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할린 (문단 편집) == 여담 == 현재는 지하 자원 창고로서의 잠재적 가치가 높지만, 20세기 초중반까지만 해도 일본, 러시아, 중국 모두 별 가치를 두지 않던 땅이다. 워낙 지리적으로 고립되었고 기후가 험하며 땅 자체도 경작이 거의 불가능한 불모지였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찍부터 일본에서는 이 땅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러시아가 남하하기 전까지 별로 손을 대지 않았다. 사실 당시의 일본으로서는 홋카이도, 쿠릴 열도도 사실상 버거웠는데 그보다 훨씬 멀고 척박한 사할린까지 팽창할 여력이 없었다. 전통적으로 더위를 피하기 위한 구조로 짜여진 일본식의 가옥과 의복은 사할린에서는 무용지물이었고, 지금만큼 교통과 운송이 발달한 때도 아니라서 멀리 떨어진 사할린까지의 물자의 보급에도 어려움이 있었다. 실제로 일본이 남사할린을 얻어낸 것에 대한 부정적인 여론도 다수 존재했다. 물론 관리 여력이 생긴 이후에는 일본도 북위 50도선을 넘어 러시아-소련령 북사할린까지 차지하려 했다. 러시아 역시 마찬가지로 사할린보다는 훨씬 이점이 많은 [[프리모리예 지방|연해주]]나 [[만주]] 방면에 더 신경을 썼고 이는 현재도 마찬가지이다. 그래도 도시의 꼴은 갖춘 연해주의 [[블라디보스토크]]나 [[나홋카]] 같은 도시들과 달리, 현재도 사할린은 [[코르사코프]], [[유즈노사할린스크]] 등 섬 내 주요 도시들이 종전 당시와 인구나 [[인프라]]가 크게 변하지 않은 상태이다. 역사적으로 사할린을 가장 먼저 인지한 중국과 만주 역시 사할린에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 이는 국방에 위협도 되지 않았고 거리도 먼데다 얻을 것도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이런 연유로 중국 왕조들은 사할린을 전혀 신경쓰지 않거나 기껏해야 간접 무역 정도의 옅은 관계만을 유지했다. 그나마 원나라는 사할린을 침공했는데 이는 몽골이 유독 영토 획득에 혈안이었기 때문이다. 남사할린이 [[일본]] 영토인 가라후토로 불렸던 20세기 초반 이곳에서 하드로사우루스류 [[공룡]]의 화석이 발견되었는데 당시 학자들은 '일본의 도마뱀'이란 뜻의 [[니폰노사우루스]]라는 학명을 명명했다. 이 섬 근방에서 [[대한항공 007편 격추 사건]]이 일어났다. 1983년 9월 1일 사할린 서쪽 근방에서 대한항공 007편이 [[소련]] 전투기에 의해 격추되어 269명의 승무원 및 승객 전원 사망했다. 소련 붕괴 직후인 [[1995년]] 사할린 섬 북부에 있는 네프테고로스크시에서 규모 7.6, 진도 IX의 강진으로 전체 인구 3,500명 중 약 2천 명이 사망하는 대참사가 일어났는데 이 지진으로 네프테고르스크는 유령도시가 되었다. 이때 한국도 의약품을 포함한 30만 달러 규모의 구호물자를 피해 지역에 지원했는데 지원한 식료품 중 하나가 [[초코파이]]였다. [[한반도]]의 부족국가들과는 간접적인 교류가 있었을 가능성도 제기되는데, 특히 [[신라]]의 [[탈해 이사금]]의 출신지가 이곳이었다는 설이 있다. 그 이외에 [[인도]] 남부 출신이라는 설과 [[캄차카 반도]] 출신이라는 설, [[말갈|말갈족]] 출신이라는 설에서 [[강원도]] 지역에 존재한 [[한국]]계 부족 출신이라는 설 등 가설이 다양한데 이 중 주류 학계로부터 크게 주목을 받는 설은 [[한반도]] 북부 출신설과 캄차카 반도 출신설, 그리고 지금 언급하는 사할린 출신설 이렇게 세 가지가 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