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형 (문단 편집) == 기타 == 조선은 절기, 계절 등에 상당히 민감했는데, 우선 생명이 생동하고 성장하는 [[봄]]과 [[여름]], [[추수]]기에는 아무리 살인범이라 해도 기본적으로 사형을 집행할 수 없었다. 단, 예외적으로 [[십악대죄]]는 사형이 확정되는 즉시 바로 집행됐다.[* 이를 당시에는 부대시참(不待時斬) 이라 불렀다. 때를 기다리지 않고 즉시 (목을) 벤다는 뜻.] 어쨌든 계절만 뺀다면 문제가 없었지만 진짜 문제는 국가에서 제정한 금형일(禁刑日)이었다. 우선 현대인들은 지나가는지도 모르고 있는 [[24절기]] 날에는 사형집행이 불가능했다. 더욱이 그 중 [[춘분]]과 [[추분]] 사이에는 집행을 하지 않는 것이 관례였다. 또 월별로 보자면 매월 1일, 8일, 14일, 15일, 18일, 21일은 태일신선이 선악을 살피기 위해 지상을 관찰하는 날인 명진재일(明眞齋日)이라 하여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또 [[비(날씨)|비]]가 오는 날은 하늘이 슬퍼하시는 것이라 하여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고, 왕실의 사람들이 죽었거나 출생했을 때, 대소신료들이 사망한 정조시일(停朝市日)도 전 관청이 애도를 위해 업무를 중단하므로 집행하지 않았다. 게다가 이를 어기면 조선시대 형법에선 태형 40번이였기에 귀찮다고 무시할 수도 없었다. 이 같은 쓸데없이 치밀한 금형일 때문에 얼핏 사형수들이 좋아하지 않을까 한다면, 그것도 아닌 듯 하다. 생각하면 당연한 것이, 사형이 정해졌는데 그게 자꾸 미뤄지면 초조해지지 않겠는가? 이에 관련된 실화가 있다. [[연산군]] 10년([[1504년]]), [[강원도]] 관찰사 '이복선'이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폭정을 펼치고 [[강간]]죄에 [[공금]][[횡령]]까지 저지른 악인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정에는 '제 덕분에 여기는 그냥 만만세'라고 거짓 보고를 보내다가 결국 꼬리를 잡혀, 조사 끝에 그동안의 [[악행]]이 발각되어 [[사형선고]]를 받았는데, 문제는 [[십악대죄]]에 해당되지 않아 금형일에는 사형집행이 불가능하다는 데 있었다. 그래서 금형일을 피하기 위해 [[10월]]로 집행일을 정했더니 앞서 말했던 명진재일이었고, 다시 날 잡으니 그 날은 또 24절기인 추분이고, 다시 간신히 잡았더니 그 날은 또 연산군의 [[생일]]. 또또 잡았더니 웬걸, 하필이면 그 날 좌의정이 사망해 정조시일이 되어버렸다. 드디어 아무 날도 겹치지 않은 날 사형일을 잡아 사형장으로 일단 끌고 왔는데, 이번에는 비가 쏟아져서 결국 감옥으로 다시 보내야 했다. 이쯤되니 형 집행해야 되는 관리들의 울화통이 아주 잿더미가 되도록 터져나간 건 둘째치고, '''당사자인 이복선의 멘탈은 말이 아니었다.''' 집행일이 코앞으로 다가올 때마다 자꾸 집행일이 미뤄지니 본인은 거꾸로 자꾸 속이 타들어간 것이다. '''사형집행한다고 끌려나와 망나니가 옆에서 언월도 들고 대기하고 있는데 갑자기 집행정지 통보를 받고, 또 며칠 뒤 다시 집행될 상황에 처했다가 또 정지되고 하면 멘탈이 멀쩡할까?''' 이쯤 되니 아예 본인이 "[[현기증 난단 말이에요|답답해 미치겠단 말이에요]] 저 좀 빨리 사형시켜 주세요"라고 간청했지만 관리들조차 "[[지금은 곤란하다 조금만 기다려달라]]"며 거절하는 상황이고, 결국 그는 사형 집행날을 제대로 잡지도 못하고 공포감과 초조함으로 '''[[화병]]을 앓다가 [[옥사]]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화병이 사형을 집행해준 꼴인데, 관리들도 사형집행하고 싶었을 리가 없으니 오히려 다행으로 여겼다고.[* 실록을 보면 이복선이 죽기 전날 의금부에서 이복선이 시름시름 앓다가 오늘내일 할 것 같아서 연산군에게 어떻게 할지 묻자 연산군 왈, 설령 병에 걸려 오늘내일할지라도 지은 죄가 있으니 매를 친 뒤 서울 밖으로 쫓아내라 하교한다. 매를 맞으면 몸이 허약해진 상태라 얼마 못 버티고 죽을 몸이였지만 그래도 이복선의 시신은 온전히 보존할 수 있게끔 배려 아닌 배려를 해준 것이다. 그런데 하필 다음날 이복선이 죽자 연산군은 의금부의 일처리를 질책하면서 혹시나 약먹고 자살한 것이 아닌가 의심이 들어 시신을 검시하라 명한다. 영의정 유순의 건의로 직첩을 거둔 후 남은 가족들은 한성 밖으로 쫓아냈다. 