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로국 (문단 편집) == 역사 == 《[[삼국사기]]》와 《[[삼국유사]]》 등에 따르면 [[고조선]]의 유민인 여섯 개 마을(주요 6부 또는 6촌)에서 [[박혁거세]]를 추대하여 세운 나라로 알려져 있다. 건국년도는 [[기원전 57년]]경[* 《삼국사기》의 기록을 환산했을 때]으로 추정되며, 이에 대해서는 《삼국사기》 수정론을 지지하는 학자들에서 이론(異論)이 존재한다. 다만 중국의 《[[정사 삼국지]]》에도 사로국이 소개되며, 적어도 [[2세기]] 이전에는 그 존재가 확실시된다. 사로국은 국내 문헌에 따르면 [[101년]] [[경주 월성|월성]]을 정궁으로 하고 [[102년]] [[음즙벌국]]을 병합하였으며, 이듬해 [[실직국]]과 [[압독국]]까지 복속하며 진한의 유력자로 떠올랐다. 사로(斯盧)의 '사(斯)'는 [[고대 한국어]]에서 '시[si]'로 발음되었으며 '로(盧)' 역시 [[상고한어]]에서 '라[c-raʔ]' 로 발음되는 것이 알려져 있다. 이에 맞추어 고대 한국어 음가로 이 글자를 읽으면 '시(ㄹ)라', 즉 '신라'가 된다. 따라서 사로, 사라, 신라 등의 국호 표기는 '''같은 이름을 다른 한자로 표현한 것일 뿐이다.''' 사로국과 신라국의 경계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내물 마립간]] 시기를 기준으로 신라로 지칭하는데 사로국과 신라국 사이에 공백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연속적으로 신라의 역사이다. 내물 마립간이 그 기준이 된 이유는 이 시점부터 왕국으로서의 왕위 계보가 안정되었으며, 결정적으로 국서에 '신라'라는 이름을 사용한 기록이 다수 발견되기 때문이다.[* 중국에 신라 명의로 사신을 파견했다. 이전까지는 《삼국지》 <위지> '동이전' 등지에 '사로(斯盧)'로 서술되어 있다.] 내물 마립간 이후에도 신라, 계림, [[사라]] 등 다른 표기가 혼용되다가, 이후 [[지증왕]] 대에 군주의 칭호를 '왕'으로 바꾸면서 국호를 신라로 공식 지정하기에 이른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