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바(말레이시아) (문단 편집) == 역사 == 19세기까지 [[브루나이 술탄국]]의 지배를 받다가 이 지역에 들어온 [[영국]]에 의해 [[북보르네오]]가 설치되고 직할식민지가 된다. 물론 1942년 [[일본 제국|일제]]가 침공해서 3년간 빼앗긴 [[흑역사]]가 있긴 하지만 1945년 일제의 패전 후 영국이 다시 돌아와 직할 식민지로 되돌아간다. 그런데 1957년 말라야가 영국에서 독립을 쟁취하고 싱가포르가 말라야에 가입할 조짐이 보이자 [[툰쿠 압둘 라만]] 총리에 의해 주목을 받게 된다. 이미 말라야에는 상당수의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중국인]]들과 [[인도계 말레이시아인|인도인]]들이 거주하고 있었는데 좌익[* 예나 지금이나 싱가포르의 집권정당인 [[인민행동당]]은 이 시기에는 좌익정당이었다.] 중국계 다수의 싱가포르의 연방 가입은 [[말라야 비상사태]]를 겪은 우파 말라야 정치인들의 우려를 샀으며, 특히 싱가포르만 추가된 말라야는 말레이인보다 중국인이 더 많다는 점은 특히나 그들의 경계를 샀다. 중국인이 말라야 인구의 다수를 차지하면 [[말레이시아/인종차별|인종차별]] 정책(말레이인 우대 정책)은 커녕 말레이인 민족국가로의 존립도 위협받았을 것이기 때문. 따라서 그만큼 말레이인들을 연방에 더 추가시키기 위해 영토 확장을 모색한다. 당시 사바와 [[사라왁]]은 [[브루나이]]와 함께 [[북보르네오 연방|별개의 국가 수립]]을 계획하고 있었지만 자국의 석유 수익을 사바와 사라왁에 퍼주게 될 것이라 경계하고 통일로 인한 정치적 불안을 우려한 [[브루나이]]가 이 계획에서 빠지자 [[사라왁]]과 사바는 회의를 가지면서도 말레이시아 가입을 결정한다. 결국 1963년 9월 16일 싱가포르, 사라왁, 사바의 가입과 함께 신설 [[말레이시아]]가 탄생하지만 첫판부터 삐그덕하게 된다. 2년만에 [[싱가포르]]가 쫓겨났는데 문제는 사바 가입 설득의 주 역할을 한 주/국가가 바로 싱가포르였기 때문(...) 결국 역으로 분리주의만 부추기게 되었다. 한편 1980년대 후반부터 현지 주민들을 대변하는 듯...한 정당들이 생겼지만 본토의 여당연합인 [[국민전선(말레이시아)|국민전선]]에 가입하는 배신행동을 저질렀으며 그마저도 1990년대 초반 일련의 정치 스캔들로 정국이 불안했던 [[흑역사]]도 있었다. 지금은 그럭저럭 돌아가지만(...)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