실록에서는 상술한 구구절절한 사연은 없고, 이복선이 금형일에 걸려 사형이 미뤄졌다고 간단하게 쓰여있다.] 사형이 집행되면 항상 참관하는 사람들 중 하나가 종교 교화위원들이다. 한국에서는 [[1983년]]에 만들어진 제도인데, 사형수가 귀의한 종교에 해당하는 성직자가 온다고 한다. [[개신교]]나 [[천주교]]에 귀의한 사형수의 경우, 그 사형수를 돌보던 [[목사]]나 [[신부(성직자)|신부]]가 형장에 참관하러 온다. 이 때 [[성가대]](보통은 봉사하는 신자들)를 형장에 데리고 오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불교]]에 귀의했을 경우에는 [[스님]]이 이 때 달려가 목탁을 두들기며 독경을 해 준다고 한다. 역시 사형수가 [[원불교]]에 귀의했을 경우에는 교무가, 사형수가 [[무슬림]]이면 [[이맘]]이 온다. 이들이 하는 일은 교수형으로 집행되는 경우는 발판이 떨어지는 즉시 목이 매달린 사형수 머리 위로 달려가 [[성가]]를 불러 주는 것이다. 당연히 성가대원들은 다들 사람이 그렇게 목매달려 죽는 걸 처음 보는 사람들이라, 이 때 다리가 풀려 주저앉거나, 후들후들 떨려 목소리도 제대로 안 나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목사나 신부는 이럴 경우 엄한 목소리로 ''아직 의식이 남아 있습니다![* 교수형을 당하여 [[질식사]]하면 완전 사망까지 10~30분 정도 걸린다. 단 [[뇌사]] 상태에 빠지는 데는 몇 분이면 충분하다고 한다. 뇌빈혈로 몇 초 만에 의식을 잃는다고도 하긴 한다. 목이 부러져 죽는 경우는 당연히 [[즉사]].] 지금 노래해 줘야 합니다! 큰 소리로!"라고 호통치며 이들을 독려한다고 한다. 이영우 신부의 경험담. [[https://www.yna.co.kr/view/AKR20091009170500004|<사람들> 13년의 `사형수 벗' 이영우 신부]] 군인 사형수의 사형 집행에서는 [[군종장교]]가 형장에 참관하러 오며, 군인의 전통적 사형법인 [[총살형]] 직전에 설교 등을 하게 된다. 인류는 선사시대 때부터 사형을 꾸준히 시행했는데, 이는 [[자기가축화]] 효과가 있었다. [[중국]] 여자 사형수 사형집행 동영상이 인터넷에 널려있는데, 이 중 95% 이상이 실제 상황이 아닌 연기다. 진짜 사형집행을 하는 동영상은 몇 없다. 이유인 즉, 사형이라고 하기엔 상당히 조잡하고[* [[소총]]으로 쏴서 [[총살]]하는 건데도 총을 맞은 부위에 구멍만 나 있다. 실제로 소총에 머리를 맞게 되면 탄환이 관통한 부위가 점처럼 찍히는 수준이 아니라, 탄환이 가진 [[끔살|강력한 운동에너지에 의해 머리가 박살난다.]]] 무엇보다도 '''[[배우|동일인물]]이 여러 사형집행 동영상에 꾸준히 나온다.''' 이 사람은 결국, 사형 집행 컨셉의 영화를 촬영하는 배우이지 사형수가 아니다. 사형을 집행했으나 여러 이유로 살아 남은 경우가 있다. 미국의 Willie Francis이란 사형수는 1946년에 전기의자형을 집행했으나 전기의자가 불량이라 치사량의 전류가 흐르지 않아 살아남았다.[* 이후 사형수는 2번 집행할 수 없다고 면제를 주장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아 1947년에 재차 사형이 집행되어 사망하였다.] 일본의 타나카 토사쿠란 사형수는 1872년에 교수형을 집행했으나, 당시 교수형 도입 초기였던 영향으로 제대로 집행되지 않은 영향으로 사형장에서 4km지점에서 숨이 붙어있는 것을 확인, 정부는 사형은 이미 집행되었다며 호적을 복원했다.[* 이후 행적은 불명이지만 교수형의 영향으로 후유증을 앓았다고 전해진다.] 2013년에도 이란에서도 비슷하게 [[https://www.chosun.com/site/data/html_dir/2013/10/23/2013102302083.html|사형 재집행이 취소된 사례]]가 존재한다. 살인과 살인미수 범죄로 교도소를 제집처럼 드나들던 60대에게 끝내 법정 최고형인 사형이 선고되었는데, 그는 사형 선고 후 재판부를 향해 손뼉을 치고 검사에게 "검사 놈아, 시원하제" 라며 조롱하는 발언을 하는 등 전혀 반성하지 않는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https://www.news1.kr/articles/?5151374|"검사 놈아, 시원하제"…사형 선고하자 재판부에 손뼉친 60대 살인범]] 그는 인생의 반인 29년 8개월 동안 옥살이를 했으며 구체적인 범행으로는 살인·살인미수 5회의 상습범이었다. 그는 출소 후 또 살인을 저지르며 결국 사형을 선고받게 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