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케 (문단 편집) == 역사 == [[백제]]의 수수허리[* 일본어로는 스스코리. 고사기에 따르면 일본의 진씨의 선조.]라는 사람이 일본 열도로 건너가서 양조기술을 가르쳐주었고 이 때부터 누룩을 이용한 양조법이 보급되기 시작되었다.[[https://style.nikkei.com/article/DGXMZO30295070Q8A510C1000000?page=2|#]] [[http://himeji.jibasan.jp/sake/history.html|#]] 이전까지 왜에서는 사람이 입으로 씹어서 [[쿠치카미자케|타액에 의해 발효시켜 만든 술]]을 마셨다. 나중에 진씨(秦,하타) 일족은 지금의 [[교토]] 일대에 정착했는데 지금도 교토에는 [[술]]의 신을 모시는 [[http://www.matsunoo.or.jp/|마츠노대사]](松尾大社)와 사가신사(佐牙神社)가 있다. 마츠노대사는 이 일대에 정착한 하타 일족이 만든것이며[[https://jp.sake-times.com/knowledge/culture/sake_g_matsuotaisya_and_hatauji|#]] [[https://souda-kyoto.jp/blog/01001.html|#]] 사가신사에서도 수수허리를 술의 신으로 모시고[* 사가신사에서 모시는건 증증보리라는 다른 사람으로 보기도 한다. 증증보리는 일본의 신찬성씨록에 나오는 인물인데 이 인물도 한국에서 건너왔다고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증증보리도 일본발음으로는 스스호리로 스스코리와 매우 유사해서 동일인이 아닌가 하는 추측도 있다.] 있는데, 일본에서 술과 이 하타 일족의 깊은 관계를 알 수 있다.[* 하타 일족은 양조기술 뿐만 아니라 뛰어난 [[양잠]], [[건축]] 기술도 보유하고 있어서 일본 고대사에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교토의 [[고류지]]도 이 일족이 세웠다.] 그 후 [[헤이안 시대]]에는 소보슈가 만들어졌고 헤이안 말기부터 가마쿠라, 무로마치 시대를 거치면서 널리 유통되었다. 그리고 [[교토]]를 중심으로 여러 술집이 생겼다. 근현대 들어서 사케는 큰 위기를 맞았다. [[메이지 시대]] 때 정부 재원을 늘리기 위해 주세 제도를 바꾸면서 많은 사케 제조자들이 원주 제조를 중단하게 되었고 이 때문에 많은 전통 사케들의 대가 끊기고 사라졌다. 그리고 [[태평양 전쟁]] 때는 쌀이 부족해지자 "3배 증양주"라는게 나오면서 사케의 품질은 또다시 급격히 악화되었다. 원주를 물에 희석하고 거기에 [[주정]]을 섞은 뒤 여러 첨가물을 넣게 되었고 이때부터 [[일본]]내에서 형성된 사케의 맛이나 품질에 대한 안좋은 인식은 한동안 지속되었다. 태평양 전쟁 당시 뿐만 아니라 전후에도 수십년간 이런식으로 사케가 만들어졌고 그래서 원래 일본에서는 일본주라고 하면 '[[악취]]가 나는 술', '맛 없는 술'이라는 인식이 대부분이었다. 이후 1980년대부터 일본 토속주에 대한 붐이 일면서 차츰 전통 사케들이 [[복원]]되고 기계공정을 거쳐 현재에 이르고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