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육신 (문단 편집) == 사형과 후일담 == 성삼문·이개·하위지·김문기·박중림·성승·유응부·박쟁·권자신·윤영손·송석동·이휘·석을중·아기지[* 단종의 유모가 데리고 있던 하녀.]·불덕[* 권자신의 어머니가 데리고 있던 하녀.]은 낙형[* 불에 달군 쇠로 죄인의 맨살을 지지는 형벌]을 당한 후 군기시 앞에서 백관들이 지켜보던 가운데 [[거열형]]을 당하였다. 박팽년은 고문 중에 사망했고 [[유성원]]은 잡히기 전에 자기 집 사당에서 칼로 목을 찔러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부관능지|이후 박팽년과 유성원의 시신 또한 거열형을 당했다.]] 거열형을 당한 이들은 3일간 효수되었는데, 어두운 새벽을 틈타 [[생육신]]의 한 사람이던 [[김시습]][* 혹은 성삼문의 사위 박임경.]이 이들의 시신을 수습, [[한강]]을 건너 [[노량진]]에 이들의 묘를 만들게 된다. 이 묘는 [[사육신묘]]의 시초가 된다. 또한 사육신의 가문들은 모두 개박살나서 친자식은 모조리 교형, 모친과 딸, 처첩, 조손, 형제 자매와 아들의 처첩은 변방의 노비, 이중에서 나이 16세 미만은 외부에 보수라고 하여 보증인이 신분을 보증하는 조건으로 방면하였다가 나이가 되면 [[https://ko.m.wikipedia.org/wiki/위리안치|위리안치]]하게 하였다. 나중에 연결된 이들의 친자로 15세 미만의 경우도 보수하였다가 관노가 된다. 이때 관련된 부녀들의 상당수는 대신들의 노비로 넘어갔고, 그들의 전지의 상당수 역시 대신들에게 넘어간다. 이외에도 이미 결혼한 부녀의 경우는 별로 손을 대지 않아, 이미 시집가 있던 딸들은 화를 면했다. 예외적으로 사육신은 아니지만 그들과 동조했던 권자신과 현덕왕후의 어머니는 당시 기준으로 (현재 기준으로는 중년이다.)고령에다 남편인 권전도 이미 죽은 미망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현덕왕후의 어머니이자 단종의 외할머니라는 사실 자체가 세조와 공신들에게 눈엣가시여서 그런지 사형을 피하지 못했다.[* 그래도 [[권람]] 같이 안동 권씨임에도 세조의 협력자인 경우도 있고 해서 그런지, 권자신은 처형은 당했어도 누나인 현덕왕후와 달리 직계자손이 겨우 살아남아서 대를 잇는데 성공했다. 사실 조카인 경혜공주만 해도 정미수를 낳아서 문종과 현덕왕후의 직계가 모계로나마 남을 수 있는 여지가 있었으나 정작 정미수는 인생의 고난 때문인지 끝내 자식을 한명도 남기지 못한채 사망하였고 그대로 문종과 현덕왕후의 후손은 직계,방계,모계 할것없이 모두 통틀어 단절되고 말았다.] 그래도 사실 이 정도에서 끝난 것도 다행일지도 모른다. [[갑자사화]] 때는 아예 8촌까지 싸그리 몰살당한 집안도 있다. 특히 친자식이나 모친과 딸, 처첩, 조손, 형제 자매와 아들의 처첩, 심지어 시집가 있던 딸들의 집안까지 모조리, 문자 그대로 박살(撲殺)을 냈다. 이는 정말 끔찍한건데 진짜 반역을 저지른 사람도 그 친척 중 여자는 일단 목숨만은 건지게 했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엄청나게 잔혹한 처벌이다. 실제로 사육신의 경우에는 직계 후손만 끊긴 경우가 있다면 이쪽은 직계를 비롯한 다른 친족들도 대가 끊겼다. 그 갑자사화의 주된 피해자들이 조상이 계유정난에 가담하여 승승장구한 정난공신가문이었음을 감안하면 정난공신들의 업보인 셈이다. 시집간 딸들은 화를 면했으므로, 황보인이나 박팽년의 외손들은 성종대가 되면 고위관직에 올랐다는 식의 이야기가 돌기 시작한다. 