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동궁 (문단 편집) == 마지막 == 그러나 [[8.15 광복]] 후 사동궁은 [[몰락]]했다. [[왕공족]]에서 [[평민]]이 되어 생활이 궁핍해진 의친왕에게 박응래라는 사람이 접근해 사동궁 일부를 팔라고 강요했고, 결국 1946년에 200만 원에 내놓았다. 그러자 [[미군정]]이 사동궁은 사유재산이 아닌 국가재산이니 [[대법원장]]에게 얘기해 구 이왕직에서 관리하도록 하였으나 [[대법원]]에서는 이를 묵살했다. 그리고 1948년 박응래는 사동궁을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NISI20110920_0005166634_web.jpg|width=100%]]}}} || || {{{#ffd700 '''주차장 건설로 헐린 사동궁 한옥'''}}} || [[대한의사협회]]는 1955년 11월 12일 [[종로구]] 관훈동 옛 사동궁의 일부를 매입하여 대한의사협회 회관을 마련했다. 이 [[건물]]은 1960년 11월 화재로 사라지기까지 5년 동안 서울시의사회에서 함께 사용했다. 또한 종로구 인사동11길 19[* 구 지번 주소 [[종로구]] 견지동 85-18]는 1946년 박응래에게 팔렸다가 다음 해에 최시화의 소유가 되었고, 1955년경에 옛 사동궁 [[한옥]] 한 채[* 사랑채였다고 한다.]에 요정 ‘다성’[* 한동안 '도원'으로 잘못 알려져 있었으나 의친왕의 후손이 '다성'이라고 알려주었다.]이 들어섰다. [[서울시]]는 2004년에 이 집을 사들여 2005년에 허물고 ‘서인사 마당 공영 [[주차장]]’으로 만들어 사용 중이다.[* 이 상황을 증언하는 출처인 책 《대한민국 사용후기》의 저자 J. 스콧 버거슨은 2005년 이 [[한옥]]이 헐리는 [[과정]]을 보고 사라져가는 [[문화]]에 무심한 [[한국]] 사람들에게 안타까움을 느낀다고 했다. 저자가 구청 담당공무원에게 이 사실을 따졌을 때 이들은 진짜 몰랐는지 일제 시대 지도를 펴놓고 한동안 당황했다고.] 또한 그 주변의 보존 상태가 양호한 [[한옥]] 하나를 [[수리]]해 '인사동 홍보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120923017980939_thumb_1024_w.jpg|width=100%]]}}} || || {{{#ffd700 '''사동궁 한옥의 일부인 인사동 홍보관'''}}} || 1965년 [[종로구]] 인사동 192번지 82호의 사동궁 양관 자리 일부와 종로구 견지동 87번지 1호 등에 종로예식장이 들어섰다. 1986년에는 종로예식장 자리와 그 주변을 선경이 사들여 [[SK건설]]빌딩(인사동 192번지 18호)이 들어섰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파일:사동궁 나무.png|width=100%]]}}} || || {{{#ffd700 '''사동궁 터에 있는 회화나무'''}}} || [[SK건설]] 빌딩 동쪽에는 사동궁의 영욕을 직접 보았을 오래된 [[회화나무]] 한 그루가 있다. 현재 사동궁 터엔 이 [[나무]] 외에 옛 역사를 증명해 줄 흔적이 전혀 남아있지 않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