 필요한 최소한을 갖춘 숫자로, 이러면 여단 및 연대나 다를 바가 없어 힘들어진다.] ~ 20,000명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다만 미육군의 경우 각종 지원 부대가 사단에 바리바리 딸려있기에 사단 규모가 워낙 커서 사단 정원이 타국의 몇 배는 된다. 사실상 우리 기준 군단급은 기본인 셈. 반면에 [[소련군]]은 [[독소전쟁]] 후반에 극심한 인력소모로 인해 사단 최소 정원수인 3000명 언저리까지 부대를 편제한 적이 있었다. 남부군과 같은 유격대의 경우 유격전의 특성상 170명 규모의 사단도 있었다. 사실 이것도 조선인민유격대의 정면 전술로 인한 것으로 타국 빨치산 부대의 부대 운영 단위에 비하면 작은 규모이기도 하다.] 근대 프랑스 육군의 여명기인 18세기에 시작된 편제. 군대의 동원, 지휘, 통제의 시스템이 전근대적인 제약을 극복해 나가는 과정에서 군의 규모가 거대화되면서 사단편제가 등장했다. 물론 당시엔 서유럽, 그중에서도 일부뿐이었고 다른 지역엔 사단 시스템이 등장하지 않았었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근대적 [[지리학]] 지식의 정립, 문서화된 행정체계의 보급, 동원체제의 걸림돌이 되었던 사회경제적인 제약의 극복과 같은 과정이 나타나면서 군대편제의 규모가 꽤 늘어났다. 이전까지는 최고지휘관이 광학기기의 도움을 빌어 전장의 상황을 통제할 수 있으면서 국가의 동원능력의 한계를 벗어나지 않고 운영할 수 있는 군대의 규모는 5만 명가량의 수준이었지만, 앞서 말한 요인으로 이러한 제약이 풀리면서 수십만의 군대를 효과적으로 운영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이렇게 동원된 군대를 기존에 자연스럽게 구축된 교통인프라를 통해 적절하고 효과적으로 운영하기 유리하도록 '''일정 기간 이상의 독립적인 작전수행이 가능한 규모'''로 나누어 편성한 것이 사단이다. 사단의 사전적인 의미가 '''장기간 독자적인 전투수행이 가능하도록 편성된 제병합동부대'''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즉 대규모로 동원된 군대를 교통인프라의 제약에 맞도록 편성하는 과정에서 나온 조직. 한편 이 시기에 바로 여러 사단에 대한 통제를 효과적으로 하기 위한 군단 편제도 나왔다. 이렇듯 중요하기 때문에 그야말로 '''[[지상군]] 편제단위의 [[꽃]]'''이라 할 수 있다. 자연히 [[사단장]] 또한 '[[지휘관]]의 꽃'으로 간주된다. 사단보다 작은 단위(연대, 대대 등)도 많고 큰 단위(군단, 야전군 등)도 많지만, 지상군의 규모를 따질 때는 언제나 사단의 개수를 기준으로 하지 연대나 군단의 개수를 기준으로 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마찬가지로 누군가가 자신의 소속부대를 대강 이야기할 때도, 예를 들어 4군단 44사단 444연대 출신[* 현대 대한민국 국군에는 [[고유명칭]]에 [[死]]와 발음이 같은 숫자 [[4]]가 들어가는 제대는 없으니 어디까지나 예시다.]이라면, 그중 사단을 찝어 44사단 출신이라고 하지 4군단[* 이렇게 말하는 경우는 군단 [[본부근무대]] 등 군단 직할부대 출신인 경우다.]이나 444연대 출신[* [[건군기|창군 초기]]에는 독립연대가 존재했으나 이후 대부분 사단 예하로 흡수되거나 여단으로 승격되어 현재는 존재하지 않는다.]이라고 하지는 않는다. 사실상 사단은 편제단위 중 실질적 전술에 가장 중요한 단위. 군 편제 중 제식구조를 갖춘 부대는 사단(독립여단)이 마지막이다. 즉 사단장이나 독립여단장이 실질적으로 병력을 지휘하는 최상급 장교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