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이동문서 삭제토론 사진 (문단 편집) === 미술에 끼친 영향 === 사진의 등장은 미술계에 있어서 어마어마한 충격이었다. 사실성을 중시하던 기존 고전미술이 어떻게 해도 사실성으로는 이길 수 없는 상대와 맞부딪치게 된 것. 이로 인해 [[현대미술]]은 다른 방향으로 급선회하게 된다. [[19세기]] 후반부터 [[20세기]] 초반까지 [[인상파]], [[야수파]], [[추상화]], [[초현실주의]]같이 현실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작가의 독특한 관점, 감정, 생각을 부각시키는 미술사조들이 등장하게 된 이유 중 하나가 사진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사진의 극사실성에 도전하는 [[극사실주의]] 화풍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시대의 흐름을 거스르는데는 실패했다. 본디 사진은 회화의 복제수단 정도로 여겨졌다. [[레오나르도 다 빈치]]나 이후 [[19세기]]까지 사진기의 원형인 [[카메라 옵스큐라]]는 그림을 정확하게 그리기 위한 스케치 도구로 사용되었던 것. 그런데 사진기의 등장으로 인해 상을 옮기는 과정에 있어서 더 이상 인간의 손을 빌리지 않게 된 것이다. 사진은 또한 판화와도 유사한 측면이 있었다. 회화의 복제기술로서 판화는 [[18세기]]에 전성기를 맞게 되는데 시민사회의 발전과 더불어 생겨난 [[부르주아]] 계층이 문화생활을 즐기기 위해 회화를 소유하려는 움직임에서 비롯된 것이다. 그런데 이 시점에서 정밀하기로는 회화를 능가하고 복제하기 편하기론 판화를 능가하는 물건인 사진이 등장했으니 어땠겠는가? 값이 저렴한 [[카메라]]가 등장했을 때 유산계급의 지지를 받았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다보니 기존에 회화를 다루던 예술가들은 사진의 극사실주의적 재현에 감탄하면서도 그것이 예술이라기보단 단순히 현실을 재현한 기술의 산물이라고 여기고 반발했던 것이 당연했다. 그러나 이런 사진술의 발전은 얼마 지나지 않아 하나의 독창적인 예술의 개념, 원형의 벽을 허물게 된다. [[발터 베냐민]]이 말한 대로 문명의 발달로 새롭게 등장한 복제기술은 '지금', '여기' 밖에 없는 일품 일회성의 [[오리지널]]에 대한 신화([[아우라]])를 깨트리고 근대사회의 시민들이 눈뜬 평등의식과 직결되었다. 이와 더불어 사진은 새로운 미학적 사유를 펼치는 데도 도움을 주었다. 한 예로 [[롤랑 바르트]]는 예술로서 사진을 해석하는데 필요한 개념으로 [[스투디움]]과 [[푼크툼]]을 도입했다. 이런 경향은 현대에 있어서 복제품의 범람으로 오리지널에 대한 관심이 무디어지는 세태를 낳았으며, 현대 [[팝아트]]의 성립에도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일례로 사진의 등장 이후 사진으로부터 성립되었다고 해도 과연이 아닐 [[영화]] 같은 영상물, [[레코드]], [[텔레비전]] 등 새로운 시대의 대중예술은 처음에는 예술의 복제수단으로 여겨졌으나, 현대에는 각각 예술의 장르로서 자리 잡았다는 것을 볼 수 있다. 사진은 이러한 복제예술이라는 장르를 형성하게 만든 원동력이라고 할만하다. 순수사진(Fine art Photography)은 보기에 아름답고 뽀대나는 사진을 찍으려는 상업 사진쪽과 달리 '''예술'''적인 사진을 찍으려 한다.[* 구글로 검색해도 특정한 미술사진 작가를 검색하지 않는 이상 찾기 힘들다.] [[리처드 프린스]](Richard Prince), [[존 디볼라]](John Divola), [[프란체스카 우드먼]](Francesca Woodman), [[신디 셔먼]](Cindy Sherman) 등의 미술 사진작가들을 보면 도통 이해하기 힘들 뿐더러 자기만의 세계를 만든 것이라 왜 이게 작품인지 의문이 많을 것이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