직계 후손이 살아남은 것은 박팽년과 하위지 뿐으로 박팽년은 손자 박일산, 하위지는 살아 남은 조카 중 한 명인 하원이 하위지의 양자로 입적해 대를 이어나갈 수 있었다. 직계를 제외한 친족들은 10여 년을 노비로 살아가다가 세조가 승하하기 이틀 전에야 사면을 받아 원래 신분을 회복했다. 직계를 제외한다면 여기에 성삼문의 사촌들과 유성원의 조카 몇 명 정도가 더 살아남았지만 이들 중에서는 하위지 집안처럼 양자로 입적한 사람이 없었다. 박일산이 살아남은 것은 정말로 천운으로 그야말로 [[http://www.hadongsinmoon.com/bbs/board.php?bo_table=poem&wr_id=1103|전설 같은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하지만 위에서도 언급했지만 진짜로 복중태아였다면 그 아이가 죽을 일은 없다. 위와 아래에서도 보이지만 유아는 죽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래 노비 분배기에도 언급되지만 박순의 아내는 옥덕이라는 이름으로 '''구치관에게 노비로 주어진다'''. 해당 일화는 [[이덕무]]의 [[https://encykorea.aks.ac.kr/Contents/Item/E0056701|청장관전서]]에 등장하는데, 이 기록은 한참 후대의 일로 말 그대로 전설일뿐이다. 하위지의 가문은 미성년자였던 조카 하분, 하포, 하원이 목숨만은 건질 수 있었고 대신 변방으로 유배가게 되었다. 하분은 일찍 죽어 화를 입지 않은 형 하강지, 하포, 하원은 동생 하기지의 아들이다. 하기지에게는 아들이 둘 있었으므로 하포는 생부인 하기지의 대를 잇고 하원은 사형 직전에 하위지로부터 자신의 재산을 물려받을 상속자로 지명되어 그의 친필 유언장을 받고 세조 말년에 방면되어 성인이 된 후 하위지의 양자로 들어가 대를 잇게 되었다. 앞서 언급된 유언장은 하씨 집안에서 대대로 보전하다가 안동에 있는 한국 국학진흥원에 기탁하였다. 조선 전기 고문서 대부분이 [[임진왜란]]을 거치면서 다 타버려 현대에 전해지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매우 귀중한 유물이기도 한 셈. 성삼문의 경우를 보면 아들들은 물론 조카들과 종손들까지 모두 처형 당해 직계가 단절되었으니 그나마 나은 경우다. 세조의 후궁이었던 [[근빈 박씨]]는 박팽년과의 누이라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근빈 박씨는 [[선산 박씨]], 박팽년은 [[순천 박씨]]로 본관부터 다르다. 한국의 박씨들이 [[신라]] 왕가였던 [[경주 박씨]]를 공통의 대시조로 삼고 있다는 점만 제외하면 두 본관은 전혀 접점이 없는 남남 사이나 마찬가지다. 사육신 가문의 여성들은 공신의 노비와 관청의 기생, 관비로 분배되었다. 공신의 한 사람인 권람은 자신의 5촌 조카딸인 권영금을 분배받는 식으로 일부 친족에게 정속된 여성들도 있었지만, 대부분 공신가의 종으로 분배되었다. 사육신은 절개를 지키다 죽었지만 사육신 가문의 여성들은 대부분 공신들에게 하사되어 공신의 첩이 되었다. [[세조실록]]에는 절개를 지키지 않고 공신의 첩이 된 여성들을 비판한 기사가 수록되어 있었지만, 사육신 가문의 아내와 딸을 노비로 하사받은 공신들에 대해 비판하는 기록은 실리지 않았다. 그 중에서 박팽년의 형수로 봉석주의 첩이 된 윤씨는 윤연령의 딸이며, 후일 선조 때의 형제 정승 윤근수, 윤두수 형제의 증대고모가 된다. 