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비회의 (문단 편집) ==== 쩔쩔매는 가야연맹 ==== 《[[일본서기]]》는 백제가 재소환한 주체가 임나일본부라고 해놓았지만 이는 당연히도 거짓이고, 실제로는 [[가야]] 연맹이 주체였으며 [[안라왜신관]]은 곁다리였을 것이다. * 543년 12월, [[백제]]가 처음 소환을 시작했다. 가야 연맹은 이듬해 1월에 보자고 미뤘다. * 544년 1월, 다시 부르자 제사를 지낼 날짜라며 미뤘다. * 544년 1월, 백제는 결국 [[가야]]와 [[안라왜신관]]을 강제로 불러냈지만 다들 집사보다 지위가 낮은 관리만 보내 제대로 논의할 수가 없었다. * 544년 2월, 화난 백제는 시덕 마무(馬武), 고분옥, 사나노차주(斯那奴次酒)를 보내 "[[가야]] 3개국의 재건을 위해 필요한 병력과 군량을 같이 의논하고자 자주 소집했던 것인데, 너희가 좀처럼 오지 않아 협의할 수 없었다"며 성냈다. * 544년 2월, 백제는 내쫓기로 결정한 카와치노 아타히, 이나사, 마도 등의 [[안라왜신관]] 관료들을 소환해 가야 3개국 멸망의 책임을 물으며 온갖 비난을 퍼부은 뒤 [[왜국]]으로 보냈다.[* 《[[일본서기]]》 원문을 보면 백제가 정말 화가 났음을 알 수 있는데, 왜곡을 배제한 원문은 다음과 같다.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오직 너의 악평만 들어 왔다. 너의 선조 나기타 갑배(那奇他甲背)와 [[기생반숙녜|가렵직기 갑배]](加臘直岐甲背)도 다같이 간계를 품고 거짓을 말하였다. 이카카노 키미(爲哥可君)가 그 말을 믿고 국난을 걱정하지 않고 내 뜻에 반하여 방자하게 포악한 짓을 저질렀다. 이 때문에 쫓겨났으니 전적으로 너희의 책임이다. 너희들은 임나에 머물면서 항상 나쁜 짓을 하였고, 임나가 나날이 쇠퇴해 간 것은 오로지 너희들 때문이다. 너희들은 비록 하찮을지라도 작은 불이 산야를 태우고 마을로 번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너희의 악행 때문에 임나가 패망한 것이다. 이제 너희들의 본거지로 돌아가도록 하라."] * 544년 2월, 안라왜신관은 결국 "그동안 [[긴메이 덴노|왜왕]]이 우리를 붙잡아 놓았다가 사신 이카노 오미(印哥臣)와 함께 [[신라]]로 가라고 명령했기에 어쩔 수 없이 가지 못했다"며 항복하고 회의에 참석하겠다는 의사를 표명했다. * 544년 3월, 백제는 우선 급한 대로 나솔 아탁득문(阿乇得文), 기마(奇麻), 모노노베노 카히(物部哥非) 등을 보내 [[왜국]]과 합의를 시도했다. 백제는 우선 [[안라왜신관|왜신관]]의 이나사와 마도가 회의 진행을 방해하였고, 이쿠하노 오미, 키비노 오미, 카와치노 아타히 등은 [[신라]]로 가기 위해 [[긴메이 덴노|왜왕]]에게 허위 보고[* 백제 측 주장에 따르면, [[탁순국]]이 신라에게 멸망한 뒤 [[안라국|안라]]와 신라는 그 부근인 [[함안군/행정#s-2.1|구례산]](久禮山)을 경계로 서로의 땅을 침범하지 않은 채 농사를 짓고 있었으며, 백제는 신라가 [[거도|열병 행사를 통해 안라를 공격]]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군사를 여러 차례 보내 방어해 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이쿠하노 오미 등 왜신들은 왜왕에게 "예전에는 [[안라국|안라]]가 신라에게 핍박당해 백성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었고 백제도 멀리 있어 도와줄 수 없었는데, 우리가 [[신라]]에 다녀오고 나서야 마음 놓고 논밭을 경작할 수 있게 되었다"고 허위 보고를 한 것이었다.]를 했다며 그간의 사정을 설명했다. 그런 다음 해당 왜신들이 계속 [[안라국|안라]]에 머무르면 가야 3개국의 재건은 어려울 것[* 특히 좌로 마도에 대한 언급을 많이 하였는데, 마도가 [[신라]]의 관등인 [[나마]]의 예관을 쓰고 밤낮으로 신라의 영토에 거리낌 없이 드나드는 등 친신라 활동을 계속하는 것을 비판하였다. [[탁기탄]]의 [[함파한기]]와 [[탁순국]]의 마지막 군주도 [[신라]]와 내통하여 나라를 망하게 했으니, 이대로 가다가는 [[가야]] 연맹이 전부 멸망해버릴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이라 주장하며 그들을 본국으로 귀환시키라고 요청하였다. 그러나 왜국은 백제와 [[안라국|안라]] 사이에 끼여 별다른 답을 해주지 못했다. 안라는 끝까지 자립 시도를 포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 544년 10월, 백제의 외교관들이 왜국에서 돌아왔다. 결국 안라의 승리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