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약 (문단 편집) == 일화 == '''사약 몇 사발 정도로 죽지 않은 경우가 꽤 많다'''. 때문에 약은 상기했듯 '''절대 일인분만 가져가지 않는다'''. 한 잔을 마시고도 멀쩡한 경우가 워낙 많아 여분을 챙긴 것. 하지만 그보다는 그냥 '''활줄을 풀어 목을 졸라 죽이곤 했다'''. 어쨌든 시신은 온전하니까. 다만 [[송시열]]처럼 한 정파의 영수쯤 되는 거물 정치인들은 '''감히''' 활줄로 목을 조르지 못해 애를 먹였다. * 단종은 사사 대신 [[교살]] 당한 것으로 기록된 첫 번째 인물이다. 다만 세조 당시에는 단종을 사사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공식적인 기록으로는 [[숙종실록]]에서야 비로소 "사약을 가져간 금부도사 [[왕방연]]이 말을 못 잇고 있자 영월 관아의 공생이 활줄을 풀어 목졸라 죽였다."는 언급이 등장한다. * 위에도 나온 일화지만 연산군 시절의 영의정 윤필상은 비상을 타먹고도 죽지 않아서 목을 맸다. 중종 대의 권신이었던 이항 역시 사약을 먹고도 죽지 않아서 교살했다. * 중종~[[명종(조선)|명종]] 때의 문신 [[임형수]]는 강단 있는 선비로서 [[윤원형]]의 집요한 미움을 사 [[을사사화]] 때 파직&[[유형#s-2|귀양]]을 간 이후,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80585&mobile&categoryId=1592|양재역 벽서 사건]]으로 누명을 쓰고 유배지에서 사사되었다. [[조선왕조실록]]에서는 사약을 가져온 의금부 서리에게 "그대도 한 잔 마시겠는가?"라며 사약을 권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또 [[http://terms.naver.com/entry.nhn?docId=540694&mobile&categoryId=1592|《유분록》]]에 의하면 큰 사발에 술을 가득 탄 사약을 '''16사발'''을 먹고도 죽지 않아 2사발을 더 마셨고, '''그래도 죽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이항처럼 목을 졸라 죽였다고 한다.[[http://blog.daum.net/segon53/15859685|#]] [[이두호]]의 만화 《임꺽정》에서 이 장면을 잘 묘사하는데, 호걸이었던 임형수는 금부도사와 농담 따먹기를 하는 것은 물론이고, 사약을 가져온 사람에게 내밀면서 당신도 먹어보겠냐고 했다든가 목을 조를 때조차 목침(나무베개)을 가지고 장난을 치며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는 배포를 뽐내었다고 한다. 혀를 길게 빼며 죽는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다며 살고 있던 귀양처 집의 벽에 구멍을 뚫고 밧줄을 집어 넣으면 자신이 들어가 스스로 목에 밧줄을 걸 테니 그 줄을 당겨 목졸라 죽여 달라고 한다. 금부도사도 그 부탁을 들어 주어 "당기시오"라는 임형수의 말을 신호로 병사 2~3명이 죽어라 밧줄을 당겼는데, 한참 후에 들어가 보니 밧줄에 걸린 건 임형수의 목이 아니라 목침이었다. 그는 벙찐 표정의 금부도사 일행을 보며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물론 그 다음엔 장난 안 치고 조용히 최후를 맞았다. * 숙종 때의 [[송시열]] 또한 사약을 먹고도 죽지 않아 입에 상처를 내고 거기에 사약을 넣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평소 송시열은 [[요로법|오줌으로 건강을 유지했는데]], 그게 부작용을 일으켜 몸에 독소가 쌓이자 정적이었던 남인의 영수 허목에게 아들을 보내 처방을 부탁했는데 허목은 "약은 무슨 비상이나 한숟갈 먹으라지."