윤씨는 난신에 연좌된 부녀자들의 존재가 언급된 기사에는 나타나지 않던 여성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녀가 봉석주의 첩이 되기를 자처한 것 등만 문제시되어 지탄의 대상이 되었다. 아래는 [[조선왕조실록]]에 기록된 [[계유정난]] 등 세조 등극 과정에서 살해당한 대신들의 가족들과 사육신 가족들 거취다. [[세조실록]] 5권, 세조 2년 9월 7일 갑술 4번째 기사 1456년 명 경태(景泰) 7년 > 의금부에 난신에 연좌된 부녀를 대신들에게 나누어 주게 하다. 의금부(義禁府)에 전지하기를, 난신(亂臣)에 연좌(緣坐)된 부녀(婦女) 내에 > >> 이소동(李小童)의 아내 천비(千非), 이공회(李公澮)의 아내 동이(同伊), 심상좌(沈上佐)의 아내 미비을개(彌飛乙介)·딸 계금(繼今)은 계양군(桂陽君) 이증(李璔)에게 주고, >> 이담(李湛)의 아내 소사(召史), 박기년(朴耆年)의 아내 무작지(無作只), 이오(李午)의 딸 평동(平同), 이유기(李裕基)의 누이 효전(孝全)은 익현군(翼峴君) 이관(李璭)에게 주고, >> 박팽년(朴彭年)의 아내 옥금(玉今), 김승규(金承珪)의 아내 내은비(內隱非)·딸 내은금(內隱今)·첩의 딸 한금(閑今)은 영의정(領議政) 정인지(鄭麟趾)에게 주고, >> 조청로(趙淸老)의 어미 덕경(德敬)·아내 노비(老非), 최득지(崔得池)의 아내 막덕(莫德), 이현로(李賢老)의 첩의 딸 이생(李生)은 좌의정(左議政) 한확(韓確)에게 주고, >> 이현로(李賢老)의 아내 소사(召史), 민보창(閔甫昌)의 아내 두다비(豆多非), 김유덕(金有德)의 아내 금음이(今音伊)·딸 옥시(玉時)는 우의정(右議政) 이사철(李思哲)에게 주고, >> 성삼문(成三問)의 아내 차산(次山)·딸 효옥(孝玉), 이승로(李承老)의 누이 자근아지(者斤阿只)는 운성 부원군(雲城府院君) 박종우(朴從愚)에게 주고, >> 황보흠(皇甫欽)의 아내 석을금(石乙今), 박쟁(朴崝)의 아내 오덕(吳德)·딸 효비(孝非)는 좌찬성(左贊成) 윤사로(尹師路)에게 주고, >> 이유기(李裕基)의 아내 설비(雪非)·딸 가구지(加仇之)·말비(末非)·막금(莫今), 성삼고(成三顧)의 아내 사금(四今) 및 한살 된 딸은 우찬성(右贊成) 정창손(鄭昌孫)에게 주고, >> 이승윤(李承胤)의 아내 가은비(加隱非), 지화(池和)의 아내 막금(莫今)은 파평군(坡平君) 윤암(尹巖)에게 주고, >> 이휘(李徽)의 아내 열비(列非), 허조(許慥)의 아내 안비(安非)·딸 의덕(義德)은 전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이계전(李季甸)에게 주고, >> 이자원(李滋源)의 아내 유나매(維那妹), 이개(李塏)의 아내 가지(加知)는 우참찬(右參贊) 강맹경(姜孟卿)에게 주고, >> 이윤원(李潤源)의 첩 분비(粉非), 이경유(李耕㽥)의 아내 효생(孝生)은 판중추원사(判中樞院事) 이징석(李澄石)에게 주고, >> 박인년(朴引年)의 아내 내은비(內隱非), 정효강(鄭孝康)의 아내 보배(寶背)는 화천군(花川君) 권공(權恭)에게 주고, >> 원구(元矩)의 아내 소사(召史), 고덕칭(高德稱)의 아내 보금(甫今)·딸 신금(信今)은 우참찬(右參贊) 황수신(黃守身)에게 주고, >> 이해(李諧)의 아내 종금(終今)·딸 불덕(佛德)·불비(佛非), 김유덕(金有德)의 누이 막장(莫莊)은 예조판서(禮曹判書) 박중손(朴仲孫)에게 주고, >> 최면(崔沔)의 누이 선비(善非), 조완규(趙完圭)의 아내 소사(召史)·딸 요문(要文)은 병조판서(兵曹判書) 신숙주(申叔舟)에게 주고, >> 이석정(李石貞)의 아내 소사(召史), 권자신(權自愼)의 아내 어둔(於屯)·딸 구덕(仇德)은 