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마소 (문단 편집) === [[조모(삼국지)|황제]] 시해 === 260년 4월 사마소는 진공, 상국의 지위와 [[구석#s-3|구석]]을 [[조모(삼국지)|조모]]로부터 하사받았으나 거부하고 받지 않았다. 당연히 이건 아직 그러한 대우를 받기 부족했던 사마소에게 일부러 [[망탁조의|예전의 찬탈 지망생들]]이나 받을 만한 직위들을 퍼부어서 사마소를 높은 데서 떨어뜨리려고 했던 조모의 고단수 책모로써[* 훗날 [[북주]]의 [[우문호]]가 이 함정에 걸려 멸족당한다.], 이걸 받아들이면 사마소는 동탁이나 훗날의 환씨 일가와 같은 전철을 밟게 될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이 상황에서는 거부하면서 겸손을 가장하여 황제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술수가 더 적합했다. 조모는 때문에 사마소의 행위에 분노를 느낀 바도 있고, 아니면 258년 동오의 실권자 [[손침]]이 황제 [[손휴]]에 의해 토벌된 것에 자극을 받았던 가능성도 있고 해서 사마소를 토벌하려 했다. 조모는 5월에 갑자기 '사마소의 마음은 행인들도 알고 있소.[* 사마소지심로인소지(司馬昭之心路人所知)의 유래.] 짐은 이대로 계속 치욕을 감당할 수 없소. 오늘이야말로 경들과 함께 사마소를 치러 나가겠소'라면서 사마소를 참살하고 정권을 되찾기 위해 상서 [[왕경(삼국지)|왕경]], 시중 [[왕침#s-1|왕침]], 산기상시 왕업을 불러 품안에서 조서를 꺼내며 친위 쿠데타를 시도했다. 조모는 이들을 믿었기에 자신의 계획을 털어놓은 것이지만 왕침과 [[왕업#s-2|왕업]]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왕경은 홀로 말렸다. 그래도 조모는 꿋꿋히 강행했으나, 병권이 이미 사마씨에게 장악된 상황이라 변변한 병사들을 모을 수 없었고 조모가 부릴 수 있는 병력은 노복이나 환관들뿐이었다. 왕침과 왕업은 왕경에게 자신과 함께 사마소에게 알리러 가자고 제안했지만 왕경은 거절했다. 이에 둘은 사마소에게 일러바쳤고 계획은 누설되었다. 할 수 없이 조모는 그나마 모인 소수의 부하들을 데리고 친히 북을 울리며 사마소를 치러 출병했다. 도중에 둔기 교위 [[사마주]]를 만나자 고함을 질러 물리치고 운룡문과 지거문을 나섰다. 그러나 동화문 앞에서 사마소가 보낸 [[가충]]이 지휘하는 정예 병력에 가로막히고 겁먹은 병졸들이 흩어지자 스스로 검을 빼들고 싸웠다. 하지만 병사들은 감히 황제를 공격할 수 없어 이러저리 몸을 피하기 바빴다. 이때 가충의 부하였던 [[성제#s-1|성제]]가 망설였으나, 가충이 '사마공께서 너희들을 보살펴 주신 것은 오늘을 위해서였다. 뭘 망설이는가?'라며 다그치자 병사들은 그제서야 공격했다. 이때 성제가 닥돌하여 조모를 창으로 찌르고 칼로 등을 꿰뚫었고 조모는 연(輦)에서 떨어져 죽었다. 사태는 수습되었지만, 황제를 죽인 꼴이 되자 사마소의 입장은 매우 난처해졌다. 이전에도 천자를 강제 폐위시키거나 독으로 암살하는 일은 있었지만 이렇게 대놓고 죽인 것은 전례 없이 훨씬 심각한 문제였다. 이를 무마하고자 사마소는 조모가 [[명원황후]]를 시해하려 했다고 둘러대며 조모 시해의 책임을 모두 성제, [[성쉬]] 형제에게 떠안겼다, 이후 >"신이 듣기로 신하의 절조는 죽을지언정 두 마음을 품지 않는 것이고 군주를 섬기는 도의는 감히 재난에서 도망치지 않는 것이라고 합니다. 전 일에 발생한 변고는 갑작스러운 것이었고 재앙은 마치 화살이 발사된 것 같으니 신은 진실로 몸을 바쳐 죽음을 지키고 오직 운명의 판단을 기다리고자 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책략이 위로는 황태후를 위험하게 하고 [[종묘]]를 전복시킬 거라는데 생각이 미쳤습니다." "신은 부끄럽게도 신하의 우두머리이고 대의는 국가를 편안히 하는데 있는지라 끝없이 경고를 하며 황제의 수레에 가까이 가지 말도록 하였습니다. 성제가 망령되이 진중에 들어가 이로써 커다란 변고가 발생하게 됐으니 신은 슬프고 고통스러워 오장육부가 찢어질 것 같습니다. 성제는 국군을 범하고 국가의 기강을 어지럽혔으니 죽여도 부족하므로 그의 가족들을 잡아다 정위에게 넘겨야 합니다” 라고 하였다. [[명원황후]]는 이 말을 들어 성제의 삼족을 멸하였다. 공경들과 더불어 의논하여 연왕 [[조우#s-2|조우]]의 아들 상도향공 [[조환]]을 황제로 세웠다. 하지만, 성제가 단지 실행자에 불과하고 실제 누동자는 가충과 사마소란 걸 사마소 본인을 비롯한 모든 이들이 다 알았으므로, 이후 [[선양#s-1|선양]]의 정당성이 크게 떨어져 서진의 건국은 촉한 정벌이란 '업적'을 세운 이후로 미뤄질 수밖에 없었다. 여담으로 [[중국인]]들은 한진춘추에 나오는 사마소가 조모 시해 후 "천하사람들이 나를 뭐라 하겠는가"라고 말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여기서 천하사람이란 백성이 아니라 대귀족들이다. 사마씨도 귀족세력이고 귀족들의 지지로 올라갔는데 황제를 살해한 일을 다른 귀족들이 어떻게 바라볼지 확신을 못하겠다는 뜻이다.' 이 해석이 정말로 맞는지 아닌지 알 수 없지만 적어도 현대 중국인들이 사마소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는 알 수 있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