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시찬요 (문단 편집) == [[한국]]의 농서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 == [[파일:사시찬요초.png]] [[조선]]의 7대왕 [[세조(조선)|세조]]의 명으로 1450년대에 [[금양잡록]], [[촌담해이]] 등의 저자로 유명한 [[강희맹]]이 저술한 한국의 농서. 위에서 설명한 중국의 농서 사시찬요와는 내용이 많이 다른 한국의 농서이다. 강희맹은 당시 유명한 예술가였던 [[강희안]]의 동생으로 명문가이며 농학가인 권문세가 출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사를 직접 체험하고 관찰하였으며 관직을 버릴 생각까지 할 만큼 농사일에 흥미를 가지고 살았다. 이에 전문가 이상의 구체적이고 혁신적으로 당대의 농업문화 및 기술을 총체적으로 분석하였다. [[농사직설]](農事直說)이나 [[금양잡록]](衿陽雜錄)에 없는 주곡 이외의 원예, 특작, [[축산]], 농산가공 등을 다양히 다루었다는 면에서 15세기 농서의 부문간 균형을 이룰 수 있게 하였고, 둘째로 채소는 주곡 못지않게 중요한 작물임에도 만일에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에 관련된 기록이 없었다면 기술사적으로 15~16세기의 기록이 없이 17세기 초의 [[한정록]](閑情錄)과 같은 농서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따라서 이 책은 그 취약점을 보충하고 대신해 준다. 또한 우리나라 실정에 맞도록 초록한 농서로 우리나라 독자성을 내보인 책이다. 이런 점에서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는 우리에게 대단히 귀중한 15세기 농업기술의 분석 자료로 평가된다. 위에 설명된 사시찬요에는 없는 양계나 대나무 재배술을 [[농상집요]](農桑輯要)에서 초록하였고 봄 가뭄이 들 때의 볍씨 파종은 [[농사직설(農事直說)]]에서, 그리고 양잠술은 [[양잠경험촬요]](養蠶經驗撮要)와 농상집요(農桑輯要)에서 초록하고 있다. 그리고 과수, 화훼, 경제수는 그의 형 강희안이 쓴 [[양화소록]](養花小錄)의 내용을 참고하고 있다. 그리고 그 내용이 [[한반도]] 풍토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다. 한국식 한자이름 등이 나와서 한국어 연구에도 중요한 연구자료로 사용된다. 강희맹의 사시찬요는 [[한국사(교과)|한국사]] 시험문제로도 자주 출제된다. * [[http://www.koreantk.com/ktkp2014/agriculture/agriculture-view.view?artNo=0110100000048|한국전통지식포탈 : 강희맹의 농서 「금양잡록(衿陽雜錄)」과 「사시찬요초(四時纂要抄)」의 편찬 의의]] [[분류:중국]][[분류:조선의 도서]][[분류:규장각 소장품]][[분류:서울특별시의 문화재]][[분류:예천군의 문화재]][[분류:대한민국의 보물]]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