중추원 사(中樞院使) 권준(權蹲)에게 주고, >> 우직(友直)의 아내 오대(五臺), 김현석(金玄錫)의 아내 영금(英今)은 이조판서(吏曹判書) 권람(權擥)에게 주고, >> 윤영손(尹令孫)의 아내 탑이(塔伊)·딸 효도(孝道), 이반경(李反敬)의 첩 막생(莫生)은 중추원 사(中樞院使) 박강(朴薑)에게 주고, >> 김문기(金文起)의 딸 종산(終山), 최득지(崔得池)의 첩 지장비(地莊非)는 대사헌(大司憲) 최항(崔恒)에게 주고, >> 성삼성(成三省)의 아내 명수(命守), 정효강(鄭孝康)의 아내 효도(孝道)·딸 산비(山非)는 병조참판(兵曹參判) 홍달손(洪達孫)에게 주고, >> 성맹첨(成孟瞻)의 아내 현비(現非), 최사우(崔斯友)의 첩 옥금(玉今)은 판내시부사(判內侍府事) 전균(田畇)에게 주고, >> 심신(沈愼)의 아내 석정(石貞)·딸 금정(金正)·은정(銀正), 성승(成勝)의 아내 미치(未致)는 계림군(雞林君) 이흥상(李興商)에게 주고, >> 이의영(李義英)의 아내 효생(孝生), 조극관(趙克寬)의 아내 현이(現伊)는 도절제사(都節制使) 양정(楊汀)에게 주고, >> 박순(朴詢)의 아내 옥덕(玉德), 박헌(朴憲)의 아내 경비(敬非)는 이조참판(吏曹參判) 구치관(具致寬)에게 주고, >> 송창(宋昌)의 아내 소앙지(召央知), 황보석(皇甫錫)의 아내 소사(召史)는 전 예문제학(藝文提學) 윤사윤(尹士昀)에게 주고, >> 이말생(李末生)의 아내 관저(關雎)·딸 경비(敬非), 김문기(金文起)의 아내 봉비(奉非)는 도절제사(都節制使) 유수(柳洙)에게 주고, >> 박대년(朴大年)의 아내 정수(貞守), 송석동(宋石同)의 아내 소사(召史)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봉석주(奉石柱)에게 주고, >> 김승규(金承珪)의 딸 숙희(叔熙), 권저(權著)의 어미 보음미(甫音未)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강곤(康袞)에게 주고, >> 박계우(朴季愚)의 아내 소비(小非), 김승벽(金承壁)의 아내 효의(孝義)는 예조참판(禮曹參判) 홍윤성(洪允成)에게 주고, >> 류성원(柳誠源)의 아내 미치(未致)·딸 백대(百代), 이명민(李命敏)의 아내 맹비(孟非)는 좌승지(左承旨) 한명회(韓明澮)에게 주고, >> 황선보(黃善寶)의 아내 복중(福中)·딸 덕비(德非)는 우승지(右承旨) 조석문(曹錫文)에게 주고, >> 이호(李昊)의 아내 개질지(介叱知)·딸 목금(木今)은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유하(柳河)에게 주고, >> 윤처공(尹處恭)의 딸 숙비(叔非), 정원석(鄭元碩)의 아내 만금(萬今)은 이조참의(吏曹參議) 원효연(元孝然)에게 주고, >> 최치지(崔致池)의 아내 미치(未致), 최윤석(崔閏石)의 아내 봉비(奉非)는 단천군수(端川郡守) 최유(崔濡)에게 주고, >> 황선보(黃善寶)의 누이 소사(召史), 이유기(李裕基)의 딸 소근소사(小斤召史)는 형조참의(刑曹參議) 황효원(黃孝源)에게 주고, >> 조번(趙蕃)의 아내 소사(召史)·딸 의정(義貞), 황의헌(黃義軒)의 아내 복비(卜非)는 병조참의(兵曹參議) 한종손(韓終孫)에게 주고, >> 원구(元矩)의 누이 심이(心伊), 조완규(趙完圭)의 딸 가이(加伊)는 좌부승지(左副承旨) 윤자운(尹子雲)에게 주고, >> 윤위(尹渭)의 아내 소사(召史), 정관(鄭冠)의 아내 신경(信敬)은 우부승지(右副承旨) 한계미(韓繼美)에게 주고, >> 이의산(李義山)의 딸 소사(召史)·막금(莫今)은 경상도 관찰사(慶尙道觀察使) 조효문(曺孝門)에게 주고, >> 이정상(李禎祥)의 아내 삼비(三非)·딸 