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마량 (문단 편집) === 무제의 죽음 === 289년, 무제 사마염이 병이 들자 황실은 이듬해 혜제가 될 태자 [[사마충]]의 섭정을 찾고자 했다. 사마충은 태자이긴 하나 지적장애를 의심받는 모자란 인물이었고, 그 때문에 사마염의 아내인 무도황후 [[양지(삼국지)|양지]]의 아버지 [[양준(서진)|양준]]과 황실의 큰어른인 사마량 양쪽을 두고 사마염은 고민했다. 이 일로 양준은 사마량을 경계하게 된다. 양준은 이후 중앙에서 사마씨 축출에 착수하게 된다. 사마량은 이때 이미 노인이었는데, 11월 23일 시중 자리를 유지만 한 채, [[사마|대사마]], 가황월, [[도독|대도독]], 독예주제군사로 임명되어 [[허창]]으로 보내졌다. [[예주]]의 군사 지휘를 맡겨 파견한다는 것이었는데, 양준은 이런 저런 구실로 라이벌 세력을 죄다 조정에서 쫓아냈다. 다른 사마씨들도 제국의 다른 주요 도시로 파견되었다. 290년, 사마량이 임지로 출발하기 직전, [[무제(서진)|무제]]는 잠시 차도가 있어 정신을 차렸다. 양준은 사마염이 위중한 사이 황제의 가까운 신하 모두를 이미 자신의 심복으로 바꿔 놓았다. 사마염은 새로 채용된 양준의 심복들을 보고 무척 정색하며 어떻게 이렇게 마음대로 할 수가 있느냐며 화를 내고는, 중서감 사람들에게 급히 유서가 될지도 모를 새 조서를 만들게 했다. 사마염의 유언은 사마량을 여남왕으로 보내지 말고, 그로 하여금 섭정하게 하고 양준은 그를 도우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양준은 중서감(中書監)에 있는 자기의 심복 화이(華廙)에게 조서를 엿보게 시켰다. 내용을 확인한 양준은 유조를 내놓지 않고 버텼으며, 사마염이 의식이 없는 동안 양준의 딸이자 황후인 양지가 사마염에게 어찌저찌 형식적 동의를 얻어내 새 조서를 내리니 그 내용인즉 "사마량은 다시 떠나고 [[섭정]]은 양준 혼자 맡아라"였다. 결국 사마염은 "여남왕은 아직 안 왔는가?"라는 말만 남기고 사마량이 [[낙양]]에 도착하기 전에 혼수상태에 빠져 붕어하고 말았다. 황제의 죽음 이후 사마량은 양준이 자신을 의심하는 걸 두려워하여 영구에 다가가지도 못하고, 그저 병을 핑계대며 대사마문 밖에서 슬피 곡을 하는 수밖에 없었다. 사마량은 성 밖에 군영을 만들어 놓고 표문을 올려 장례라도 가게 해달라고 양준에게 부탁했다. 그러나 양준은 사마량이 대사마문 밖에 통곡하는 것을 오히려 의심했는데, 두려운 마음에 자신의 딸인 [[태후]] 양지에게 말하여 혜제 [[사마충]]에게 토벌 조서를 내리게 하였다. [[석감(서진)|석감]]과 장소에게 조서를 내려 능묘를 만들던 병사까지 다 빼서 먼저 사마량을 토벌하라는 것이었다. 이 혼란에 [[정위]] 하욱 등 많은 사람들은 사마량에게 역으로 무리를 이끌고 가 양준을 폐하라고 권했다. 양준이 겁을 낸 것도 무리가 아닌 게, 그는 빈전을 지킨다며 황궁의 정전인 태극전에 들어앉아 황제와 다름없이 구는 중이었으므로 벼르는 사람이 많았다. 군사를 가진 사마량이 역으로 토벌한다면 불가능한 상황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마량은 끝내 직접 궁으로 쳐들어가지 못했다. 사마량은 사람들의 권유를 거절하고 밤중에 [[쉬창|허창]]으로 피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