하고는 들어가 버렸다고 한다. 분개한 아들이 돌아와 허목이 한 얘기를 전하니 송시열이 비상을 가져오라고 하자. 딱 봐도 정적이 독극물을 처방해줬다는 점 때문에 주위에서 모두 말렸는데도 송시열은 "허목은 그럴 사람이 아니다."라며 비상을 먹었고 어째선지 병이 나았다고 한다. 아무래도 비상이 잘 받는 체질이었던 모양.[* 조금 다른 버전으로 허목이 약을 처방해준 걸 아들이 가져오다가 수상해서 열어보니 독극물인 비상이 있길래 그걸 멋대로 덜어냈고, 그랬더니 송시열의 상태가 나빠져서 결국 사과하고 다시 제대로 된 처방을 받아왔더니 그제야 나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이야기처럼 사약에도 내성(?)이 있는지 송시열이 사약 두 사발을 먹고도 끄떡않자 서인의 거두이자 당대 정국의 중심이었던 송시열의 주변을 문인들이 둘러싸고 있었던지라 차마 목을 매서 죽일 수는 없었던 금부도사가[* 그건 둘째 치더라도 원래 사회적 명망이 있던 인물들은 함부로 교살할 수가 없었다. 원래 [[남인]]들은 송시열을 국문해 때려죽이려다가 경로 우대 차원에서 사약으로 바꾸었는데도 당시 [[노론]]을 비롯한 [[소론]]에서도 반발이 엄청 심했다.(결국 남인에 온건했던 소론 수장 박세체의 제자들은 이 일을 계기로 노론으로 전향했고, 역시 소론 영수 남구만이 원칙론을 내세우며 남인에게 온건책을 내자 젊은 소론 문인들이 반발해 소론을 탈퇴한다.) 이런 상황에서 금부도사가 철판깔고 교살했다치더라도, 정국이 바뀌면 필연적으로 제자들이 눈에 불을 켜고 복수할 텐데 주 타겟이 누가 될지는 뻔하다. 게다가 송시열은 사약받는 당시에 수제자 [[권상하]]를 포함한 수많은 제자와 문인, 추종자들이 그의 임종을 지켰다.] "'''대감, 제발 죽어주십시오.'''"라고 애원했다. 결국 입에 상처를 내고 사약 세 사발을 연속으로 마시고 나서야 최후를 맞았다고 한다. * [[희빈 장씨]]가 사약을 받을 때, '''깽판을 부리면서 끝까지 저항'''한 것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많은데 이건 2000년대까지의 장희빈을 소재로 한 사극들이 [[인현왕후전]]이나 [[연려실기술]] 같이 장희빈에 대해 부정적으로 언급한 야사들을 참고하면서 극적인 효과를 위해 그렇게 연출한 것이지, 정작 조선왕조실록과 [[승정원일기]]에서는 장희빈이 '''표독스럽게 저항했다는 기록 자체가 없다'''. 사실이라면 사관이 기록하지 않을 리가 없다. 그래서인지 2010년대 장희빈 관련 드라마에서는 정사서의 내용을 일정부분 반영하여 조용히 마시는 장면으로 바뀌어가고 있다. * 1995년 SBS 사극 <[[장희빈(SBS)|장희빈]]>에서는, 표독스럽게 눈을 치켜 뜨고 숙종을 노려보았고 경악한 숙종이 "한 그릇 더 부어라!"라고 명령하여 자그마치 세 그릇을 입에 붓고 나서야 최후를 맞는 장면이 나온다. 이는 야사를 반영한 것으로, 사실 야사 자체가 서인계 사관에게 남인계의 장희빈을 공격하느라 퍼뜨린 풍문일 가능성이 크다. * [[김혜수]]가 장희빈으로 출연한 KBS 사극 <[[장희빈(KBS)|장희빈]]>에서는 장희빈이 사약을 먹으려 하지 않자 '''문짝으로 몸을 누르고 들이 부어 먹이는 장면'''이 있었다. [[http://cfile2.uf.tistory.com/image/144F791B4B591CF13FFEB7|짤방으로 좀 알려진 사진]] 이 때 조연 배우들이 꽤나 고생했다고 한다. 