현비(現非)·정비(貞非), 최득지(崔得池)의 아내 마배(磨杯)는 겸 판통례문사(兼判通禮門事) 이극배(李克培)에게 주고, >> 윤경(尹涇)의 아내 소사(召史), 성삼빙(成三聘)의 아내 의정(義貞)은 판종부시사(判宗簿寺事) 권개(權愷)에게 주고, >> 봉여해(奉汝諧)의 어미 소비(小非)·아내 정순(丁順)은 상호군(上護軍) 유서(柳溆)에게 주고, >> 민보흥(閔甫興)의 아내 석비(石非), 이윤원(李潤源)의 아내 대비(大非)는 판군기감사(判軍器監事) 김질(金礩)에게 주고, >> 대정(大丁)의 아내 자근(者斤), 하위지(河緯地)의 아내 귀금(貴今)·딸 목금(木今)은 지병조사(知兵曹事) 권언(權躽)에게 주고, >> 이보인(李保仁)의 아내 물재(勿才)·딸 옥석(玉石)은 성균 사성(成均司成) 정수충(鄭守忠)에게 주고, >> 조완규(趙完圭)의 누이 정정(精正), 최사우(崔斯友)의 어미 소사(召史)는 상호군(上護軍) 유사(柳泗)에게 주고, >> 식배(植培)의 딸 귀비(貴非)·귀장(貴莊)·귀금(貴今)·소근비(小斤非), 유응부(兪應孚)의 아내 약비(若非)는 예빈시 윤(禮賓寺尹) 권반(權攀)에게 주고, >> 민신(閔伸)의 아내 우비(禹非)·딸 산비(山非)는 대호군(大護軍) 안경손(安慶孫)에게 주고, >> 이지영(李智英)의 어미 석을금(石乙今)·아내 종비(終非)·딸 은비(銀非)는 대호군(大護軍) 홍순로(洪純老)에게 주고, >> 송녕(宋寧)의 아내 소사(召史), 권저(權著)의 첩 복가이(卜加伊)는 대호군(大護軍) 조득림(趙得琳)에게 주고, >> 김감(金堪)의 첩 귀덕(貴德)·딸 소비(小非), 이양(李穰)의 아내 월비(月非)는 대호군(大護軍) 이극감(李克堪)에게 주고, >> 중은(仲銀)의 누이 귀덕(貴德)·딸 귀비(貴非), 장귀남(張貴男)의 누이 말비(末非)는 직예문관(直藝文館) 유자황(柳子滉)에게 주고, >> 정분(鄭笨)의 아내 순비(順非), 이석정(李石貞)의 첩 말생(末生)·딸 감물(甘勿)은 대호군(大護軍) 임자번(林自蕃)에게 주고, >> 대정(大丁)의 어미 내은이(內隱伊), 김감(金堪)의 아내 소사(召史)·딸 복금(卜今)·말금(末今)·아지(阿只)는 전 호군(護軍) 김처의(金處義)에게 주고, >> 최면(崔沔)의 어미 소사(召史)·아내 점물아지(占勿阿只)·딸 부허비(夫虛非)는 사복 소윤(司僕少尹) 한서귀(韓瑞龜)에게 주고, >> 최치지(崔致池)의 아내 덕비(德非)·딸 백이(白伊)는 전농 소윤(典農少尹) 송익손(宋益孫)에게 주고, >> 이승로(李承老)의 아내 효정(孝貞)·딸 숙화(叔和), 이오(李午)의 아내 소질지(少叱知)는 군기 부정(軍器副正) 설계조(薛繼祖)에게 주고, >> 이의산(李義山)의 아내 참군(參軍)·딸 아을금(阿乙今)은 사재 부정(司宰副正) 권경(權擎)에게 주고, >> 정관(鄭冠)의 어미 소사(召史), 장귀남(張貴男)의 누이 학비(鶴非)는 군기부정(軍器副正) 홍순손(洪順孫)에게 주고, >> 허조(許慥)의 어미 화산(花山)·누이 소근소사(小斤召史)는 겸 군기부정(兼軍器副正) 곽연성(郭連城)에게 주고, >> 권저(權著)의 아내 계비(季非)·딸 순비(順非)는 호군(護軍) 최윤(崔閏)에게 주고, >> 조순생(趙順生)의 아내 가질비(加叱非), 김선지(金善之)의 아내 내은이(內隱伊)·딸 가야지(加也之)는 전 부사직(副司直) 이몽가(李蒙哥)에게 주고, >>이석정(李石貞)의 딸 감상(甘尙), 최면(崔沔)의 누이 막비(莫非)는 도승지(都承旨) 박원형(朴元亨)에게 주라. > >하였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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