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방숙 (문단 편집) == 생애 == 사방숙은 위주 출신으로, 가정 16년(1223년)년에 과거에 급제해 진사에 합격하여 감찰어사, 급사중을 지냈다. 1244년에는 태상소경으로 임명되고 국사편수와 실록검토를 겸임하였으며 1245년에는 좌사간이 되었다. 1249년 사방숙은 응요(應𢖟)와 함께 참지정사가 되었고 영강군후(永康郡侯)라는 작위를 받았으며, 이종에게 한전제(限田制)의 시행과 [[주자(철학자)|주희]]의 문인인 호안정(胡安定), 여도(呂燾), 채모(蔡模)를 등용할 것을 주청하기도 했다. 뒤이어 1251년에는 지추밀원사, 참지정사가 되고 좌승상으로 임명되었으며 작위가 혜국공(惠國公)으로 올라간다. 이렇게 사방숙은 남송의 재상임과 동시에 추밀원의 책임자라는 직착을 맡는다. 이렇게 재상이 된 사방숙은 이종의 총애를 받는 노윤승(盧允升), 동송신(董宋臣)과 끊임없이 대립하였다. 사방숙은 환관 노윤승과 동송신의 전횡에 대해서 비판하며 이들을 탄핵하였으나, 노윤승과 동송신은 자신을 탄핵한 사방숙을 탄압하였다. 이 때문에 사방숙은 1255년 재상에서 파면되어 관문전 대학사, 제거동소궁이 되었고 1261년에는 벼슬에서 물러난다. 1264년, 이종이 승하하고 이종의 태자인 조기가 황제로 즉위한다. 이가 바로 제15대 황제인 [[도종(송)|도종]]이었다. 사방숙은 이종이 승하하고, 노윤승과 동송신이 사라진 조정으로 돌아온다. 당시 도종의 권신이었던 [[가사도]]는 사방숙이 재상으로 복귀하는 것을 우려하였고, 간관들을 시켜서 사방숙을 탄핵하려고 했다. 가사도의 사주를 받은 관리들은 잇따라 사방숙을 탄핵하였고, 사방숙은 결국 가사도에게 저지를 당하여 재상이 되지 못한다. 결국 사방숙은 1272년에 재상이 되지 못한 근심으로 인해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하였다. [[분류:송나라/인물]][[분류:1272년 사망]]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