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로국 (문단 편집) === 진한에서 우위를 점한 이유 === 당대의 주요 국제 교역로 상의 결절점에 위치한 금관국만큼은 아니지만 사로국의 입지는 교통의 요지에 해당한다. 경주는 당시 금관국의 주요 교통로인 낙동강 유역에서 벗어나 있는 독립된 형산강 수계에 위치하면서, 또 다른 전통적인 교통로인 동해안 교통로와 직결되어 있다. 그러면서도 간단한 고개길만 넘으면 낙동강 수계와 연결되며, 단층 지대로 직결되는 양산을 통해서 낙동강 하류역 및 남해안 진출이 가능하다. 물론 경주 분지와 직결되는 울산과 포항을 통해서도 해상 진출로가 열려있다.[* 실제로 많은 삼국사기 신라 본기의 기록을 보면 가야군은 주로 양산(황산진)을 통해서, 왜군은 포항과 울산을 통해서 경주로 진격하거나, 시도한다.] 이렇듯 경주는 당대의 주요 교통로상의 결절지에 해당한다. 비록 영남 지역의 최대 교통로인 낙동강, 그것도 하류역을 장악하고 당대 최고의 국제교역로인 남해안 해상 교통로로 왜, 중국 군현과 교섭하던 금관국에 비해 입지상으로는 뒤쳐지지만, 경주는 이들의 2차 결절지이면서도 동해안 국제 교통로를 통해 고구려 및 제 정치체(옥저, 동예 등의 소국)와 직결되는 상대적 이점을 가지고 있었다. 특히 4세기 이후는 전통적인 간선 국제 교통로인 해상 교통로가 쇠퇴하게 되며[* 그 중심인 중국 군현 지역이 전쟁터가 되며, 수십년간의 전쟁, 특히 [[근초고왕]]의 침략으로 군현 복속 이후 유지되던 중국인 세력이 말소되면서 그 교역로도 쇠퇴하게 된다.] [[고구려]]가 부상하게 된다. 이런 점에서 기존 교통로에 의존하던 금관국에 대해 사로국은 교역로 장악의 비교 우위를 점하게 된다.[* 삼한 전체를 아우르던 진왕의 작위를 가지던 목지국 또한 대중국 무역에서 교통의 요지라는 이점 때문에 오랜기간 삼한의 대표취급을 받았다. 목지국의 몰락 역시 교통의 요지가 한강유역으로 넘어가면서 패권을 백제에게 내주게 된다.] 이상이 사로국이 비록 금관국보다는 못하지만 주변 소국들에 우위를 점했던 배경이며, 후에는 고구려가 부상하면서 금관국을 추월할 수 있었던 주요 원인이라 할 수 있겠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