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로국 (문단 편집) ==== 6촌 실재설 ==== 먼저 '''6촌의 존재에 대해서 인정하며, 이러한 6촌의 통합으로 사로국이 형성'''되었다고 보는 학자로 [[이종욱(교수)|이종욱]]과 [[이현혜]]가 있다. * 이종욱은 청동기 시대에 계급 사회가 형성돼[* 청동기시대 사회성격에 대해 계급사회로 보는 학설과 평등사회로 보는 학설로 나누어져 있다. 논란은 있으나, 대체로 청동기시대 후기인 송국리문화 등장 이후에는 계급사회로 들어섰다고 보는 것이 일반적이다.] 촌락을 통제하는 수장층이 출현하였으며, 이러한 수장이 경주에서는 각기 직경 10km 범위의 촌락을 각기 다스리는 6촌장이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6촌이 삼국사기의 기록에 따라 기원전 2세기 말경 통합을 이루어, 직경 30km ~ 40km 범위를 가진 광역의 사로국이 탄생하였다고 보았다. * [[이현혜]]는 기존의 사로 6촌 허구설들을 비판하며, 경주 지역에서 나오는 목관묘(木棺墓)와 목곽묘(木槨墓)를 통해 그 실존 여부를 살피고 있다. 그는 기원전 2세기 말 목관묘 조성 단계가 되면 경상도 지역에 유물, 유적의 수가 급격하게 증가한다면서 이전 단계(초기철기시대)의 무덤들이 1, 2기의 단독 무덤(독립묘)으로 조성되는 것과 달리 100여기 이상의 군집묘(집단 묘역)가 등장한다고 하면서 이는 장기지속취락의 등장과 정치체의 형성을 나타내는 것이라 하였다. 또 이러한 집단 묘역은 대규모 유이민 파동에 의한 급격한 인구 증가로 보고, 이러한 유이민은 고조선 멸망 후 내려온 고조선 유민으로, 삼국사기에 등장하는 육촌이 고조선 유민으로 이루어진 것을 증명하는 사례라고 하였다. 즉 정치체의 형성으로 볼 수 있는 이러한 군집묘들은 기존에 비정된 각 촌의 위치마다 분포하고 있으므로, 육촌의 실재를 인정할 수 있고, 이러한 육촌이 통합하여 형성된 것이 사로국으로 보았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