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사회당(프랑스) (문단 편집) === 제5공화국에서 사회당 창당까지 === 제5공화국 초기 SFIO는 왼쪽의 [[프랑스 공산당|공산당]], 오른쪽의 [[드골주의]]에 치여 한동안 갈피를 못잡는다. 드골주의에 찬성하는건지, 반대하는건지 모를 애매한 태도를 취하면서 젊은 층의 마음은 떠나버렸고 결국 몇번의 선거에서 연달아 패배한다. 결과를 보자. * 1956년 총선: 제1당 공산당 (150석; 25.36%); 제3당 SFIO (95석; 14.93%) * 1958년 총선: 제1당 프랑스인민연합[* 드골의 신생정당.] ('''189석'''; 17.6%)[* 총 의석 576석.]; '''제4당''' SFIO (40석; 15.5%) * [[1958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1958년 대선]]: 샤를 드골 당선 (78.51%); SFIO 후보 '''없음'''. * 1962년 총선: 제1당 프랑스인민연합 (206석; 31.94%); 제2당 SFIO (65석; 12.54%). * [[1965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1965년 대선]]: 샤를 드골 당선 (55.2%); SFIO 후보 '''없음'''.[* 대신 좌파 단일 후보로 미테랑이 출마했다.] 그래도 제5공화국 출범 7년만인 1965년 대선에선 드골의 단독 과반득표가 예상되던 추측을 깨고 결선까지 진출하여 44.8%를 득표하며 나름대로 선전했고, 1967년 총선에선 SFIO가 동거정부 설립까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의석수를 65석에서 117석으로 늘리고 우파 정당이 단독 과반수를 확보하지 못하게 만드는 등 다시 부활의 조짐도 보였다. 허나 [[68운동]] 와중에 치러진 1968년 총선에선 좌파정당들의 사분오열과 우파의 대결집으로 인해 당초 좌파가 우세할 것이라는 예상을 깨고 참패해버렸고, 드골 사임 직후 [[1969년 프랑스 대통령 선거|1969년 대선]]에서는 5.21%를 얻는 기염을 토했다.[* 참고로 이 선거에서 공산당은 21.27%를 얻었다.] 게다가 2차 선거에서 1차 선거 결과에 실망한 상당수 좌파 지지자들이 투표에 불참하면서 드골파였던 [[조르주 퐁피두]]가 압승을 거두며 집권을 연장했다. 그리고 SFIO는 망했다. 식민지 독립 문제와 기타 사회문제에 있어 이도저도 아닌 모습을 보여주던 당시 SFIO는 학생운동을 통해 등장한 소위 "신좌파"들이 보기엔 드골과 마찬가지로 몰아내야 하는 "구좌파"에 불과했다. 그렇게 결국 SFIO는 1969년 사회당(Parti Socialiste)으로 재창당하게 된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