김혜수가 마구 몸부림을 치며 사약을 거부하는 연기를 실감나게 하는데, 그는 어린 시절부터 태권도로 몸을 단련했는지라 힘이 상당히 좋아서 조연들이 실제로 몸을 붙잡으며 먹이는 장면을 찍어야 했기 때문이다. 김혜수 이전의 장희빈 시리즈에서도 저런 식으로 사약을 먹이는 장면이 나오며 야사에서도 비슷한 내용이 적혀 있긴 하나 정사에는 없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파일:external/www.wikitree.co.kr/img_20100927231217_2d9db895.jpg|width=100%]]}}}|| * 2010년에 방영한 <[[동이(드라마)|동이]]>의 장희빈(이소연)은 위와 반대로 자발적으로 사약을 요청하고, 사약이 도착하기 직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품위 있게 [[https://youtu.be/fXgJTdY0x4E|원샷]]한다. * 2014년 드라마 <[[장옥정, 사랑에 살다]]>의 장희빈(김태희)도 자진하여 사약을 요청했으며, 희빈 장씨가 사약을 마시기 전까지 숙종이 고민하다 달려가고, 끝내 진짜 마실 줄 몰랐다면서 희빈 장씨를 부여잡고 오열하는 장면이 나온다. [[https://youtu.be/rDB3O1-PYso|[[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18]]]] * <[[여인천하]]>에서도 사약을 마시지 않으려고 발버둥치는 [[경빈 박씨(중종)|경빈 박씨]]에게 항아리째로 입에 사약을 들이붓는 장면이 나왔다. 사실 조선시대의 [[후궁]]은 죄인이라도 '''왕의 여인'''이기 때문에 다른 남정네가 후궁의 몸을 만질 수 없었으며, 사대부 아녀자급 이상의 여자를 사사할 땐 사약을 방 안에까지 전달해서 방 안에서 절하고 마셨으므로 사실과 다르다. 제작 비화에 의하면 경빈 박씨의 최후를 실감나게 연출하기 위해 일부러 각색했다고 한다. 이때 사약으로 사용된 소품은 김빠진 콜라였는데, 하도 많이 들이붓다 보니 경빈을 연기한 [[도지원]]의 코와 입에 콜라가 마구 들어가는 바람에 깜짝 놀라 엉엉 운 것이 비하인드 장면에 나왔다. || {{{#!wiki style="margin: -5px -10px -5px" [[파일:external/dimg.donga.com/6851527.1.jpg|width=100%]]}}}|| * 의외로 사사 장면의 역사 반영도가 우수한 쪽은 JTBC <[[꽃들의 전쟁]]> 45회 [[민회빈 강씨]]의 사사 장면이다. 강빈이 방 안에서 사약을 받고, 사약 한 사발을 다 마셨음에도 피만 토할 뿐 숨이 끊어지지 않아 고통스러워한다. [[https://youtu.be/xha-XnMtrS4|[[파일:유튜브 아이콘.svg|width=18]]]] 강빈의 외당숙인 송준길[* 강빈의 친정은 풍비박산났다.]이 사약을 더 가져오라 화를 내며 소리를 지르다 금부도사의 멱살을 잡을 정도.[* 다만 이것은 극 중에서 [[조얌전|얌전]]의 술수로 일부러 숨이 단번에 끊어지지 않게 조제된 것으로 묘사된다.] 결국 정황상 수 시간이 지나서야 숨이 끊어진 것 같은 묘사[* 날이 저물어 방 안이 어둑한데 오가는 대화의 분위기는 방금 전에 숨이 끊어진 것 같은 대화다.]가 등장한다. * 《[[맹꽁이 서당]]》에 나오는 일화에서는 [[경종(조선)|경종]] 때 [[신임사화]](신임옥사)로 사약을 받고 죽은 [[조태채]](1660~1722)에 대한 이야기가 있다. 조태채의 하인 홍동석은 본래 [[형조]]의 서리[* 하급 공무원으로 글재주가 있는 천민들이 권세가의 도움으로 더러 이 자리에 오를 수 있었다.]