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천왕사 (문단 편집) === 역사 === 서기 578년에 [[쇼토쿠 태자]]가 [[백제]]로부터 장인 세 사람을 받아들여 절인 시텐노지를 건축하게 하였고 593년에 완성되었다. 이는 [[호류지]]보다 이른 것이다. [[아스카데라]]가 역사상 일본 최초의 사찰이지만 사라졌다면,[* 지금 남아있는 것은 후대에 다시 창건된 것] 시텐노지는 최초의 관사이자 남아있는 가장 오래된 사찰이다. 그러나 1576년에 있었던 화재로 전체 가람이 완전히 소실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재건되었다. 이 때문에 건물 자체는 [[호류지]]가 더 오래되었다. [[에도시대]]를 거치면서 시텐노지 역시 계속 증축되었으며, 금당과 탑 등의 건축 양식 역시 바뀌었다. 사실상 사진으로 볼 수 있는 시기에 이르러서는 공포의 형식이나 기둥의 배치조차 바뀌어 지붕이나 하앙 정도만 옛 흔적이 남아있던 것으로 추측된다. 다만 가람의 배치만큼은 창건 그대로다. 지금도 시텐노지식이라고 함은 강당과 금당, 탑, 정문이 일직선으로 놓여져 있는 배치를 뜻하며, 백제식 [[가람]]배치라고 부른다. [[파일:attachment/Shitemple03.jpg|width=600]] 에도시대를 거친 근대의 시텐노지. 특히 지붕의 형태와 장식이 많이 변형되었다. 이후 1934년에는 태풍 등으로 큰 피해를 입었으나 복구하였지만 결국 [[태평양 전쟁]] 때는 미군의 폭격으로 인해 탑과 정문, 금당, 남측 회랑이 완전히 불타버렸다. 이후 일본 정부에 의해 셋 다 [[아스카 시대]]의 양식으로 고증하여 [[철근 콘크리트]]로 복원을 하고 말았다.(…) 양식을 되돌리는 것이야 종종 있는 일이지만 [[콘크리트]]라니... 콘크리트 건축물은 그 무게 때문에 기초공사를 하기 위해 땅을 다 파해쳐야 한다. 이 과정에서 과거의 흔적이 남아있는 주춧돌과 기단은 제거되기 때문에 문제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