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마의(삼국) (문단 편집) === 기다림의 달인 === 제갈량과 주유에 비견할만한 재능과 포부를 지니고 있지만 좀처럼 그 재주를 펼칠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 사실 조조가 사람을 시켜 임관 요청을 했으나 그당시에는 조조가 관도대전에서 크게 이겨 임관해봤자 중히 쓰이지 못할 것이라 아직 때가 되지 않았다여겨 꾀병을 핑계로 거절했다. 그러고 2년을 잠수타던 와중 안 나오면 억지로 잡아가려하자 아예 도망가버린다. 이때도 조조가 원소 잔당들을 쓸어버리며 승승장구할 때. 그러다 조조가 불러도 안 나오던 사마의가 제 발로 조조에게 찾아가 자기자신을 어필하게 된다. 3년 뒤 조조는 적벽에서 크게 패했고 사마의는 당시 마횡이라는 가명을 써서 조인 밑에서 참모 일하며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조가 적벽대전에서 귀환한 장졸들을 모아놓고 일장 연설을 하고 있는 곳에서 코골며 졸어 조조의 눈에 띄게 되고 결국 사마의임이 밝혀진다. 사마의는 적벽대전 이후 천하가 삼분될 것을 예견하며 조조 대에서 천하가 통일되기는 어려울 것이라 예측한다. 조조도 공감하며 후대를 위해 사마의를 아들 조충의 사부로 삼는다. 우여곡절 끝에 출사하는데 '''정식으로 임관하는데만 무려 5년이나 걸렸다.''' 하지만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조충은 어리지만 영특했고 이에 장자 조비의 시기를 받아 독살된다. 사마의는 3일 스승이었으나 3년상을 치른다는 명목으로 다시 잠수를 탄다.[* 조충이 조조가 가장 총애하던 아들이라 후계자 1순위였고 그래서 조조가 사부로 맡긴 것인데 이제 조충이 죽었으니 누가 후계자가 될만한지 기다리면서 찾아보려고 잠수탄 것이다.] 3년 뒤에는 조조에게 다른 아들의 스승이 되기로 약조 받았기 때문에 조비를 가르치겠다하나 거절당하고 다시 3년 가량을 잠수탄다. 그 후 실권없는 직책으로 다시 임관해 있다가 순욱이 죽고 유비가 한중을 공격하자 비로소 조조를 따라 전쟁에 나서게 된다. '''본격적으로 자신의 포부를 실현할 만큼의 자리에 오르기까지 다시 6~7년이 걸린다.'''[* 이 기간은 짧아보일 수 있으나 사마의가 이미 조조의 눈에 들었던 점을 고려하면 단숨에 조조 측근으로 활동이 가능했다. 하지만 조조는 스스로의 능력을 믿었기에 사마의를 중용하지 않는다. 순욱의 죽음 같은 돌발변수가 없었다면 조조가 사마의를 데리고 다니지 않았을 공산이 크다. 순욱이 죽고나서 어느정도 조조와 전략을 티키타카할만한 상대는 사마의가 유일해져서 사마의를 쓰기 시작한다.] 결국 모시던 조비가 조조의 후계자가 되고 조조가 죽어 그 뒤를 잇게 된다. 이어 선양 받아 황제가 되니 이제 사마의도 포부를 펼칠 줄 알았으나 조비는 병권은 오직 친인척들에게만 주고 은근히 자신은 배척한다. 결국 '''조비 치세 7년 동안 감시만 받으며 아무것도 못한다.''' 조비 사후 조예가 등극하자 제갈량이 쳐들어와 모함 끝에 복직하여 제갈량을 막고 모함 당하여 좌천되고 다시 막고 좌천되기를 반복하며 5차례에 걸친 제갈량의 북벌을 막는다. '''6년 동안 필요할 때만 써먹고 아닐 땐 내쳐지기를 반복한다.'''[* 그나마 이 시절이 사마의가 활약했던 시기였으나 다급한 경우에만 불려나가 불끄고 돌아오면 온갖 핑계로 병권을 회수해가고 다시 연금하거나 감시하는 등 이때도 기다림의 연속이었다.] 제갈량이 죽고 결국 '''15년 동안 조씨 일족 들에게 견제를 받다 고평릉에서 쿠데타를 일으켜 정권을 장악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