였다. 어느 날 죄인 누구를 유배 보낸다는 조서를 쓰라고 해 확인해보니 자신의 상전인 조태채가 아닌가. 하인된 몸으로 상전을 배신할 수 없어 붓을 집어던지고 절대 못 쓴다 강력 거부하자 열받은 소론 대신 둘에게 두들겨 맞고 반병신돼 서리직에서 내쫓겼다. 동석은 처자식까지 두고 진도까지 가는 조태채를 충실히 모셨으며 그 뒤 조태채에게 결국 사약이 내려지고, 아들인 조관빈은 부랴부랴 부친과 만나고자 출발했지만 금부도사가 먼저 도착한 뒤였다. 동석은 마지막으로 부자 상봉할 시간을 달라고 간청했음에도 금부도사가 거절하자 결국 [[밥상 뒤집기|사약을 뒤엎어버렸다.]] 왕이 내린 사약을 뒤엎은 것은 대역죄에 해당하여 당연히 금부도사 일행은 동석을 실컷 두들겨팼지만, 금부도사와 수행원들도 [[어명]]을 제대로 완수 못한 죄로 처벌을 면치못해 할 수 없이 이들은 조태채의 조언에 따라 진도로 가는 바닷길이 험해 배가 심하게 흔들리는 바람에 그만 사약을 물에 빠뜨렸다고 거짓으로 보고해,[* 사실 맹꽁이 서당에서도 언급하지만 거짓 보고 역시 기군망상죄(임금을 속인 죄)로 역모죄나 마찬가지다. 그러나 사약을 엎은 일이나 사약 엎은 걸 숨기고 거짓말한 일이나 둘 다 목이 날아가는 일이라면 적어도 후자 쪽은 들키지만 않으면 살 가능성이 있으니 후자를 택한걸로 보인다.] 새 사약이 오는 며칠 사이 부자가 상봉할 수 있었다. 조태채는 아들에게 홍동석을 형제처럼 대하라는 유언을 남긴 다음 사약을 마시고 세상을 떠났고, 조관빈은 유언대로 하인을 면천시켜주고 형제처럼 대하며 자주 왕래하고 챙겨주었으며, 조태채의 제사 때도 꼭 참석시켰다고 한다. 항아리 하나 분량을 다 쏟았을지는 좀 의문이긴 하지만, 그걸 떠나서 이런 일화가 전해지는 것은 조태채가 노론 4대신에 포함될 정도의 거물이라서 그렇다. 그게 아니었다면 당연히 활줄 크리였을 것이고 그 머슴은 오히려 조태채 집안 사람들에게 네가 섣부르게 나섰다가 사약 먹고 죽을 것을 목 졸려 죽었다면서 맞아 죽었거나, '''[[대역죄인|왕명에 대한 직접적인 반항]]'''이기 때문에 목이 달아났을 수도 있다. 그런데 결국 일화가 전해진 걸 보면 누가 불었다는 소리인데, 과연 누가 어떻게 했을지 알길이 없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인 조태채와 함께 노론 4대신이었던 이이명의 사례가 있기에 전해지지 않았나 한다. 이이명의 집안은 이이명의 손자까지 연루되어 일가가 몰살당할 판이었는데, 이 상황에서 이이명의 아내가 손자라도 살리기 위해서 손자와 나이와 용모가 비슷한 노비에게 부탁해 이이명의 손자인 것처럼 위장해서 죽게 하고 손자는 몰래 빼돌렸다. 나중에 영조가 즉위해 노론 정권이 수립되자 손자는 돌아와서 가문을 이었고 영조는 이 소식을 듣자, 손자 대신 죽은 노비에게 상을 내렸다고 한다. 어찌 보면 조태채보다 훨씬 더 중죄를 진 집안도(사약을 엎는 것을 넘어서, 아예 벌 받을 죄인을 빼돌린 죄) 문제시되지 않고, 도리어 상을 받았으니 조태채의 이야기도 노론 집권 이후에 전해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촬영 소품으로 등장하는 사약은 몸에 좋으라고 홍삼즙 같은 걸 사용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탕약의 경우 얼룩이 지워지지 않기 때문에 김빠진 콜라를 많이 사용했다. 커피가 한국인의 식생활과 밀접해진 뒤에는 [[카페 아메리카노|아메리카노]]도 사용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